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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39) 긴 여행에 관한 약속 --- 셋 --- (51쪽 부터 끝까지)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19 조회수676 추천수3 반대(0) 신고
 

긴 여행에 관한 약속 --- 셋 --- (51쪽 부터 끝까지)

                                                     이순의

 

 

<문장의 기술은 부족할지라도 쓰기는 열심히 썼으며 이 시대의 누군가는 살고 있을 이야기를 제 부족한 솜씨로 완성해 보았습니다. 묵상글은 아니구요. 순수창작 소설입니다. 그 안에서 묵상할 것이 있다면 안으시고 묵상할 것이 없다면 그저 지어낸 이야기 한 토막의 재미를 즐기시라고 알려드립니다. 열심히 수고하여 마련한 것이므로 사랑하는 벗님들께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드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굿뉴스의 벗님들께 이 시대의 누군가 살고 있을 이야기를 드립니다. 2006년1월9일 월요일 부터.......>

 

ㅡ읽기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칸을 두었습니다. 단락과 무관합니다.ㅡ

 

-마지막-



         이순의

 

 

 

선희는 남편이 증거처럼 던져놓은 사진들을 꺼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박또박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면 볼수록 그 남자의 정성이 남편의 의무보다 커 보였다. 그렇게까지 열정을 쏟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남자에게는 여자가 있었다.

선희는 사진 속의 여인을 보며 망설였다. 여인의 사진은 어느 시점에서 끊어졌고 더 이상 촬영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그 사진들에 대하여 묻고 싶지도 않았다.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어온 남편에게 들어야할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은 선희를 당돌하게 했다. 선희는 사진 속의 그 여인를 만났다.

그리고 흥순도 만난 것이다. 그 여인에게도 돈을 주었는데 흥순에게도 돈을 주었다는 것이다.

 

선희가 찾아 갔을 때 사진 속의 여인은 너무나 이른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삶 자체를 환멸하고 있었다. 선희는 여인에게 위자료를 주었다. 받으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주고 싶어서 주고 왔다. 남편의 여자도 아닌 여인에게 위자료를 지불한 대가가 자신의 불행이 될 줄은 선희 자신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그 불쌍한 여인은 위자료를 사내에게 갈취 당하였고 버려졌다. 사내는 목돈이 필요하면 여자를 만들었고, 흥순은 목돈이 필요한 도구로 이용될 사냥감에 지나지 않았다. 선희는 흥순에게 돈을 주었다. 사내가 말한 두 번의 돈은 그것이었다. 한 번은 빼앗았고 한 번은 받아야 되는.......

 

<언니도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못했군요?>

<김선생 제게는 아이들이 있어서 견딜만해요. 어떻든지 생활에 필요한 것은 얼마든지 쓸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있으니까요. 그러나 엄선생이 돈이라는 수렁에서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돈을 그 남자에게 주면 불행을 막을 수 있나요?>

<네! 돈을 줘야만 그 남자는 엄선생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이고 다시 제 주변으로 돌아와....... 아무튼 꼭 그 돈을 엄선생의 손으로 그 남자에게 전해야만합니다.>

<그렇다면 그 남자에게 모든 것을 청산하고 오라고한 언니의 속뜻은 무엇이었나요?>

<그 여자 분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저는 신의 뜻을 모릅니다. 그분을 구하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남자가 행복해지도록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은 즐기면서 불행은 보복을 해야 하니까요. 더 이상은 묻지 마시고 꼭 그 돈을 엄선생이 직접 전달하도록 하세요. 부탁합니다.>

 

선희의 부탁이 간곡하였으므로 봉투는 다시 방향을 바꾸어 내 앞에 놓였다. 그리고 선희를 믿어보기로 하였다. 그토록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해바라기를 따라서 산다는 남자의 진실보다 선희의 물질적 도구를 믿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육원에서 불쌍한 아이들과 함께 살았던 그 미덕의 근본조차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흥순을 따라서 남자에게 돈을 주러 갔다.

 

느덧 분위기 좋은 교외의 찻집 뜰에는 나무들이 가을빛을 머금고 있었다. 바깥풍경이 훤히 내다보이고 나무가 가까운 창가에 앉았다. 아직은 색이 어설픈 단풍잎을 보면서 보육원을 생각했다. 홍색고운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신고식을 하던 임경옥이 보고 싶었다. 짙은 붉음이 그렇게 만발하려면 아직은 며칠 더 있어야 하겠지만 먼발치에 따로 앉아서 남자를 기다리는 흥순에게 손짓을 했다. 흥순도 나무를 응시하며 손가락을 들어 동그랗게 표시를 한다.

그 날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겸연쩍은 미소를 담고 웃어 보이는 경옥과 달리 관객들은 사뭇 진지하게 박수를 쳤다. 띄엄띄엄 앉은 자리에서 들려오는 손뼉소리는 합해지지 못하고 딱딱거렸어도 관객들의 성원은 우렁찼었다. 경옥의 답례는 우아했다.

곡의 이름을 알 수는 없었어도 어디선가 들어 본 기억이 선명한 연주였다. 경옥의 말대로 선곡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톡톡 튀는가 싶더니 빠르게 춤을 추었다. 희뿌연 형광등 불빛 아래의 붉은 원피스는 간혹 앞뒤로 숙였다가 좌우로 흔들렸다가 건반을 따라서 도취되었다. 굳이 연주곡명을 알려고 하지는 않았어도 연주자의 얇은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했었다. 경옥은 그렇게 신비롭고 감미로운 첫인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인생은 마라톤 같은 것! 좌절하지 않고 결승점에 도달하는 것은 외로운 노력이고 커다란 만족일 것이다. 달리다 말고 주저앉은 선수의 고통이 달리고 있는 선수의 고통보다 훨씬 크고 견디기 힘든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서 경옥은 죽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은 죽어서 그리웠고 살은 사람은 살아서 고마웠다. 나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변하지 않고 제 모습을 지키고 있어야 했나보다.

찻집의 오전은 고요했다. 흥순과 선희를 만난 것처럼 경옥도 만나고 싶었다. 임경옥을 만났더라면 얼마나 반가웠을 것이라는 막연한 아까움에 가슴이 시려왔다. 그토록 젊은 나이에 무엇이 그렇게 급하여 갈 길을 재촉하고야 말았는지?

<죽지 말고 살아볼 것이지! 바보같이......>

그때였다. 

 

찻집의 문이 열리고 남자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 남자의 얼굴은 낯이 익었다. 한 눈에 보아도 불길했던 첫인상을 알아볼 수 있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세발낙지를 사러왔던 임경옥의 첫 남자! 임경옥의 불행! 임경옥의 좌절! 그 사내였다. 이런 곳에서 다시 그 사내를 보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었다. 시선은 고정되었고 남자를 따라갔다. 그러나 스치고 말 줄 알았던 인연이라는 끈이 운명이라는 곡예보다 질겼던 모양이다. 남자는 흥순이 마주하고 앉은 탁자 앞에 섰다. 나는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아! 선희언니?!>

선희가 위자료를 준 여자가 경옥이었더란 말인가?


<부님, 이중성의 인간도 천당에 갈 수 있나요?>
<왜요? 아시는 분이 두 얼굴을 가졌던가요?>

<아니요. 저를 비롯하여 모두가 이중인격체일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선을 사랑하기 때문에 악을 용서해야 할지? 악을 저주하기 때문에 선을 능멸해야 할지를 몰라서요.>

<저라고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가장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느님의 사랑은 그렇게 무한하시다는 복된 말씀을 믿고 사는 수밖에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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