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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39) 긴 여행에 관한 약속 --- 셋 --- (11쪽 부터 15쪽까지)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1 조회수662 추천수4 반대(0) 신고

 

긴 여행에 관한 약속 --- 셋 --- (11쪽 부터 15쪽까지)

                                                     이순의

 

 

<문장의 기술은 부족할지라도 쓰기는 열심히 썼으며 이 시대의 누군가는 살고 있을 이야기를 제 부족한 솜씨로 완성해 보았습니다. 묵상글은 아니구요. 순수창작 소설입니다. 그 안에서 묵상할 것이 있다면 안으시고 묵상할 것이 없다면 그저 지어낸 이야기 한 토막의 재미를 즐기시라고 알려드립니다. 열심히 수고하여 마련한 것이므로 사랑하는 벗님들께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드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굿뉴스의 벗님들께 이 시대의 누군가 살고 있을 이야기를 드립니다. 2006년1월9일 월요일 부터.......>

 

ㅡ읽기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칸을 두었습니다. 단락과 무관합니다.ㅡ

 

-계속-



         이순의

 

 

 

경옥의 방은 혼잡했다.

매듭 장식품들이 섞여있었고 그 틈에서 경옥은 쉬지도 않고 작업에 몰입하는 것 같았다. 작은 목재상위에는 짜다가 말은 매듭작품이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언니, 커피밖에 없는데 어쩌지요?>

경옥이 찻잔을 들고 들어왔다. 쟁반에는 내가 사 온 것과 같아 보이는 사과 두 개가 놓여있었다.

<응! 잘 마실게.>

 

경옥과 내가 그런 공간에서 그런 모습으로 마주 앉게 될 줄은 경옥도 나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마주 앉았고 서로의 가슴에 막힘이 없었다. 경옥도 그동안 그만큼의 편안한 동무를 구하지 못한 눈치였다. 보육원이라는 시설의 관계를 넘어 훨씬 깊고 짙은 이해의 폭을 서로에게 허락하고 있었다.

경옥의 말이 먼저 본론에 돌입했다.

<언니, 우리 이 집에서 며칠 후면 나가야해요.>

흐르는 기류가 경직되어 엄습했으므로 가만히 앉아 정지해있었다.

<제가 보육원에 가기 전에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고, 그 후로 큰오빠가 하시던 일이 잘 되지 않아서 유산의 대부분이 날아갔어요. 돈 없어지는 거 천하 쉬운 일이던데......>

경옥은 조용한 한숨을 뱉어냈다.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겠구나?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피아노 연주자로 성공하기를 바랐지.>

<보육원에서 나오자마자 집에 둔 피아노부터 팔아야 했어요. 우리나라에 몇 대 없는 명품이었는데......>

경옥이 그토록 미령한 나이에 보육원에 들어온 이유는 아버지의 사망이 원인이었다.

 

음악공부라는 것이 막대한 비용과의 결투였다. 그런데 입시라는 중대한 귀로에서 아버지는 딸의 진로를 보장해 주지 않았다. 어머니와 오빠의 잦은 갈등은 청소년기의 경옥에게는 몹시 혼란스러운 충돌로 다가왔다.

손가락에 기운이 돋을 때부터 피아노 앞에 앉았던 경옥은 아빠의 기쁨이었다. 거나한 취중에도, 막중한 업무에 시달릴 때도,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아버지는 딸의 연주를 들으며 위로와 보람을 찾았다. 그런 아빠가 이제 더 이상 경옥의 연주를 들어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공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하는 미궁의 지원에 급제동이 걸리고야 말았다.

 

경옥이 보육원에서 살았던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은 기간이었다. 그런데도 보육원에서 돌아왔을 때는 경옥의 진로를 회복할 지경에서 한참이나 후퇴하고 있었다. 어머니마저 비운 딸의 자리를 지탱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자식의 급한 불을 보고 뛰어들지 않을 어미는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오빠의 수완에 없어서는 안 되는 방패 막이었다. 경옥의 곁에 남아있는 몫은 명품의 피아노뿐이었다.

 

시절이 혼란스럽고 성에 차지 않았어도 대학에 진학을 했어야만 했다. 보육원을 선택한 것이 경옥의 인생에 커다란 오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라도 틈틈이 연명해오던 연주공부는 보육원을 나오면서 확실하게 좌절되었다. 경옥은 일자리부터 구하러 다녔다. 배운 것이라고는 피아노뿐이었으므로 개인 피아노 교실의 보조교사 자리를 전전하여야만했고, 정규 음악대학을 다녀보지 못한 악재는 떠돌이 보조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억에도 희미한 꼬맹이시절부터 건반 앞에 앉았던 음악생활이 그토록 무가치한 소용돌이에 밀려 무기력해질 줄은 몰랐었다. 그동안 투자했던 기술적 가치를 계산해 보아도 너무나 억울한 비애였다. 명품의 피아노에게 더 이상 품위를 유지해 드릴 수가 없었다. 두고 볼수록 가슴이 메는 상처 깊은 애물단지였다. 팔아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고가의 명품을 내어놓았을 때는 사기도 힘들었지만 판다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이름값도 없는 악기처럼 거저 얻으려 할 때는 치욕적인 모욕감에 시달려야했다. 어쩌면 경옥의 음악인생이 추락하는 동질의 비극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악기는 품격 높으신 새 주인을 기다린 끝에 제 품위를 유지하는데 손색이 없는 곳으로 떠나갔다.

<언니,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그 녀석과 함께 했던 때 같아요. 그녀석이 떠난 후로 제 인생은 지금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어요. 제가 그녀석의 하얀 건반을 두드릴 수 없게 될 때부터 저와 그녀석의 운명은 갈라지고 있었던 거예요. 저처럼 천박한 인생이 부모님 덕택으로 그동안 귀하신 명품을 모시고 영화를 누린 생각을 하면......>

 

끝이 보이지 않는 실타래처럼 경옥의 가슴에서 토하는 이물질은 오직 피아노뿐이었다. 나는 화재를 돌리고 싶기도 했지만 궁금한 질문들도 있었다.

<이런 건 다 뭐하는데 써?>

상위에서 직조를 기다리고 있는 얽힌 실들을 들춰보았다.

<응! 언니, 그거 돈벌이예요.>

<보아하니 꾀 많아 보이는데 판로는 충분해?>

<신통치가 않아요. 뭐 배우려고 달려들 때는 생활보장이 될 것처럼 말하는데 막상 해 보니까 취미생활이지 싶어요. 매듭 장식을 한 집에 몇 개씩이나 걸어 놓겠어요? 이것도 실패한 것 같아요. 이래저래 악기 팔은 돈만 야금야금 없어진 거죠.>

다시 이야기의 원점은 악기로 돌아서고 있었다. 경옥의 가슴 밑바닥에는 오직 연주에 대한 갈망으로 짓이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암흑의 좌절만이 주변에서 이글거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세발낙지를 사러 왔을 때의 그 남자 소식에 운을 떼어보았다.

<그 사람이랑은 잘 되가는 거야?>

<누구요?>

<전에 노량진 시장으로 나를 찾아 왔었잖아?>

<아! 응! 그때가 언제인데 아직도 기억해요?>

경옥에게 그 남자는 첫정이었다.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헤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재기의 모든 희망을 그 남자에게 쏟아버린 것만은 사실인 것 같았다. 악기와의 이별은 새로운 삶의 돌파구를 구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고, 그리고 사람에게 집착을 얻고.......

그런 생기로 나를 찾아와 세발낙지를 사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남자는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명품 악기는 결코 아니었다. 명품도 아닌 것으로부터 우습게 버려진 배신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가족 간의 갈등,

정체성의 혼란,

가출,

보육원 봉사,

생존,

악기와의 이별,

사랑,

배신,

그리고 생활!

 

더구나 심지가 굳기에는 아직 유약하기 그지없는 경옥이 열고 가는 길은 암울한 곳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잠시 멈추어 서서 안개라도 걷히기를 기다려보지 않은 심약한 방황들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그걸 중단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니 반드시 그걸 중단해야만 했다.

<임선생, 이걸 좀 봐.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하찮은 매듭도 이렇게 손을 놓을 때가 있고, 틀리면 다시 풀어서 짜야할 때가 있는 법인데 내 생각에는 임선생도 좀 쉬었으면 좋겠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이사 준비나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을 것 같은데.......>

경옥이 쏟았던 한숨과 푸념의 좌절들이 순간에 독기를 품고 일어섰다.

<아니요. 돈을 벌어야 해요. 저는 돈을 벌기로 했어요. 이사하고 나면 매듭 짜는 일도 그만 두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거예요.>

내가 경옥을 가슴에 담고 찾아갔다가 꺼내놓지 못하고 그대로 경옥을 담고 돌아서 나왔다. 내 손에는 매듭장식으로 테두리를 꾸민 동그라미 거울이 들려있었다. 경옥이 만들어진 소품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 집에는 화장실에 붙어있는 작은 벽거울을 제외하면 거울이 없었다.

 

거울은 단칸 셋방의 아랫목 벽에 걸어졌다.

거울을 보다가 종종 문득문득 수화기를 들고 소식을 묻는 사람은 내 쪽이었다. 빈말일지라도 경옥은 단 한 번의 전화도 걸어오지 않았다.

사무실에 취직을 했었고, 어떤 사람의 소개로 좋은 사람을 만나서 곧 결혼 할 것이라고도 했다가, 다시 직장을 옮겼고 사귀는 사람이 없으니 중매를 하라는 요청도 있었다가, 세월이 흐를수록 나에게 전해주는 소식은 초라해지고 불편해졌다. 경옥이 멀리멀리 달아나고 있다는 사실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을 때는 학습지 방문교사를 한다고 했다. 역시 사귀는 남자가 있었고!

<어? 그거 어렵다던데 어떻게 들어갔어? 임선생이 학습지를 풀 수 있어? 우리 아들 녀석 거 보면 어렵던데....... 그리고 남자 그만 사귀어라. 어쩐지 위험해 보여서 그래. 남자한테 받은 상처를 자꾸만 남자한테 치유 받으려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언니, 다음에 통화해요. 지금 바빠서요.>

 

경옥은 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공연히 전화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전화 한 번 해주지 않은 경옥에게 섭섭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종종 드문드문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지는 이유는 아직도 내 가슴의 밑바닥에 애잔한 경옥이라는 그릇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힘이 들면 위로해 주고 싶고, 아프면 치유해 주고 싶고, 기쁘면 웃어주고 싶고, 삶의 무게가 험난하다는 결론을 얻었을 때는 기어이 나서서 경옥의 소리를 들어주고 싶었다. 자꾸만 자꾸만 경옥을 향해 전화기의 단추를 눌렀던 것이다. 그러나 경옥의 진심은 수화기를 타고 나에게 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애증이 남았는지도 모른다.

 

리고 무소식의 삼년이 지난 오늘 경옥의 음성은 메아리도 없었다.

<경옥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저쪽의 음성은 떨리기 시작했고 경옥과는 달리 진심을 전해 주었다.

<삼년 전에 결혼을 했었어요.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모두 평심으로 돌아갈 무렵에 누이는 세상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누이를 찾는 사람의 전화를 받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나에게는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연애결혼이었나요?>

뭔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얼떨결에 저런 질문을 던져놓고 내 자신의 한심스러움에 탄식했다.

<아니요. 중매결혼이었습니다. 겨우 한 달 남짓 신혼생활을 했는데 서둘러 결혼한 게 잘못이었는지 어쩐지는 저희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떻든지 누이를 아직까지 기억해 주시니 하늘에 있는 누이도 좋아할 것입니다. 제가 누이를 대신 해서 고맙다고 인사드립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ㅡ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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