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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또 하나의 세계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10 조회수844 추천수14 반대(0) 신고

Complex riddles in pictures formed from bible-code words.

 

독서: 1열왕 11,29-32;12,19
복음: 마르 7,31-37

신학교를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교수신부님들은 많이 걱정하셨다.

십년 가까운 성서봉사자의 경력이 있기에
성서와 신학의 기본 베이스는 갖추고 있어서
젊은 학생들보다 유리하겠지만
언어를 새로 습득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라틴어, 히브리어, 희랍어...그리고 영어.
물론 학부에서 그렇게 깊이있게 들어가지는 않지만
나이가 있으니 암기력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과연 라틴어와 씨름하며 보낸 일학년은 장난이 아니었다.
희랍어, 히브리어를 한꺼번에 배워야 하는 이학년도 만만치않았다.
도통 다른 과목엔 손도 못댈만큼 매진을 해야 겨우 따라갈 정도였다.

한 주일에 거의 백단어씩 외워야 하는 라틴어.
한 단어의 성과 수와 격의 변화를 매주 시험을 치르고 시작한다.
그래도 라틴어는 영어와 철자가 같아서 뜻을 몰라도 읽을 수는 있다.
희랍어와 히브리어는 처음보는 글자들이어서 읽을 수조차 없었으니.
나오느니 한숨이고, 쳐다보면 머리가 지글지글 아팠다.

새로운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이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언어 하나를 배운다는 것은
또하나의 세계를 여는 열쇠를 손에 쥐는 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고무되어 열심히 공부했다.

정말 새로운 하나의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어린 아이가 금방 배운 글자를 거리 간판에서 찾아내고 기뻐하듯이

생활 중에 우연히 라틴어를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즐거움을 느꼈다.
자동차 이름, 의약품들이 거의 라틴어고

프랑스어와 영어의 어원을 생각하게 되었다.

생소한 단어들을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하여 차 안에서 듣다보니
처음엔 소음으로 들리던 것들이 하나씩 말이 되어 들리기 시작했다.

소음이 하나씩 말로 들리고, 입으로 소리 되어 나올 때까지
오며 가며 등하교 시간, 한시간 반씩을 투자함으로써
염려하던 바와는 달리 이들 세과목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아니, 처음 한번을 빼고는 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것이 정직한 말이다.

중년의 나이로 아들과 같은 학생들과 공부하려면
무조건 귀에 익숙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최고라는 판단이 맞았다.

우리가 어릴 때 모국어를 배울 때도 그랬을 것이다.
눈도 맞추지 못하는 아기를 바라보며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많은 말을 하셨을까?

그 생소한 소음들을 말로 알아들을 때까지,
또 그 말을 자기 입으로 소리내어 보기까지
무수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어른이 된 우리는
정말 잘 듣고 잘 말하고 있을까?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는 모국어로 말하는데도
왜 가슴이 답답하고 이야기 나눌 친구가 없는가?
하루종일 수다를 떨다 왔는데도
왜 할 말은 하나도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가?

안소니 드 멜로 신부님은 우리가 남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대부분은 이미 자신이 생각한 것을 확인하려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싶으면 가슴이 시원하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 싶으면 가슴이 답답한 것이다.
그래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남의 말에
찬성과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개방된 태도,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의지'이고
'그렇게 듣고 다시 배우는 것이 깨어나는 것'이라고
'깨어나십시오'라는 책에서 이야기한다.

그렇다.
"열려라!" 외치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다.
"진리에 대한 개방, 그 결과가 무엇이든
그것이 자신을 어디로 인도하든 상관하지 않는,
자신이 어디로 인도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마음을 여는 것,
그것이 신앙
"인 것이다.  (깨어나십시오, ’듣고 다시 배우라’에서)

어제 띠로 지방에서의 이방인 여인과의 첫 만남 이후,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의 이방인 지역으로
복음을 전파하시고 돌아온 예수님의 외침이 "에파타!"이다.

유다인들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를 촉구하시는 말씀이다.

유다인들 안에 고집스럽게 묶어두려던 하느님의 자비는
더 넓은 세계로 퍼져나가야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은
내 고집, 내 이익, 내 구미에 맞는
하느님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그분의 뜻에 개방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해 나를 개방한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편안함을 떨치고 일어나는 것이다.
어렵지만 그 과정에 적응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열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하느님!
솔로몬의 우상들보다 더 많은 우상들을 섬기면서도
깨어나지 않을 때,
말을 해도 해도 못알아들을 때.

결국 온전치 못한 왕국,
폐쇄되고 조각난 세계 속에 살 수밖에 없다고
오늘 독서와 복음은 가르쳐준다.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

결코 누가 열어주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군중 속에서 오늘 우리를 따로 불러내신다.

에파타!

새로운 세계를 열어라!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고서.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Op.8-4 사계 中 겨울 2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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