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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나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27 조회수801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6.1.27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사무 하11,1-4ac.5-10a.13-17 마르4,26-34

                                                        



"하느님의 나라"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은 함께 갑니다.

땅 깊이 뿌리내린 만큼 하늘 높이 가지들 뻗은 나무들처럼,
내적 관상이 외적 활동을 떠 받쳐야 건실한 영성 생활입니다.

크고 화려한 업적 위주의
외적 활동 쪽으로 흐르는 현대인들의 경향으로,
삶은 점차 얕아지고 가벼워져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 공허감은 점점 커질 수뿐이 없습니다.

새벽에 읽은 중용의 한 대목입니다.

‘감춘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
조그마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는 데서 삼간다.’

유림(儒林)에 나오는 ‘근독(謹獨)’이란 뜻도 의미심장합니다.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하고 언행을 삼간다.’는 그대로
우리의 영적 삶에 해당되는 말씀 같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 선인들의 공부는
머리의 지식 공부라기보다는 마음의 사람 되는 공부였고,
특히 동양에서는
군자 되는 공부가 선비들이 추구했던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이분들 한결같이 깊고 고요한, 깨어있는 내적 삶을 추구했습니다.

복음의 예수님은 물론 이런 이들에게 계시되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고요하면서 힘 있게 전개되어가는 하느님 나라를 예민하게 포착했습니다.

땅에 뿌린 씨가 소리 없이 자라나는 이치나
새들이 깃들 수 있을 만큼 자라나는 겨자씨의 경우,
모두가 지금 여기서 은밀한 중에
자연스럽게 실현되어가는 하느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도 있듯이 그 누구, 그 무엇도
순리대로 전개되어가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저지시킬 수 없습니다.

새삼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는 무한한 인내의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
우리에게는 희망이 되고 무한한 위로와 힘이 됩니다.

이런 내적 신비를 맛보고 깨달아야 비로소 영적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관의 외적 감각의 유혹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내적 힘이 없으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고,
코로 냄새 맡고,
피부로 느끼는 것,
모두가 유혹의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온 힘을 다해 덩실 덩실 춤을 추었던 다윗,
아름다운 여인 바세바의 목욕 장면을 눈으로 보는 순간 유혹에 떨어져,
관계를 갖고 바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하고
감쪽같이 그의 아내 바세바를 자기의 아내로 취했습니다.

순간 욕심에 눈이 멀어 하느님을 까맣게 잊었고 엄청난 죄를 지은 다윗,
바로 우리 모두의 가능성이자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외적으로 향하다보면 본능과 감각의 동물성뿐이 남지 않습니다.
현대의 신자본주의의 문명,
본능과 감각을 자극하고 키우면서,
얕고 가볍게, 내면을 황폐하게 만들 위험성이 매우 큽니다.

매일 고마운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를 더욱 내적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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