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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머니의 비애 !!!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7 조회수797 추천수10 반대(0) 신고

 

                               어머니의 비애

 

 

                                                         

 

 

어제 복음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안식일 규정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관한 내용은 부차적인 것이고, 그 이면에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 간의 긴장과 대립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소위, 지도층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보며 배척하는 것일까요?

왜 예수님을 고발하여 죽일 모의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을 일찍 사별한 여인은 여러 자녀가 있었지만, 유독 막내아들에게 많은 정성과 사랑을 쏟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막내아들 역시, 비록 다리를 쩔뚝거리는 장애를 갖은 어머니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사관학교를 졸업할 때도 장애인인 어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고, “어머니 덕분에 졸업했습니다.” 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어머니는 참 기뻤습니다.

혹시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면 어떨까? 하고 걱정했는데, 아들에게서 “어머니, 어머니처럼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괜한 자격지심을 가졌구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아들은 부잣집 처녀와 결혼하면서 소위, 상류층이라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어머니에게 안부전화 드리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다른 자녀들로부터 손자인 막내아들의 첫 아들이 돌잔치를 한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갔습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뭐 하러 가젠 햄수과? 몸도 불편한데, 그 핑계로 가지맙써!’ 라는 자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아들을... 손주의 돌잔치에 가는데, 무사 가지말랜 햄시니’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반겨줄 아들을 생각에 마음이 좀 설렜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관학교를 졸업할 때는 기쁘고, 당당하게 어머니를 맞이하고 안아주었던 아들이, 돌잔치에 어머니가 찾아오자,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머뭇거리더니, ‘어떵 알앙 와수과?, 그냥 집에 갑써! 나중에 전화 허쿠다.’고 말을 하며 바쁘게 어머니를 돌려보냅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내가 뭐 하러 가신고...’ 아들에게 창피함과 불편을 준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며 울면서 집에 왔다는 말을 어렸을 적에 어머니에게 들었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막내아들은 그 누구보다도 어머니를 사랑했고, 상대방에게도 자신의 어머니라고 당당하게 소개했었습니다.

자신이 힘들게 살며 어렵게 공부했기에... 그런 자신을 뒷바라지 해준 어머니가 고마웠고 존경하였습니다.


그런데, 삶의 자리가 바뀌다 보니, 소위 상류층 생활에 익숙하다보니, 가난한 어머니가... 다리를 저는 장애자인 어머니가 더 이상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의 삶에 도움을 준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매몰차게 어머니를 배척하였고, 마음에 비수를 꽂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복음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없애 버리려는 사람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말과 행동으로 지배층, 상류층이라 할 수 있는 자신들의 삶이...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허물과 위선이 만천하에 드러나 버렸습니다.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득권이... 권력이 예수님에 의해 없어질 위협을 느낀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이 삶에 걸림돌이 되기에, 배척하고 없애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늘 우리에게 어머니같은 분이요, 언제나 내편입니다.

그 어떤 잘못을 한다 하더라도.. 그리하여 모두가 나를 외면하고, 비난하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변함없는 마음과 사랑으로 다가와 보듬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런 분이심을 믿기에 “네” 응답을 하였고, 바로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의 모습에 예수님은 디딤돌입니까? 걸림돌입니까?

나의 삶에 있어 예수님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존재입니까?

아니면, 나의 모습을 더욱 고귀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분입니까?


만약, 이중적인 모습을 살아간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걸림돌입니다.

만약 이웃들에게 ‘나는 천주교 신자요.’ 라며 당당히 외치지 못한다면..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예수님은 나의 삶에 방해물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말은 하면서도, 삶과 행동으로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멀리하는 바리사이파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쉬울 때만... 힘들고 괴로울 때만, 주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온 삶과 전 존재를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지금 나의 삶에 있어, 예수님이 걸림돌이라면... 부끄러움의 대상이라면... 그렇게 만든 허물을, 부끄럽게 만든 기득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조금씩 버려나가도록 합시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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