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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것은 나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가다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28 조회수711 추천수4 반대(0) 신고

 

 

            <멀리 호숫가에 위치한 베드로 수위권 기념 성당과 정교회 성당>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 들이는 것이요, 나를 받아 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파견하신 분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마르 9, 37)

 

어린아이 하나를 반갑게 맞아 들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대체로 외면 당하는 이들에게 사랑어린 관심을 쏟는다는 의미다. 아주 신분 높은 명사를 맞이하기 위해 줄서 있는데 내 앞으로 어린아이 하나가 지나간다고 상상해 본다. 그럴 때 과연 나는 줄을 벗어나서 그 어린아이한테만 온 신경을 쏟을 수 있을까?

 

내가 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막강한 인사들을 만나기로 된 중대한 잔치에 가 가고 있다고 상상해 본다. 그럴 때 과연 나는 이 중요한 잔치를 망각한 채 길거리에 주저앉아 내게 손을 내밀며 돈 몇 푼을 구걸하는 사람과 몇 시간이고 어울릴 수 있을까?

 

내가 상을 받으러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고 상상해본다. 이럴 때 과연 나는 그같은 영예를 마다한채 친구들한테 따돌림 받고 외롭게 자기 아파트에 틀어박혀 있는 풀죽은 노파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어제 길거리에서 걸인 하나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가 내게 요구하는 것은 먹을 것 한 입 정도 살 수 있는 잔돈 몇 푼이었다. 그는 내게서 별다른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10달러를 내밀자 화들짝 놀라며 "고맙습니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를 연발했다.

 

그가 예상밖의 큰 선물에 놀라 어쩔줄을 몰라하는 것임을 알지만 나는 돌연히 크나큰 서글픔을 느껴야 했다. 나는 놓치고 싶지 않은 만남의 자리에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선물은 내가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구실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걸인을 반갑게 맞이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량 있는 사람다워지려고 노력했을 뿐이었다. 따라서 나의 ''아량'' 은 ''어린아이'' 를 반갑게 맞아들이기 싫어하는 내 뿌리 깊은 거부감을 드러내 보였을 따름이다.

 

 ''보잘것 없는 어린이'' 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보잘것 없어야한다. 그럼에도 내가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것은 나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가다. 심지어 내 아량까지도 내가 위대하다고 느끼는 데 일조할 수 있다. 그에 반해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누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이 가운데서 말째가 되어 모든 이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르 9, 35)

 

과연 나는 기꺼이 그 걸인을 섬기는 종이 되려 하고 있는가?  나는 실상 그에게 10달러를 줌으로써 그의 주인으로 군림하면서 그러 하여금 "고맙습니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갈수록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우리의 종이 되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시고 아울러 우리에게 같은 방식으로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신다는 사실을 내가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것이다. 

 

                                   <새벽으로 가는 길/헨리 나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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