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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39) 긴 여행에 관한 약속 --- 셋 --- (21쪽 부터 25쪽까지)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3 조회수688 추천수3 반대(0) 신고
 

긴 여행에 관한 약속 --- 셋 --- (21쪽 부터 25쪽까지)

                                                     이순의

 

 

<문장의 기술은 부족할지라도 쓰기는 열심히 썼으며 이 시대의 누군가는 살고 있을 이야기를 제 부족한 솜씨로 완성해 보았습니다. 묵상글은 아니구요. 순수창작 소설입니다. 그 안에서 묵상할 것이 있다면 안으시고 묵상할 것이 없다면 그저 지어낸 이야기 한 토막의 재미를 즐기시라고 알려드립니다. 열심히 수고하여 마련한 것이므로 사랑하는 벗님들께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드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굿뉴스의 벗님들께 이 시대의 누군가 살고 있을 이야기를 드립니다. 2006년1월9일 월요일 부터.......>

 

ㅡ읽기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칸을 두었습니다. 단락과 무관합니다.ㅡ

 

-계속-



         이순의

 

 

흥순도 남편의 안녕을 먼저 고수하고 나섰다. 아이들이 셋인 상황에서 껍질이라도 남편이 살아있어 주기만 한다면 어려운 세상이야 얼마든지 천천히 자신 있게 극복하며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좀 알아봐 줘. 애들 아빠가 아무래도 위험해. 애들도 아직 어린데 뭐라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겠어.>

그 후로 흥순의 외출은 쉽지 않았고 만남조차도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불허했다.

 

머리핀에 고리하나 붙여주고 30원을 받는 부업을 시작한 것이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붙여도 5,6백 개를 붙일까 말까한 푼돈벌이였어도 집에서 아이들이 들고나는 것을 볼 수 있어서 만족해했다. 집안에는 각종 액세서리 부품들로 뻔쩍거렸고 흥순의 손은 언제나 대학노트 두 권 크기의 네모상 위에서 펀치를 쥐고 꼼지락거렸다. 얼굴조차 마주하지 못했다. 오로지 일감에게만 눈과 마음을 쏟았고 벗에게 나누어 줄 것은 알맹이 없는 대꾸뿐이었다. 그래도 세 아이들의 자질구레한 용돈은 거뜬히 해결되더라는 보람에 겨를이 없어보였다.

 

간혹은 거들어주며 이익을 늘려주는데 기여도 해 보고 싶었지만 쉽게 눈이 피로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어께죽지가 천근으로 압박하는 무게를 지탱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부업조차도 돈을 벌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공연히 시간만 빼앗는 것 같은 생각에 흥순의 거처로부터 뜸해지기 시작했고, 가끔이지만 전화를 해도 받드는 둥 마는 둥 상대의 존재에 대하여 기억되고 있음을 귀찮아하기도 했다. 물질의 정당성에 민심이 흉흉해져버린 섭섭함은 관심의 단절이었다. 관심의 단절은 공유했던 친분으로부터의 이탈이었고 소식은 멀어졌다.

 

그런데 화창한 따사로움이 쨍쨍하던 어느 해 봄날이었다.

벌써 몇 해 동안이나 여유라고는 바늘구멍만큼도 없이 바쁘게 바쁘게만 살았던 사람이 별안간 집 근처에 왔다고 만나자고 했다.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보기는 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 흥순이 아니었다. 흥순의 몸에서 흥순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 서먹한 낯설음에 마음은 불편했고 육신은 반겼어야 했으므로 헛웃음만 쏟아졌다.

<하하하 하하! 우리 얼마만이야? 돈 많이 벌었나보지? 별 볼일도 없이 사는 소인을 다 구제하러 오신걸 보면 엄흥순 여사님께서는 소원성취라도 하셨나봅니다. 그려? 하하하하 하하!>

 

짙어진 화장과 길어진 손톱,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차림은 흥순이 액세서리 부업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가 아님을 알려 주고 있었다. 펀치를 들고 사는 여인이나 밥만 하는 여인에게는 흥순이 입고 온 저런 옷은 불필요해 보였다. 가슴부분에는 은색 반짝이가 돌출되어있고 짝 달라붙은 원피스의 허리선에는 보기에도 민망한 뱃살이 쿨렁쿨렁 비어져 나온! 그냥 보아도 촌스런 초보의 암내를 억지로 쥐어짜고 있었다.

그간의 변화를 안부로 삼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 둘 곳을 찾다가 겨우겨우 옛정을 동행하여 왔을 것이라는 짐작은 모세혈관에 박힌 솜털 하나하나에게 까지 전달되고 있었다. 다만 그 불편사항이 나에게 아픔이 되는 상처가 아니기를 바라고 싶었다.

<씨발! 오늘 재수 더럽게 없어서.......>

 

스스로 뱉은 말이 상스런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손을 빠르게 입술에 가져다 대며 차단했다. 몇 해 만에 흥순이 나를 찾아왔다면 그 말의 솜씨가 어떻든 들어주기만 하기로 마음을 다졌다.

<언니, 나 아르바이트 갔다가 재수 없는 년 만나서 기분 깔고 언니 생각이 나서 왔어. 너무 오랜만이지?!>

<그래. 얼굴 잊어버리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만나서 눈도장도 찍고 생사확인 하는 날도 있네. 아이들 아빠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정신없어하는 것 같아서 묻지도 못하고 세월만 벌써 이렇게 되었네.>

<응. 나 부업할 때 잘려서 몇 달 쉬었어. 날마다 출근하던 사람이 집에 있으니까 스트레스만 쌓이고, 일감은 늘어져있는데 하루 세끼 밥은 꼬박고박 챙겨줘야지. 은근히 힘들더라!>

<액세서리 부업하는 거라도 같이 좀 하자고하지 그랬어?>

<어이구 언니는 꿈도 야무셔! 직장생활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집에 있다고 해서 허드렛일에 손이 가기나 해? 애들은 애들대로 집에 있는 아빠랑 어긋나지! 말이 쉽지 수입은 없는데 씀씀이는 감당이 안 되더라! 언니.>

<어려웠겠구나?!>

<마침 부업 때문에 알게 된 엄마가 소개해줘서 부동산 펀드에 나갔었어. 돈도 돈이었지만 애들 아빠한테 해방되고 싶어서 나갔는데 나는 그거 못하겠더라. 하루 종일 전화기 붙들고.......>

<그보다 지금은 애들 아빠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먼저 말해봐. 그게 내내 궁금하고 걱정이었거든.>

<응! 9개월 놀았나? 10개월 놀았나? 거의 1년은 쉬었다고 봐야지. 전에 근무하던데 보다 큰 회사는 아니어도 오히려 대우나 직함은 높아졌고 보수는 그만그만해. 지금은 애들 아빠한테 불만 같은 거 없이 사는데......>

흥순은 깊은 숨을 마셨다가 서서히 내쉬고 있었다.

 

물질의 욕구란 꼭 탐욕에서만 생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방편 안에서 돌파구를 찾다보면 그 올가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탐욕이라는 사슬에 걸려들었을 때보다 중독성이 강했다.

풍족해진 생활의 여유로움은 아이들에게서 먼저 표시가 났다.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학원이나 과외를 결정하는데도 겁 없는 추진력을 발휘하게 해주었다. 남편조차도 아내의 짭짤한 수입에 대하여 괘념치 않았고 재테크라는 미명하에 묵인되고 있었다.

 

순박한 사람 하나가 돈을 따라서 이동되기 시작했을 때는 그 단맛의 양면성에 모두 중독되어 갔다. 흥순이 그렇게 갑자기 나를 떠올리게 된데도 충족이라는 이면의 망각 때문이었다. 부끄러움도 수치심도 없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난 사람들이고 무슨 일을 했으며 얼마 만에 만나고 있는지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썅!>

다시 손으로 입을 가렸다가 놓으며 삭히지 못한 타락의 울분을 꺼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청주 가기로 했거든! 출장 파트너였는데 쌍년이 가로챘어. 오늘 같은 날은 좋잖아?! 날씨 좋지. 타임 맞지. 분위기 끝내주지. 생기는 건 생기는 대로 빵빵하지! 지난번에 내가 뺏었거든. 그거 줘버리고 오늘 것 물었어야했는데.......>

알아들을 것 같은 말이긴 했지만 도무지 적응은 되지 않았다.

 

<그게 지금 하는 일이야?>

<응. 도우미라고 알아? 아르바이트 도우미 뛰어. 언니 비밀이다. 애들 아빠도 애들도 몰라.>

가족이 몰라야하는 일이라면 분명히 좋은 일은 아니었다. 굳이 좋은 일까지는 아니라도 숨기지 않아도 되는 떳떳한 일은 아니었다.

<그거 2차 3차도 있는 일이구나?>

<.......>

대답이 없었다.

<그런 일을 왜해? 애들 아빠도 벌어들인다면서?>

<어이구! 그런 말씀하시기 전에 언니 꼴이나 살펴보세요.>

엉뚱한 질문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났다고 해서 그만한 질문으로 불미스러워질 만큼 타산적이거나 격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서로의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는 영성의 크기는 어떠한 불신으로도 가를 수 없는 근본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그런 신뢰는 상황에 따라서 변질되는 성향의 저가품일 수가 없었다.

<내 꼴이 어때서? 순수 자연산이잖아!>

방긋이 웃어 보였다.

<우리 애들은 내가 자연산일 때보다 지금을 더 좋아하거든. 언니처럼 집에서 밥만 할 때 보다 부지런해졌지, 돈 잘 주지, 항상 꾸미고 있지! 아이들이 인정해 주는 엄마는 미장원 한 번 못가고 집에서 밥이나 퍼주는 그런 엄마가 아니야. 돈도 잘 벌고, 세련된 옷 입고, 좋은 화장품에 폼 나는 엄마야. 언니는 요즘 애들이 어떤 애들인지 알고나 사우? >

 

엄마가 하는 일이 도우미 아르바이트라고 해도 아이들이 좋아할 것인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미 생활의 필연성과 물질의 당위성은 합당한 짝을 이루어 흥순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사람이 살면서 절대적으로 꼭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별로 없다. 그러나 문명이라는 선진적 발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누리고자 하는 것들을 마련하고 그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인력의 모든 것을 동원하게하고 있다. 어쩌면 국가와 사회가 동시에 그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개인은 그 소속감을 상실하지 말아야하는 약자의 위치에서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되고, 그 상승의 효과는 각각의 개인에게 위안이 된다. 흥순도 여유로운 생활의 방편으로 그 천박한 방식의 타락과 타협하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 실업자라는 인간의 굴레에 놓이게 될지 모르는 남편을 믿고 우두커니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이미 10개월이라는 학습으로도 만점이었다.

액세서리 부업보다 고생스럽지 않았고, 수화기를 들고 막연한 요행의 울화를 참아내는 일보다 한가롭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유흥의 탐닉은 흥순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언니, 이 일이 매력 있어. 처음에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사람은 다 똑같아. 나만 깨끗한 척, 나만 고상한 척, 나만 바른 척, 그거 다 부질없는 착각이야.>

흥순은 무엇보다 정의로운 경향을 중요시했었고 그 정의감은 심성을 담대하게 다스렸으며 세상을 보는 모든 시야를 건전한 곳에 초점을 두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 격은 인생 막장의 초월자 같은 시각으로 전혀 건전하지 못한 자신에게조차 너그러웠다. 이미 물질적 욕구가 생활의 필연성을 능가해 있었고, 유흥의 탐닉이 물질적 욕구를 앞서 감히 대적할 방법이 없었다. 액세서리 부업을 하느라고 딴청을 허락할 수 없었던 흥순이 그리웠다.

 

<그래. 오랜만에 만나서 잘산다는 소식 들어서 좋네. 우리 자주보자.>

그대로 만족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자긍심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언니. 이제는 자유부인이잖아?! 종종 연락할게.>

자유부인이라고 자처한 흥순의 가슴속 깊은 곳도 자유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 갈등의 우울증은 혼자만의 몫이었고 남편과 자식이 있는 유부녀의 비밀스런 재테크는 그렇게 지속될 심산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흥순은 진정한 자유부인이고 말았다.

나의 생활과 형편이나 입장에 상관하지 않고 연락이 왔다. 그렇다고 해서 꼭 흥순의 요구에 꼭 응답해야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얼마간은 지극정성으로 그 호출에 응하였고 차를 마시거나 쇼핑을 하거나 알맹이 없는 들러리가 되어 따르느라고 지루했다. 그러다가 손에 든 전화기라도 울린다 싶으면 역시 나의 기분이나 입장은 물론 자존심까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휑하니 가버렸다.

                                                                         ㅡ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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