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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침묵"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1 조회수673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6.1.11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사무 상3,1-10.19-20 마르1,29-39


                                                              

 

"침묵"

 


문득 생각나는 시편 한 구절입니다.

 

“주님 곁에 있는 것이 제게는 행복, 이 몸 둘 곳 주님뿐이옵니다.”

 

이어 예전에 써 놓은 시(詩)도 생각납니다.
예전 응접실 탁자위에 놓인 베츄니아를 보고 쓴 글입니다.

 

“응접실 탁자 위
빠알간 베츄니아
임 향한 마음
임 곁에 있는 행복
침묵으로 고백하는
빠알간 사랑
꽃이 되어
늘 임 곁에 있고 싶은 마음”-2000.1.10

 

오늘 강론은 침묵 예찬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침묵은 사랑입니다.
침묵은 기도입니다.
침묵은 깨어있음입니다.
침묵은 개방입니다.
침묵은 기다림의 인내입니다.
침묵은 깊이와 넓이입니다.
침묵은 들음입니다.
침묵은 지혜입니다.
침묵은 거룩합니다.
침묵은 진실합니다.
침묵은 아름답습니다.
침묵은 힘입니다.
침묵은 충만입니다.
침묵에서 나오는 참 말입니다.
침묵은 우리를
정화(淨化)하고
성화(聖化)하고
치유(治癒)하는 넉넉한 내적 공간입니다.
침묵은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침묵은 생명의 샘 오아시스입니다.
침묵은 위로와 격려의 하느님 품입니다.
침묵은 하느님 침묵에의 참여입니다.
침묵은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의 보편적 성향,  침묵에의 사랑입니다.

 

수도원은 무조건 침묵의 분위기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자연은 참 좋은 침묵의 교사입니다.

영성생활의 기본 바탕이 침묵입니다.

 

오늘 복음을 잘 살펴보십시오.
참으로 분주한 주님의 하루입니다.

 

복음 선포와 치유활동, 구마활동에 여념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일에 중독된 분 같기도 합니다.


 

토마스 머튼은 활동주의(activism)를 현대판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활동 중심에는 깊은 침묵의 기도가 자리 잡고 있음을 봅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마르1,35).”

 

하느님 사랑의 침묵에 깊이 뿌리내려

아버지의 생명으로 영육을 충전시킨 주님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관상의 샘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활동의 열매들이라 함이 맞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하루 중 주님 안에 머무는 이런 침묵 기도의 자리와 시간이 있습니까?

 

살기위해 주님 안에 머무는 이런 침묵의 기도 자리 마련은 필수입니다.

 

규칙적이고 항구한 이런 침묵의 기도 없이는

내적 깊이와 평화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도
사무엘이 주님의 믿음직한 예언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눈여겨 볼만 합니다.

철저히 사제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했던 소년 사무엘이었습니다.

분명히 하느님 현존으로 가득 찬,

주님 성전의 침묵 분위기에서 예언자로 양성된 사무엘이었을 겁니다.

 

어느 날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을 때,

하느님이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시자,

스승 엘리의 조언에 따라,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사무 상3,10).”

즉각 대답하는 사무엘입니다.

 

침묵 중에 늘 주님 안에서,

주님을 향해 깨어 살았던 사무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 주님 부르셔도 여러분은 사무엘처럼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사무엘이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니(사무 상3,19),

그가 한 모든 말은 바로 하느님 침묵의 샘에서 길어 낸 말임을 깨닫게 됩니다.

 

정말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침묵의 정신 같습니다.

 

특히 수도자들에게 침묵은 제 2의 천성적 습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깊이 있고 풍요한 내적 생활을 위해 침묵은 필수입니다.

 

침묵은 영성생활에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입니다.

 

이 거룩한 ‘생명의 샘’과도 같은 미사시간,
침묵으로 고요해진 우리 마음 안에

생명의 말씀과 사랑의 성체를 모시므로 어둠의 세력은 쫓겨나고
영육(靈肉)의 병과 상처도 치유되는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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