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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39) 긴 여행에 관한 약속 --- 셋 --- (16쪽 부터 20쪽까지)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2 조회수724 추천수5 반대(0) 신고

 

    긴 여행에 관한 약속 --- 셋 --- (16쪽 부터 20쪽까지)

                                                     이순의

 

 

<문장의 기술은 부족할지라도 쓰기는 열심히 썼으며 이 시대의 누군가는 살고 있을 이야기를 제 부족한 솜씨로 완성해 보았습니다. 묵상글은 아니구요. 순수창작 소설입니다. 그 안에서 묵상할 것이 있다면 안으시고 묵상할 것이 없다면 그저 지어낸 이야기 한 토막의 재미를 즐기시라고 알려드립니다. 열심히 수고하여 마련한 것이므로 사랑하는 벗님들께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드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굿뉴스의 벗님들께 이 시대의 누군가 살고 있을 이야기를 드립니다. 2006년1월9일 월요일 부터.......>

 

ㅡ읽기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칸을 두었습니다. 단락과 무관합니다.ㅡ

 

-계속-



         이순의

 

 

갑자기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충대충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경옥의 말을 의무적으로라도 들어주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던 내 자신의 영감에 충실하지 않은 자책감에 슬픔이 밀려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어려웠으면, 얼마나 절망적이었으면, 얼마나 외로웠으면, 얼마나 무력했으면, 얼마나 공허했으면, 생각하고 또 생각을 더듬어 보아도 경옥이 생명을 유지시키고 싶었을 언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을 것이지 라는 말도 경옥에게는 넝마에 푸새를 한 것과 같았을 것이다.

 

저택을 떠나 얼마만큼 좁고 누추한 집으로 전전하며 살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경옥이 감당하고 추스르며 겪었을 그 변화의 심적 고통들을 짐작으로만 예측하다가 멈춰버렸다. 수화기 속의 냉대라도 다시 찾아가 경옥을 만나야 했었다. 그래서 힘들다는 소리를 들어주었어야했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이해해 주었어야했고, 절망적일 때는 손이라도 뻗어서 잡아 보았어야했고, 외로움에 사무칠 적에는 그냥 가만히 곁에 앉아만 있어도 되었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거울의 유리는 맑은데 경옥이 한 올 한 올 역어서 두른 테두리의 찌든 때가  마치 3년 전의 유골에 낙근(落筋)이라도 덜된 국물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거울을 처다 볼 수가 없었다. 거울 속의 얼굴이 경옥일 것만 같은 두려움에 무서웠다. 청소를 하다가 말고 입김을 불어 깨끗이 거울을 닦아 놓은 것을 후회했다.

 

순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나야. 정신 차리고 전화 좀 받아봐.>

흥순의 목소리는 자고 있었다.

<으응. 말해.>

<임경옥이 죽었데.>

흥순은 놀라지도 동요하지도 않았다. 자고 있었다.

<사고 났어?>

<아니 자살했데.>

그때서야 흥순의 목소리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거칠게 말을 뱉었다.

<보육원의 병신들도 잘만 사는데 사지육신 멀쩡한 예술가께서 죽기는 왜죽어?>

<응. 결혼 한지 한 달 만이었데. 벌써 3년 전이라는데.......>

 

흥순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옥의 소식을 놓고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또한 보육원에서 함께 살은 엄흥순 뿐이었다.

하던 청소를 미루고 세안을 하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 거울 앞에 마주한 여자가 경옥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낯익은 여자의 얼굴에 익숙한 스킨로션을 바르고, 숱 없는 눈썹에는 갈색 선을 그리고, 얇은 입술에는 옅은 립글로스를 칠해주었다. 달리할 줄 아는 화장법도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 여자의 얼굴색이 살아났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베풀 수 있는 호사처럼 새로웠다. 마치 달리기 직전의 선수에게 몸을 풀어주는 코치 같았다. 한결 마음이 정돈되었다.

 

결승점에서 내가 1등이 아니라도 좋을 것 같은 예감에 숨을 쉬고 머리에 빗질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 모든 행위가 소중한 가치로 다가왔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연속할 수 있는 힘에 감사하고 그 결과로 주어진 목표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대견할 것 같았다. 인생은 마라톤 같은 것! 곁에서 누구도 함께 옮겨줄 수 없는 보폭을 혼자서 벌려 뛰어야한다. 좌절하지 않고 결승점에 도달하는 것은 외로운 노력이고 커다란 만족일 것이다. 달리다 말고 주저앉은 선수의 고통이 달리고 있는 선수의 고통보다 훨씬 크고 견디기 힘든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서 경옥은 죽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찻집의 오전은 한적했다.

굳이 발품을 요구하지 않았어도 흥순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쪽에 벽이 있고 좌석 배열이 다른 의자들과 엇갈려있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등받이가 앉은키보다 훨씬 높은 안락의자는 푹신하고 넓은 가슴으로 잠시 들른 길손을 빨아들였다. 그 흡입력이 싫지 않아서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편안했다. 검정의 긴 앞치마를 두른 아가씨가 물 한 잔을 놓고 말없이 물러났다. 푸른색의 뭉툭한 세모 물 잔에 두 손을 모아 감싸 안았다. 따뜻했다.

바람도 찬데, 아직 나뭇가지의 꽃눈과 잎눈은 잠을 자는데, 햇살은 온화했다. 그 따사로움에 눈이 열릴 것이며 꽃이 피고 잎이 돋고 대지는 푸르러질 것이다. 찻집의 실내는 벌써 봄 장식으로 화사한데 입고 나온 입성은 도톰하고 투박하여 마음은 초라했다. 애써 창밖으로 눈을 돌렸을 때도 앞단추를 열은 사람보다 닫은 사람들이 시야를 채웠고 작은 위안이 돌아앉았다. 유난히도 빨리 봄이 오신 찻집이었다.

 

느리고 보드란 발라드음악이 흐르고 기다림은 여유로웠다. 거리를 응시하며 지나는 사람들의 비밀스런 사연들을 훔쳐보았다. 해가 뜨고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또 점심과 저녁을 먹고 잠도 자는 일상은 누구나 같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쓰여 진 일기는 단 한 쪽의 단 한 줄도 똑같을 수 없는 제 각각의 줄거리를 담고 분주했다. 운명은 곧 산들 불어오실 바람을 따라 피기도 하고 오므리기도 하며 여름을 맞을 것이고 태양은 그 내용과 상관하지 않고 이글거릴 것이다. 지나간 시간보다 다가올 시간이 더 고적하고 쓸쓸할 것만 같았다.

인기척에 돌아보았다. 흥순이 서서 탁자를 톡톡 치고 있었다.

<응! 왔어? 앉아. 그런데 춥지 않아?>

해빙의 거리에서 혼자서만 봄으로 걸어왔을 흥순의 차림은 화사했다.

<그렇잖아도 멋 부리다가 얼어 죽겠어. 거실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어찌나 따스하던지 속아버렸네?!>

 

웃어 보이는 흥순의 얼굴에서 보육원시절의 발랄한 미소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칼을 대서 성형수술을 한 것은 아니지만 문신과 화장으로 짙게 확장한 선은 본연의 자취를 이탈시키고 말았다. 심은 속눈썹에 검은 마스카라는 흰 눈동자를 더욱 희게 보일 수는 있으나 마음까지 희어 보일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런 옷은 어디서 팔아? 내 눈에는 왜 그런 옷이 보이지 않지?>

<왜? 마음에 들어? 언니가 입는다고만 하면 당장에 벗어 줄 수 있어. 바꿔 입을래? 그렇잖아도 추워죽겠는데.......>

 

실크인지 아니면 면 실크이거나 스펀 폴리에스테르인지는 모르지만 시각적으로도 느껴지는 얇고 가벼운 촉감과 슈퍼스타 장밋빛깔의 화사한 분홍은 찻집의 봄과 어울렸다. 통이 넓은 바지 위로 종아리까지 오는 긴소매 원피스를 입고 그 치마길이의 민소매 바바리를 열어 입은, 같은 색 같은 천의 세련미는 마주 앉은 여자의 눈길로도 황홀했다. 흥순의 옆에는 비싸 보이지는 않아도 썩 잘 어울리는 연두색 비닐 핸드백이 놓여졌다. 궁금했다. 구두는 무슨 색일까? 스타킹은 또 무슨 색을 신었을까?

<어디 좀 보자. 구두는 뭘 신었는지?>

 

장난기어린 놀림으로 해 본 말이었는데 수줍지도 않고 탁자 밑으로 발을 쑤셔 밀었고 치켜 오른 바지는 짧아졌다. 가방과 동색의 뾰족구두 속으로 빨강의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갑작스런 심보는 입은 속옷의 색깔과 모양을 보겠다고 토할 뻔 했지만 입술을 깨물어 삼켰다. 변해가는 흥순의 껍질을 벗겨낼수록 내 자신에게 돌아올 아픔이 두려웠다.

<연주하는 년은 왜 죽었데?>

본론을 찾아서 아린 나를 깨운 사람은 흥순이었다.

<응? 응! 자세한 것은 모르겠고 중매결혼을 했는데 한 달여 만에 갔데.>

<언니는 죽은 년이 이해가 되?>

어폐가 갈라지고 격해지는 쪽도 흥순이었다.

<누군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아나보지? 이놈의 세상 콱 했다가도 보육원에서 고생할 때가 떠오르면 죄받지 싶어서 못 죽겠더라. 언니는 그 애들 생각 안나? 우리가 챙겨주지 않으면 굶어죽을 화상들 아니었어? 그래도 잘만 살고, 잘만 웃고, 잘만 즐거운데 멀쩡한 년이 죽기는 왜 죽어? 언니가 전화했을 때는 자고 있었는데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화가 나서 못 견딘다는 사람이 그렇게 초상화는 잘도 그리고 나오셨습니까?>

 

순이 어두운 성향은 아니었다.

보육원생활이 힘들어도 늘 헌신적이었고 부지런했으며 천부적으로 흥이 내재되어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른 봉사자들 보다는 좀 더 오래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적성을 상실해 버린 나를 따라서 곧 보육원을 떠나왔다. 나보다는 훨씬 여러 해 먼저 아이들을 돌보았으므로 대선배이기는 했으나 떠나온 순서는 내가 앞섰으므로 보육원에서 나오자마자 찾은 사람도 나였던 것이다.

경옥이 떠나온 원인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흥순이 떠나온 이유는 흥순의 입을 통해 가끔 드물게 흘러나왔다.

 

<봉사는 지랄할 봉사야? 인생 사는데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 줄이나 알아? 남들은 가책도 받지 않고 재미만 나는데 나는 꼭 그놈의 현장이 어른거려서 분위기만 망친단 말이야. 언니는 그럴 때 없어? 하기야 언니는 다이아몬드보다도 영롱하셔서 어련하시겠어?>

흥순이 내적갈등을 겪으며 힘들어한 것은 사실이었다. 장애인들을 돌보는 시설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불투명한 목적의 영리를 목격하게 되었을 때 그길로 손을 털고 말 한마디 없이 무작정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보면서 자기 자신 앞에 놓인 생의 명암에 비하면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또한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때에는 정의라는 것에 대하여 환멸을 퍼붓기까지 했다.

<두 발 달린 짐승이 사는 세상이란 다 그렇고 그렇지?! 오물통을 감싸 쥐고 회칠하면서도 잘만 살면 되는 것이지 정의는 무슨 놈의 정의가 있다고 그게 가당키나 하더란 말인가?!>

 

그런 울분으로 흥순이 몸부림 칠 때면 차라리 그 성스러운 아집에 기운이 솟았다. 그러나 지금의 흥순은 미워할 수도 예뻐할 수도 없는 현실의 수용, 바로 그 실체였다. 이상도 없고, 환상도 없고, 지금 흥순이 요구하는 필요에 충분조건을 완성해 가는 방법을 잘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도 그런 생존법에 대하여 돌을 던지거나 비난 할 수도 없었다.

적당히 벌어다주는 회사원인 남편과 삼남매를 두고 사는 평범한 주부의 눈을 벌어지게 한 것은 사회가 아니라 가족이었다.

그 눈을 뜨기 전까지만 해도 흥순은 정의로웠고 정의(正義)의 정의(定義)를 알면서 살고자 노력했었다. 분노할 줄도 알았고, 어울리는 것과 어긋나는 것을 갈라놓았으며, 가야할 곳과 머무를 곳을 찾아서 몸을 도사렸고, 섞일 곳과 피할 곳을 가려서 말을 놓았으며, 매사에 활발한 분별력을 동원할 줄도 알았다.

 

그러나 IMF라는 국가경제 위기를 맞으면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인생의 구조자체를 재편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모든 기업은 구조조정에 사활을 걸었고, 개인은 그 가느다란 동아줄에 목숨을 걸었다. 사느냐 죽느냐에 따라서 잘리느냐 남느냐의 역류현상은 무엇이 잘못되어가는 사회인지조차 가늠할 길이 없었다. 잘리느냐 남느냐에 따라서 살고 죽어야하는 인간의 질서가 죽거나 사는 게 먼저 판명되어버리는 무시무시한 혼돈의 늪에서 몸을 던져버린 사람은 여인들이었다.

                                                        ㅡ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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