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용서와 사랑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6 조회수671 추천수1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을 위해서"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여하면
서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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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사랑]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라", 이처럼 애매모호한 계명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을 온마음으로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합니
다. 그러나 그가 자기 이웃한테 가시 돋힌 말을 거리낌없이 하고, 앙칼지
게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되면, '저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하고 의문을 품게 됩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하느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도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 수 있는 것
입니다. 주님이 당신을 온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계명 다음으로 "네 이웃
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신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그것이 바로 하느님을 온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이처럼 인기없는 계명도 없습니다.
내 이웃 가운데는 내 원수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원수를 내 몸같이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왜 이런 불가능한 명령을 계명이라면서 지키라고 요구하시는 걸
까요? 그러나 "네 몸같이"라는 말을 가만히 따져보면, 사실 그렇게 끔찍
한 요구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우선, 한가지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사랑합니까? 어느 정도로
사랑합니까? 여러분의 모든 면이 전부 마음에 듭니까? 항상 좋게 느껴
집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뭔가 일을 잘못할 때, 자신이 원망스
럽기도 하고 때로는 저주스럽기도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저 역시 자주 열등감을 느끼고 작은 일에 분개하고 탐욕을 부리는데,
저는 이런 제 모습이 정말 싫습니다. 이렇게 제 모습을 선명하게 보게
되는 순간, 저는 제가 아주 추한 인간임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이웃의 어떤 추한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아! 정말 싫다, 역겹다'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느끼는 것과 똑같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와 악은
마땅히 미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그런 죄와 악을 미워할
때, 자기 자신 안에서 그런 죄와 악을 발견했을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미워하라고 합니다. 즉 그 사람이 왜 그런 짓을 저질러야 했을까 안타까
워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든 그가 치유되기
를 바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실천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매일 죄를 짓어도 그런 죄를
짓는 나 자신을 '싹수가 글러먹은 놈!'이라고 하지 않고, '나는 나쁜 사람
이 아닌데, 왜 자꾸 이러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못난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이것이 사랑입니다.

즉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호감이 가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호감을 주려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 역시 '그에게
호감을 느껴라'든지 '그에게서 매력을 찾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껴주고 쓰다듬는 것처럼, 남도
그렇게 대해주라는 것입니다.

신문에 아주 흉악한 범죄기사가 났다고 합시다. 그런데 다음날, 전날의
보도 내용이 전부 사실이 아니라거나 그렇게까지 악한 범죄는 아니라는
식으로 내용이 바뀌었다고 합시다. 그때 '정말 잘 됐군.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니 다행이야'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까, 아니면 '아! 김샌
다'는 생각이 듭니까?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결국에는 마귀가 되는 길입
니다. 그것은 검은 것이 좀더 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면 , 나중에는 회색도 검게 보고 싶어할 뿐아니라,
급기야는 흰색까지도 검게 보고 싶어하게 됩니다. 이 짓을 그만두지
못하면 영영 증오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잘되기를 바란다는 뜻이고, 이웃을 사랑
한다는 것은 이웃이 잘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결코 자신에게나 이웃
에게나 호감을 가져야 사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좋아하는 마음이나
애정이 절로 생기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좋아
한다고 해서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맹목적인
애착을 가진 어머니는 그 자연스러운 애정 때문에 아이를 '망칠' 위험이
있습니다. 즉 자신의 애정 본능을 채우려다가 아이가 나중에 누려야 할
참 행복을 희생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그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면 됩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
하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감정이
없다고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하느님을 사랑한다치고 행동하면
됩니다. 내가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무엇을 할까?, 하고 스스로
에게 물어본다음, 그때 떠오르는 일을 가서 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의지입니다
좋았다가도 싫어지고, 뜨거운가 하면 이내 냉랭해지는 우리의 감정으로,
사랑을 측정하지 맙시다. 그대신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변함없는 사랑,
우리의 죄나 무관심에도 결코 지치는 법이 없는 그분의 사랑을 생각합시
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또 당신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죄를 치료하기 전까
지는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 단호한 의지를 십자가 위에서 이미 보여주셨으며, 우리 역시 물러서
지 말라고 첫째가는 계명, 둘째가는 계명을 합쳐서 단 한 가지 새로운
계명을 주셨으니, 바로 다음의 말씀입니다.
"내가 그대들을 사랑한 것처럼 그대들도 서로 사랑하시오."

* 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pp.182-191(용서); 204-210(사랑)을
요약해서 쓴 강론입니다.

(최형근님, 베네딕토요셉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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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더욱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 3,30)
예수님, 저는 예수님께 의탁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
모든 성인들과 천사들의 기도와 선행도 한 대의 미사와 비교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저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저희의 전부가 되소서.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시면, 질그릇같은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http://예수.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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