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39) 긴 여행에 관한 약속 --- 셋 --- (26쪽 부터 30쪽까지)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4 조회수799 추천수2 반대(0) 신고
 

긴 여행에 관한 약속 --- 셋 --- (26쪽 부터 30쪽까지)

                                                     이순의

 

 

<문장의 기술은 부족할지라도 쓰기는 열심히 썼으며 이 시대의 누군가는 살고 있을 이야기를 제 부족한 솜씨로 완성해 보았습니다. 묵상글은 아니구요. 순수창작 소설입니다. 그 안에서 묵상할 것이 있다면 안으시고 묵상할 것이 없다면 그저 지어낸 이야기 한 토막의 재미를 즐기시라고 알려드립니다. 열심히 수고하여 마련한 것이므로 사랑하는 벗님들께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드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굿뉴스의 벗님들께 이 시대의 누군가 살고 있을 이야기를 드립니다. 2006년1월9일 월요일 부터.......>

 

ㅡ읽기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칸을 두었습니다. 단락과 무관합니다.ㅡ

 

-계속-



         이순의

 

 

 

흥순이 나를 불러냈을 때는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어중간한 시간의 공허를 채우고 싶은 아주 단순한 반복이었다. 그러므로 그런 부름은 흘러들어도 무방해졌고 내가 곁에 있으나 없으나 준비완료인 자유부인이었다. 쇼핑을 하고 차를 마시고 그러다가 갈 곳이 정해지거나 약속시간이 되면 자유롭게 갔다.

흥순이 하는 일에 관록이 붙으면서 씀씀이의 품격도 달라지고 있었다.

헬스클럽에서 나오는 흥순의 뱃살은 더 이상 쿨렁거리지 않았고, 바디 숍에서 관리하는 살결은 액세서리 부업을 하던 까칠한 촌닭이 아니었다. 흥순의 언어로 일침을 놓을 줄도 알았다.

<지금 시대에는 자기관리를 해야만 알아주는 시대야.>

 

짧은 커트머리에 1년 365일 동안이나 살고, 누렇게 뜬 얼굴에 분가루 한 번 칠하지 못하고, 펑퍼짐한 옷으로 덮인 뱃살을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나에게 던지는 핀잔이었다. 가끔은 네가 언제부터 미모의 여인이었냐고, 올챙이 시절을 잊었느냐고, 그런 관리도 자기 관리냐고, 꼬집어내고 싶었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언제나 흥순의 본 모습을 상기하고 있었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스스로 자유부인이라고 자처하는가?

그런 흥순도 나까지 자유부인으로 나선다는 것은 극구 사양하여 말렸다.

<자네가 그렇게 흡족해 하신다면 저도 돈 좀 벌어 볼까요?>

<않되! 언니는 절대로 돈을 벌면 안 된단 말이야. 그냥 아껴서 써라! > 

그 미각을 알아버린 사람의 귀가는 당겨질 수 없었어도 오랜 지기의 출타는 병적일 만큼 싫어하는데서 변해버린 흥순을 변하지 않은 흥순으로 대할 수 있었다. 어쩌면 돌아갈 수도 없을 만큼 자꾸만 자꾸만 멀리가고 있는 스스로의 위안을 그런 나에게서 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 자기는 많이 벌어야 되고 나는 벌면 안 된다는 법령이라도 있어? 모든 면면들이 전부다 궁색해서 해보는 소리인데?!>

<제발 언니는 집에 좀 있어라. 우리 이런 돈 없었어도 불쌍한 아이들 깨끗이 씻기고 잘 돌보고 잘 먹이고 기쁘게 살았잖아!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잖아?! 문득문득 이런 돈을 내가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보육원이 그리워져서.......>

마음은 쓰면 쓸수록 아끼고 모아져서 필요할 때 꺼내 볼 수 있는 힘이 되었지만 물질은 쓰면 쓸수록 소모성이 강하여 늘 부족하였고 그 충족의 갈증은 심화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생활의 흐름은 윤택하고 풍족하였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물질의 만능을 답습해갔고 남편은 남편대로 정서의 온화를 되찾으려하지 않았다.

흥순은 더 센 자유를 원하고 있었다.

 

적어도 가족 안에서는 재테크의 귀재로 인정받았고 능력 있는 엄마요 아내였다. 그만큼 바쁘다는 동사가 형통되었고 가슴은 허허한 벌판에 서서 보이지 않는 종착역을 응시하고 있었다.

흥순이 나에게 구체적인 일의 정체에 대하여 말해 준적은 없었지만 내심은 적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말리지 않은 방조자는 아니었다. 삶이 사람을 속였고 사람은 그런 삶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아야 한다고 여겼을 뿐이다.

<옛날 옛적에 물 건너간 엄흥순을 생각하면 뭘 해? 쇼핑이나 하자.>

<쇼핑은 얼마 전에도 했잖아?! 그냥 앉아서 나랑 같이 이야기나 하다가 가.>

<아니야. 저녁에 굵은 거 있어. 마음 풀어서 준비해야지. 앉아 있으면 심란하잖아?>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백화점 안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근심 있는 사람도 없었고, 백화점 안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돈 없는 사람도 없었고, 백화점 안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없는 것 없이 다 있었다. 흥순과 나의 모습은 백조와 오리 수준은 아니라도 홍학과 오리 정도는 되어보였다. 흥순도 나도 찻집에 앉아 있을 때 보다 뇌세포의 순환이 활발해졌고 육신의 작동도 원활해졌다. 흥순은 늘 살 것이 많았고 나는 늘 살 것이 없었다.

 

생활필수품을 사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대부분 흥순의 옷이거나 화장품, 아니면 신발과 핸드백이거나 스카프를 사기도 하고, 가끔은 흥순이 전에 펀치를 들고 붙였을 법한 액세서리 소품들도 샀다. 그것들을 언제 다 입어보는지? 언제 다 발라보는지? 언제 다 신어보고 들어보고 걸쳐보는지? 알 수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가족이라는 단위에서 바라볼 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목격들이었다. 흥순은 급격하게 편향적인 쇼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들 아빠 것도 좀 사구 애들 것도 좀 사야하지 않아?>

<아니야. 언니!>

<왜? 아이들은 좋아할 텐데?>

<우리 애들이 언니네 애들 같은 줄 알아? 우리 애들은 사다줘도 고마운 줄을 몰라요. 돈으로 줘야해. 그래야 지들 마음대로 사고 조용해.>

<그럼 애들 아빠 것이라도 좀 사. 따라다니는 사람이 보기에도 민망해서 그래.>

<.......>

묵묵부답의 흥순은 남성복이나 남성용품점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같이 한 번 구경이라도 해 보자. 우리 만나서 얼굴 본 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하지만 지금은 애들 아빠도 몸이 좀 불었을 것 같기도 한데......?>

<내 인생이 지금 누구 때문에.......>

 

흥순의 목에서 숨 한 모금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뱉었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흥순은 나에게 자기가 하는 일의 부정보다는 긍정을 더 많이 피력 해 왔다. 감히 인생의 좌절이나 비애에 대하여 누구를 원망하는 기색을 비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견하지 못했다. 더구나 공동의 공유를 누리고 관심이상의 화목을 지켜가야 할 가족이라는 첫 출발의 책임은 여인의 의지만으로 지켜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의 의지는 강제적 풍요 앞에서 무기력해졌고 절박하지 않은 안도 속에서 나태해갔다. 그렇다면 어림짐작을 하여도 쇼핑은 자유부인의 독점적 자유여야만 한다. 아니다. 쇼핑은 자유부인의 멍에에 연결된 고삐여야만 한다.

 

나는 갑자기 빈 껍질뿐인 흥순에게 무엇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의무적으로라도 가득가득 채워주고 싶은 사명감에 몰입하고 말았다. 사야 할 것도 많아졌고 사고 싶은 것은 더 많아져버린!

무수히 떠오르는 물품구입 명세서를 머리에 이고 흥순이라는 마네킹 앞에 섰다. 고르는 안목은 구매자의 필요에 따라 화려해졌다.

<여사님께서 비즈니스를 하시려면 눈에 화악 뛰어야지요?>

너스레와 진담이 몸짓과 말에 섞여 달려 나왔다.

<응! 언니. 가급적이면 가슴선이 살아났으면 좋겠어.>

쉽지 않은 일치였다.

 

화려한 치장에 감춰진 흥순의 몸은 말라있었다. 자기 관리차원의 다이어트라고 보기에는 탄력을 잃었고 시각적 주문에 응해야하는 유흥의 상품이었다. 어떤 옷을 입어도 무엇을 들어도 반짝이 냄새가 났다. 쿨렁한 뱃살을 출렁이며 욕설을 퍼붓고 나타났을 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때는 입술 선과 상관없는 립스틱을 덕지덕지 바르고 활보하는 촌년처럼 천박하더니 이제는 의복이 사람을 알아보고 있었다. 입어보는 옷마다 어울렸다. 걸치는 소품마다 현란했다. 그렇게 묻어나는 색정마저도 자연스러웠다.

 

<언니, 섹시해 보여? 섹시해 보인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거든!>

같은 여자인 내가 보아도 슬픈 어미 새의 교태쯤으로 보였다. 도대체 흥순이 만나는 부류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어느 물에서 노는 인물들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이해하는 척은 해줄 수 있었다.

<너무 예뻐! 나랑 친구하는 게 안 되 보일 정도야. 이제부터는 우리 서로 아는 체 하지 말자.>

흥순은 찻집에서 보다 느긋하고 안정되어 보였다.

<그 정도야?>

놀라는 기색이 가식은 아니었다.

<언니랑 아는 체 하지 말아야 한다면 섹시하지 말래. 내가 꼭 섹시해야만 되는 그런 여사님은 아니거든!>

 

변해가는 자신에 대하여 부정할 수는 없어도 본래의 마음조차 상실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서 삶의 방식이 변형된다. 마음보다 육신이 먼저 형편이라는 우선적 도가니에서 몸부림치며 정신의 혼란은 방황하고 달래고 정착하는 차선의 길을 닦아간다. 그러면서 사람은 마음이라는 깊이를 다스려 다 살게 되어있었다.

<어유. 마마님! 이런 옷들을 아무나 소화해 낼 수 있겠습니까요? 저 같은 사람에게는 거저 입으라고 하셔도 못 입을 옷들이신데 마마님께는 너무나 잘 어울려서 하는 말입지요. 히히~!>

<그래. 언니는 너무나 좀 촌스럽고, 나는 너무나 좀 튀지?!>

<그럼 어때?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 있는 걸! 나는 에스키모 방한복을 입고 흥순이 비키니를 입었다고 해도 당당하게 손잡고 걸어갈 거야. 그렇지 않아? 나는 그럴 수 있는데.......>

<하하하! 상상이 안 된다. 언니는? 하하 하하하!> 

 

흥순은 대소를 터뜨리며 웃었다. 얼마 만에 들어 본 웃음소리인가? 늘 내 쪽에서 흥순의 변화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고 흥순은 흥순대로 그런 내 마음을 살펴서 지내야 했을 것이다. 속으로는 그런 옷을 왜 사느냐고 점잖아 보이는 옷을 사라고 훈계를 하면서도 겉으로는 사라고사라고 응하였으니 얼마나 불편한 교류를 형성했을 것인가?

참으로 편안하게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였다.

<그렇게 크게 웃으니까 너무 좋다. 비즈니스 할 때도 그렇게 웃어야 해? 당당하게 웃으며 일을 해야지 속으로 숙어들고 그러면 못써.>

<그으래? 우리 언니의 생각은 언제나 대단한 발상을 구하시지! 오늘 부터는 언니가 시킨 대로 웃어 볼께.>

서로가 서로를 수용하고 있었다.

 

보육원에서 나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이해하며 공생의 관계를 역어 의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설에서 다져온 평범하지 않은 심성의 가치관에 대하여 누구나 흔하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데서 누구나 벗을 삼아 그저 복잡하게 얽혀 사는....... 그런 사람들은 못 되었다. 누구보다 가까이에 머물러 살아온, 어찌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인연이었다. 관계가 소원해지고도 남을 요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흥순은 흥순대로 삶의 모습이 바뀌어버린 면구스러움에도 자신의 마음을 나에게 붙여놓으려고 애를 썼고, 나는 나대로 그런 흥순을 소화하지 못하면서도 마음을 끌어안고 억지지탱이라도 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성장하느라고 겪게 되는 아이들의 고비까지 함께 나누어온 공통의 분모가 되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너무나 잘 아는 사이였다.

 

<언니가 없었으면 내가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싶어. 우리 서로 재미있는 사이도 아니잖아요? 그저 싱겁고 무덤덤한데 오래도 사귀었지 싶어. 언니는 들어가세요. 애가 학교에서 올 시간인데 언니는 그 시간 어기면 안 되는 사람이잖아?! 어서 가요. 오늘은 정말로 고마웠어요. 아니지! 늘 고마운데 오늘은 더 많이 고마웠어! 사랑하는 언니.>

<그래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매번 나만 먼저 가서 어떻게 해? 미안해서? 먼저 갈 테니까 하던 일 하고 천천히 가. 다음에 봐?!>

늘 종종 걸음을 치는 쪽은 나였으면서도 또 늘 싸아한 안쓰러움을 두고 가는 쪽도 나여야만 했다. 그렇다고 흥순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내 아이는 다니는 학원이 없어서 학교 끝나는 시간이 귀가 시간이었지만 흥순의 아이들은 학원과 과외학습이 끝나는 시간이 귀가시간이었다. 내 아이는 성적이 늘 그만그만하였고 흥순의 아이들은 상위권의 자리를 양보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자식들이 쥐고 있는 그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라도 자본의 충분조건인 홍등의 일거리를 놓을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ㅡ계속ㅡ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