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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강론] 연중 제2주일 (심흥보 신부님)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4 조회수882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을 위해서"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여하면
서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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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일]  요한복음 1,35-42


사람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쉽게 발견하는 것은 그의 약하고 모자라는
모습입니다. 자식도 귀엽긴 하지만 실제로 우리 눈에 띄는 것은 잘하는
모습보다는 실망스런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고 합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현재의 모습만이 그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그가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보이지
않고 그의 현재 행동만이 드러나 내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부모가 “넌 그것 밖에 못하니?”등의 질문을 자식에게 던짐으로
써 부모의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는 실망스런 평가가 자식에게 창의성과
가능성을 죽이고 오히려 반대로 주눅을 들게 만드는 아쉬움도 종종 보게
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8장 25절에서 “우리는 보이
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고 더 보이지 않는 가능성과
숨어있는 재능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우리의 신앙이
너무나 미약한지 우리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드러나는 모습만을 바라보
고 평가하고 단죄하는 경우마저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더군다
나 우리의 가능성을 보시고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오신 아기 예수님께
감사만 드릴 뿐 전혀 행동으론 보답하지 못해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가능하면 사람들의 장점만을 보아주고, 지금 당장 못해도 그 가능성을
보아 일을 맡기고 양성하는 일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지금
당장 일 잘하고 검증된 사람만 찾고 새로운 사람들을 키우려 하지 않으
니, 부활의 희망이라는 미래보다 오늘이라는 현실에 드러난 과거 속에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미사 전례 안에서 읽은 이 복음을 읽을 때마다 궁금합
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요한이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고는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36)라고 말합니다. 요한이 먼저 예수님
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깨닫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자 요한의 두 제자는 자기 선생님의 말을 듣고는 예수님을 따라갑니
다.

예수님께서 그 두 제자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는 가시던 길을 멈추시
고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그 요한의 제자들이 말합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뒤따라가서 도대체 무엇을 보았을까?
그들이 어떻게 예수라는 한 인간 안에 숨어있는 그리스도라는 천주성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무엇을 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메시아라고 확인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언제나 궁금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들은 이
복음서 안에 써 놓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어쨌든 그들이 그들의 이 첫 만남이 하도 명확해서 그 때 그 시간
을 적어놓았습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이 제자들의 질문과 대답을 오늘 우리의 삶에 비추어 본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성당 신자들 사이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발견하십니까?’하는
질문이 될 수 있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세례를 받은 이후에, 언제 어떻게 예수님
을 성당에서 만나고 느끼십니까? 누구를 통해서 그리고 어떤 기회에
느끼십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를 다르게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
각자가 하느님을 체험하고 느끼는 것도 서로 다르다고 봅니다.

“와서 보시오!”라는 성서 구절은 지난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행사의 표어였습니다. 과연 무엇을 우리가 보여주기 위해 사람들을
성당에 오라고 초대하는가 하고 스스로 자문해 봅니다. 그 때의 기록에
의하면 “한국교회는 이를 계기로 하여 적극적인 선교의 자세를 분명히
하고, 전국 교구의 주교들이 합동으로 봉헌한 미사에서 신도들과 함께
이웃을 향한 봉사의 자세를 확인하였다”고 썼습니다.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또한 사람들도
초대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알아야 남들에게
보라고 보여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부모님과 선배 신자들인 성당을 통해 본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
지를 명확히 자각하고 또 내가 사는 신앙생활의 방법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과 뭔가 달라도 달라보여야 다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보고 발견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말 이 현실 사회
에 그냥 두 눈으로 발견하기 힘든 그야말로 천주성을 간직하고 있는
신비스러운 것이어야 사람들을 초대하고 보여줄 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그분들이 우리를 보고 신비스럽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불륜을 멀리하십시오. 여러분의 몸이 여러
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였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1코린 6,15-16.18ㄱ.19-20)
말이 아니라, 몸으로 드러내고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첫 번째 독서에서 소년 사무엘이 처음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스승이신 엘리가 부르는 줄 알고 엘리에게 세 번이나
달려갑니다. 세 번째가 되서야 엘리는 주님께서 소년 사무엘을 부르시는
줄 알아차리고 사무엘에게 이릅니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하
여라.”(1사무 3,9)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만나고 하느님을 따르는 하느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현실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며,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악마의 움직임 그리고
그 움직임에서 승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힘들고 지쳐도 사라지지 않는 희망.
아무리 부정과 불의와 폭력이 판을 치는 것 같아도 마침내 승리하고야
마는 진리.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많아도 결국 드러나고야 마는 어머니
같은 사랑.

그리고 동시에 주님의 승리를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 안에
숨겨져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과 주님께서 그에게 주어진 선물인 그만의
장점과 가능성을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믿고 바리기에 현세에서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가치를 존중해 주고 또한 나 자신도 스스로 드러
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연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믿음의 표지를 발견하고 선포하며 그 믿음을 살아
나가기로 합시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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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더욱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 3,30)
예수님, 저는 예수님께 의탁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모든 성인들과 천사들의 기도와 선행도 한 대의 미사와 비교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저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저희의 전부가 되소서.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시면, 질그릇같은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http://예수.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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