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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식일의 주인은 너다!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7 조회수822 추천수10 반대(0) 신고
 


안식일의 주인은 너다 

복음: 마르 2,23-28

아이들이 주일날 교회에 가려고 하지 않아서 고민이라며 
교사인 내게 어머니들은 자주 말씀하셨다. 

언젠가 우리 딸애도 
"주일날 꼭 성당에 가야만 하는 것인가"하고 물은 적이 있다. 
한술 더떠서 자기가 이 다음에 크면 
다른 종교를 믿을 수도 있다고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세계사를 배웠는데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며 엄마의 생각을 물었다. 

나는 일반적인 역사학자의 관점과 신앙인의 관점을 
분리해서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었다. 

어느땐 교리 시간에 배웠지만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며 의문을 털어놓기도 하였다. 

머리가 커질수록 다른 종교에 대한 책들도 읽게 되자 
그 종교들에도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마침내 종교를 바꾸어볼까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고 답변했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딸에게 덧붙여 말하기를, 

예수님 외에도 훌륭한 분들이 
이 세상에 많이 살았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며 
그분들의 가르침은 너무나 좋아서 
진정으로 잘 따라 살 수만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을까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엄마는 예수님을 만난 것이 먼저이고 
그분이 너무 좋아서 아주 오래된 친구를 배반할 수가 없다. 

힘들고 아플 때마다 내 곁에서 힘을 주셨고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같이 기뻐하셨던 분.
그분에게서 부족함을 느껴보지 못했는데 
뭐하러 다른 친구를 얻으려고 하겠느냐? 

처음으로 내 인생의 바른 길을 가르쳐주셨고 
사랑을 극진히 쏟아주신 분을 배반한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딸은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초등부 반주를 맡고 있을 때, 
반주가 틀리면 노려보던 신부님이 있었다. 
떠드는 아이들, 동전 소리를 내는 아이들, 
전례 예절을 틀리는 복사들, 
해설자들에겐 살얼음같은 공포의 한 시간이었다. 

딸은 반주가 틀릴까봐 얼마나 연습을 해갔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덜덜 떨려서 미사 전에 
묵주기도를 한 꾸미씩 하면서 성모님께 빌었다고 한다. 

성모님은 넓은 치마자락으로 자신을 감싸주시는 것 같았고
한번도 틀리지 않고 반주를 해 냈을 때의 안도와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밖에도 자기 나름의 소소한 신앙 체험을 이야기했고 
그 기쁨의 기억들을 회상해내는 딸의 눈이 글썽글썽하며, 이내
"나도 예수님만큼 좋은 분이 없어. 종교를 바꾸는 일은 없을거야." 하였다.

그렇다.
어른들에게는 어른만큼의 체험이 있고, 
아이에게는 아이만큼의 체험이 있는가보다. 
그런 후로 여태까지 성당에 잘 다니고 있고 
어쩌다 주일에 빠지게 되는 날이 있으면 마음이 괴로운 것같았다. 

주일 날 빠지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하느님과 만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시간들의 체험이었느냐가 문제이다. 

즐거운 곳, 안식을 주는 곳, 감동을 주는 곳, 
평화를 느꼈던 곳, 위안과 사랑을 체험했던 곳은 
그 장소가 어디든지간에 찾아 나서게 되어 있다. 

그것은 누가 만들어주기를 바라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다. 
마음을 열고 온갖 편견을 버리고 
자신이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만 열리는 세계이다. 

살얼음장을 만드는 신부님이 있다고 해서 못 만나는 기쁨이 아니다. 
사목회 임원들이 설쳐대서 못 느낄 평화가 아니다. 
참견장이 수녀님이 있다고 해서 못 가질 안식이 아니다. 
꼴보기 싫은 형제자매가 있어서 못 얻을 자유가 아니다.
아무도 뺏어가지 못할 선물을 마련해 놓고 주님은 부르시는 것이다. 

미사 시간에 떠들고 장난만치는 주일학교 친구들을 미사가 끝난 후 
제단 앞으로 불러내어 모두 무릎을 꿇린 다음 손을 합장하게 하고 
십자가를 쳐다보게 하면서 나는 이런 기도를 했었다. 

"주님, 주님이 오늘 저희에게 주시려던 선물들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주님이 저에게 주시려고 마련한 그 선물들을 
꼭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셔요."하고 돌려보낸다. 

그들이 알아들을지는 모르지만 
그 얘기를 매번 반복하는 이유는 
미사란 또 주일이란 
주님의 선물을 받는 기쁜 날임을 인식시키려는 뜻이다. 

혼날 줄 알고 남았다가 기도를 하자고 하는 말에 안심하던 녀석들. 
기도하고 난 후에는 시키지도 않은 인사를 꾸벅하며 
의젓하게 돌아가던 녀석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안식일은 본래 하느님이 엿새의 창조 후에 이레째 되던 날 쉬셨기에 
인간도 마땅히 쉬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나중에는 출애굽에서 해방시키신 해방의 의미를 기억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이면서 동시에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안식일은 하느님 앞에서의 거룩한 쉼이다.(출애 20, 8-11) 
그러므로 엿새간의 잡다한 이기적인 욕망에서 해방되고, 
우리 손으로 이루겠다는 그릇된 생각을 종식시키며,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하느님 앞에서 맑게 정화시키는 날이다. 

과도하게 유출되는 아드레날린을 억제시키고 
엔돌핀을 뿜어내게 하는 기분좋은 하루를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인의 안식은 하루를 무위도식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인 하느님과의 만남인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만이 진정한 안식이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안에서만이 진정한 해방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밝히시면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날이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하신 날, 
그 안식일은 계명이라는 속박 때문에 지켜야할 날이 아니라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는, 
나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나의 날"이어야한다. 
안식일의 주인은 주님과 내가 되어야한다. 


비발디 사계 중 겨울 2악장의 아다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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