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가다가 이상해도 우리의 본성을 따라갑니다.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22 조회수534 추천수3 반대(0) 신고

 

 

지난 연말 12월 31일, 피정 때의 조현철 신부님의 강론 말씀입니다. 

 

요한(1, 1-18)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 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0절)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10대 뉴스를 들으면 명암이 교차합니다. 빛과 어두움, 좋은 일 나쁜 일 이러한 일들이 뚜렷하게 갈라 집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되돌아보면 그 일이 끝나고 나면 분명해 지는 것 같습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불 분명한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때는 그것이 아니었는데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큰일이면 큰 일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빛으로 생겨났는데, 빛이 왔는데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땅에 왔는데... 명백한 것을 명백한 것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못 볼까? 두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의도는 좋았는데 나중에 이상해 지는 것과 같이 처음에는 빛의 형태로 옵니다. 두번째 또 다른 문제는 우리의 마음의 눈에 여러가지 것이 끼어서 잘 보지 못합니다. 맑지 못한 것, 무질서한 애착, 사욕 편정 그런 것들이 끼어서 판단이 흐려 집니다. 가다가 이상해도 우리의 본성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리화 시키며 계속 기다립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깨달았다 해도 그 흐름이 드러났어도 계속 그 흐름을 타고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불편심의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깨달으면 그냥 맥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때가 끼고 가리워져 있으면 잘 보지 못하고 보았다 해도 빠져나오기가, 반전시키기가 힘듭니다. 황우석씨 사건에서 황우석씨에 대한 집단적인 반응들을 보면, 거리를 두면 보이는데 진리, 빛이 비치는데 그것을 안 봅니다. 보기가 싫든지 사람들이 안 봅니다.

 

우리 개인, 가정안에서도 그렇습니다. 거리를 띄고 보면 보이는데 못 보든지 보기 싫어서 아니라고 우깁니다. 진실과 빛이 가리워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 분을 맞아들이지 못합니다.

 

새해에는 빛을 빛으로 볼 수 있도록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도록 내면에서 변화가 있다고 하면 가정이나 직장 공동체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달라지는 출발은 나의 눈, 나의 마음, 나의 생각에서 그분의 부르심에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불편심의 마음을 가진 세번 째 유형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냐시오는 그런 지향을 안 되면 더 바래라고 합니다. 내일 부터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더 잘 응답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 번째 유형의 사람 : 하느님을 보다 잘 섬길 수 있는 이유만으로 재산을 취득하거나 버릴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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