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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으면 보인다.!!!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5 조회수842 추천수8 반대(0) 신고

 

 나해 연중 2주일 요한 1, 35-42- 믿으면 보인다. 

 

                                                    

 

“나” 라는 노래로 유명한 송명희씨는 뇌성마비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기 전 의사가 아기의 뇌를 집게로 잘못 건드려 소뇌가 손상되었습니다. 신체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소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그녀는 평생 동안 단 한차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합니다.

그러한 그녀가 다음과 같이 고백하며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걸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걸 갖게 하셨네.


사지가 움직이지 않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느님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남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것을 가지지 못했기에 하느님은 공평하신 하느님이 아니라, 불공평한 하느님이신데, 어떻게 공평하신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 시를 쓴 송명희씨 역시, 사춘기 시절 자산의 탄생을 절망해 지내다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죽을 때 죽더라도 자신을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세상에 나오게 하신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절규하다시피 하루에 몇 시간씩 목숨을 걸고 기도를 드렸고, 그 결과 17세에 하느님 만나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실이나, 사건들은 보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보고 믿는 시대가 아니라, ‘믿는 대로 보이는 시대’입니다.

신학, 신앙의 측면뿐만 아니라, 일반학문에서도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사실적 근거를 토대로 하는 인문과학에서도 이제는 믿는 것이 조금씩 실현되어가는 시대요, 믿는 대로 보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중요하면서도,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곧 삶과 분리될 수없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일예로, 신호등과 횡단보도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약속입니다.

파란불일 때 지나가고, 빨간불일 때 멈춰서야 합니다.

그런데, 파란불일 때 건너가게 되는 것은 파란불이 일종의 신호 기호일 뿐만 아니라, ‘나는 지금 지나가지만, 상대방은 멈춰 설 것이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믿음이 없다면, 건너가지 못할 것이고 그 결과로 많은 혼란이 야기될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 자체입니다.

믿음을 갖고 살아가기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지닌 믿음이 이러하기에... 서두에 말씀드린 송명희 자매도 이러한 믿음으로 하느님을 보았고, 체험했기에 하느님을 공평하신 하느님으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는 대로 보게 대고, 믿는 대로 알게 되는 것은 독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1독서에 사무엘은 엘리의 말을 듣고 자신을 부르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것임을 믿었기에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나이다.” 라는 응답을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성령의 성전이요,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알려 줍니다.

이는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바로, 믿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성령의 성전으로 변화시켜 주셨다는 것을 믿기에... 그리스도의 지체로 살아가게 해 주셨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 주심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복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의 두 제자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요한의 말을 믿은 후부터는 예수님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 “스승이요, 메시아”로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안드레아는 형에게 가서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라고 말하며 형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 줍니다.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해가 안 되어 막연하게 느끼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강압적으로 보고 느끼게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보게 하고 느끼게 해줍니다.

그 보고 느끼는 것을 갖고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주변에도 많은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려운 처지임에도 남을 위해 봉사하고, 늘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분들의 한결같이 말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믿고 또 믿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믿는 하느님을 보고 만났습니다. 바로 저와 함께 살아가는 하느님을 보고 체험했기에, 이렇게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랍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언제 하느님을 보고 느끼십니까?

또 보고 느끼기 위해 어떠한 자세를 지녀야 합니까?

믿으면 보이는 것임에도... 여전히 보이는 것을 믿으려 하지는 않습니까?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나/송명희와 그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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