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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6 조회수609 추천수6 반대(0) 신고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되는 요르단 강>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저희 본당 박준양 신부님의 1월15일 (주일)미사 강론 말씀입니다. 강론하신 뜻이 훼손될까 조금은 염려됩니다.

 

성서의 장면을 영화로 찍는데, 그 장면에 내가 들어가 있는 방법으로 묵상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그러한 방법으로 묵상하기에 좋은 장면입니다.

 

선 불교에서는 동문서답식으로 대화가 이루어 지는 경우가 있는데, 언어를 뛰어넘어서 순간의 느낌으로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예수님과 제자들도 선문답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세자 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요한을 따르던 제자들이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라는 요한의 말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살금살금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던 발길을 멈추시고 뒤돌아 보시며 빛나는 눈동자로 쳐다 보십니다. 깊고 맑고 그윽한 눈동자, 내가 살아온 삶,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듯한 눈동자로 그들을 바라 보십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라삐라는 말은 예수님이 사용하시던 아람어로 스승님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속에는 "저희는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촌철살인이 이루어집니다.

 

이들의 말에 "와서 보시오." 라는 말씀은 무책임한 것 같으면서도 모든 것을 책임지시겠다는 의미가 느껴집니다. 이 장면을 깊이 묵상해보면 역동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매력에 사로잡힌 이들과 그 사람들의 결단을 볼 수 있습니다.

 

2000년전에 이루어진 말씀이 오늘, 지금 나에게 이루어집니다.

 "너는 무엇을 찾느냐?" 가슴이 꽉 막혀 버립니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찾으며 살아 왔는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보장된 길이 아닙니다. 길로 비유하면 고속도로가 아니라 구비구비 산 속 오솔길입니다. 고속도로처럼 앞에 무엇이 있는지 이런 저런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와서 보시오." 거기에 커다란 바위와 깊은 계곡과 높고 험한 산이 가로막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동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결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어지럽고 복잡한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 모여 있는 우리는 복된 결단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때로 앞이 보이지 않는 대목에서 망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만 "와서 보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공과 출세와 명예를 보장하시지는 않습니다. 그 눈동자로 "와서 보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눈동자와 말씀으로 제자들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당신의 눈동자를 우리에게 향하시며 "와서 보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이지만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길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눈동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참으로 선하시고 좋으신 분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바위나 고통이 가로 놓여 있어도 커다란 은총의 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쏜살같이 지나 갑니다. 가장 가치 있는 길, 가장 고귀한 길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우리 모두 "라삐" 라고 대답합시다. "스승님, 나는 그 길을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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