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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머리가 잘린 이유 !!!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25 조회수629 추천수6 반대(0) 신고

 

 

                              용머리가 잘린 이유

 

 

                                                          

 

 

사신이나, 대사들은 어떠한 사명을 받고 파견된 곳으로 떠납니다.

좋은 사신, 훌륭한 사신은 얼마나 자신을 파견한 사람의 뜻을...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신으로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떠나라’는 사명을 받고 사람들에게 파견되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분들입니다.


사신에 대한 묵상을 하다보니 문득, 용머리가 두 쪽이 난 이유가 생각났습니다.

산방산 앞에는 용의 머리를 연상시킨다 하여, ‘용머리’라고 부르는 해안가가 있습니다.

이 용머리는 꼭 칼로 베인 것같이 두 조각이 나 있고, 그곳을 통로로 하여 썰물 때는 용머리 해안가를 한 바퀴 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아십니까?


불로초를 찾아오라는 진시왕의 명을 받고 길을 떠난 사신이 헤매고 헤맨 후에, 제주에까지 오게 됩니다.

찾으려는 불로초는 찾지 못하자 거의 자포자기식으로 산방산에 앉아 탁주를 하려고 고개를 들고 보니, 용이 태평양을 향해 포효하려는 듯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사신은 ‘저 용을 보니, 이 지역에서 태평양을 정복할 인물이 나오겠구나. 그래도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용의 머리를 칼로 베어버립니다.

사신의 칼에 베임을 받은 용의머리는 두 쪽으로 나눠지는데, 그 때 피가 튀게 됩니다.


산방산을 기점으로 서쪽으로는(사계) 검은 피가 튀었는데, 피가 튄 그 지역을 ‘검은 질’ 이라고 부르고, 또 동쪽으로는(화순) 붉은 피가 튀어 ‘붉은 질’이라고 부릅니다.

(아아 그렇구나. 아아 그렇구나. 믿거나 말거나!!! 불로초는 찾으려 왔으면 불로초만 찾을 것이지. 왜 죄 없는 용에게 해코지를 하고 갔는지 참 아쉽습니다. 분명, 진시왕의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못한 벌로 사약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11제자들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떠나라”는 말씀은, ‘나는 따라다니면서 수고하고 고생을 했으니, 앞으로 편하게 먹고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떠나라’ 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명을 부여받고, 앞으로 예수님께서 가실 고장에 미리 가서 평화를 빌어주고 병자를 고쳐주며, 하느님 나라가 다가 왔음을 전하기 위해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떠남에는 편함과 여유로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고난과 아픔 속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떠남입니다.

꼭 위선자요, 거짓말쟁이처럼 느껴지는 괴로움이 수반되는 떠남입니다.

자신에 대해 알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 대해,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수행하기 위해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떠남에는 주님의 축복과 돌보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떠남의 모습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바로  “디모테오”와 “디도” 성인입니다.

두 성인은 바오로 사도의 직제자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두 성인에게 “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였습니다.

두 분은 바오로 사도로부터 안수를 받고, 바오로 사도께서 전해주는 예수님을 마음에 담고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각기 속한 공동체를 향해 떠나서 사람들에게 평화를 빌어주고, 병자를 고쳐주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증언하며, 자신들이 떠나온 이유를 누구로부터 파견을 받아 떠나 왔는지를 알렸던 것입니다.

곧 자신들의 편함과 만족을 위해 떠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떠난 것입니다.


우리도 어떠한 목표점을 설정하고 이를 향해 길을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떠남의 여정 속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과연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파견을 받고 길을 떠나는 사람인지, 아니면 나의 만족과 즐거움을 찾기 위한 떠남인지를 살펴봅시다.


두 번째는 떠남의 길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예수님께 다시 돌아가기 위한 떠남인지 아니면, 비극이라 할 수 있는 허무를 향한 떠남인지 되돌아봅시다.

만약 내 자신의 만족과 쾌락을 향한 떠남이라면, 그리하여 허무만을 느끼게 하는 떠남이라면, 우리는 빨리 가는 길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발길을 돌리지 않기에는, 허무 속에서만 파묻혀 지내기에는 우리의 삶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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