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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42) 묻지 못하겠어.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3 조회수790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6년1월13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성 힐라리오 주교 학자 ㅡ사무엘기 상권 8,4-7.10-22ㄱ; 마르코2,1-12ㅡ

 

     묻지 못하겠어

                     이순의

 

 

일상이 엉망이다. 컴퓨터와 소설책과 만화 속에 묻혀서 하루가 가고 있다. 대부분의 입시 후의 가정들의 모습이라고 들었지만 내 집도 그렇게 될지는 몰랐었다. 다행히 외출을 하여 외박을 한다든지, 돈을 무리하게 쓴다든지, 출처가 불분명한 시간을 보내지만 않아도 복이라고 하므로 복이라고 여기며 답답한 자식의 꼬라지를 보고 있다. 운전학원과 태권도 학원을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좁은 공간에서 거실이 있는 집도 아니고, 의자와 방바닥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하루 24시간이 가고 있다.

 

학교 발표는 언제 하는지? 합격하면 전공을 따라서 공부를 해 볼 것인지? 아니면 모두 떨어지면 재수를 할 것인지? 취직을 할 것인지? 군대를 갈 것인지? 묻지도 못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볼 뿐이다. 자식이라는 것이 그저 지켜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학교 발표가 날 때 까지만이라도 내 하고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라는 요청을 지켜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미인 내 가슴이 너무 두려워서 멈춰버렸는지도 모른다.

 

내 자식인데...... 내 자식의 앞날을 어찌 마련해 줘야 되는데..... 생각만으로도 앞이 캄캄하다. 그래서 그냥 시간이 가는 대로 지켜볼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가슴은 타는데 물을 수는 없다. 그것이 엄마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어미가 알아서 이렇게 저렇게 했었지만 앞으로는 자식이 어미에게 이렇게 합니다 저렇게 합니다 하기 전에는 그저 기다리며 침묵할 줄 알아야 좋은 엄마일 것 같다. 세상 모든 사람이 너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엄마는 너를 믿는다고 기다려 줄줄 아는 그런 엄마! 그런 엄마가 될 수 밖에 없어서 물끄러미 지켜 보다가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불규칙적인 일상에 하루면 몇 번씩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서 소리를 꾁 질렀다가..... 인내심을 훈련시키는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어미마저 그냥 뒹굴며 이 겨울이 가고 있다. 어쩌면 품에 안은 아기였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함께 뒹굴었던 날들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들어서 그래 잘 놀아보자. 지금 안 놀면 언제 이렇게 놀아보겠냐 싶으기도 하고! 그런데도 가슴 한 구석은 이렇게도 두려워서...... 너무나 두려워서..... 묻지도 못한다.

 

너의 계획이 뭐니? 라고.

 

사람의 삶이 궁핍하고 옹졸하다는 것은 타인을 향해 할 말을 가두는 것이다. 자식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더 어떻게 해 줄 수도 없는! 공연히 의견 몇 마디 냈다가 후회하고 눈치보고 자책까지! 더구나 상대의 의중을 모를 때는 뱉은 언어들이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데 조바심만 나고! 에라 모르겠다. 가만히 엎어져 있자! 텔레비젼에서는 알콜중독 엄마가 미혼모로 키운 딸에게 부리는 행패를 고발하던데 그런 엄마에 비하면 엄청 좋은 엄마일 것 같은데 나는 자식에게 묻지도 못한다. 그 묻지 못하는 이유가 내 가슴이 두려워서이다. 내 가슴 아플 일을 감당하기가 너무 두려운 것이다. 

 

간밤에는 아들에게 말을 해 주었다

<엄마가 너의 진로를 묻지 않는 것은 너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엄마의 가슴을 감당하기가 두려워서 그래. 네가 아들이니까 이해해 주라.>

이 말을 하는데 왜 그렇게 내 자신이 못나고 슬프든지!

이래저래 못난 죄만 짓고 사는 엄마다.

못난 죄!

 

ㅡ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 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마르코2,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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