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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5. 하느님의 뜻에 대하여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13 조회수858 추천수10 반대(0) 신고
 



 

 

 

하느님의 뜻에 대하여

 

그대는 청한 것에 즉시 응답을 찾으려고
너무 애쓰지도 말고,
거기서 고집스럽게 굴지도 마라.
어떠면 주님은 그대가 청한 것보다
더 큰 선물을 주려 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상으로 인내심을 주려고 원하실 것이다.
하느님과 내적 친교를 이루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으며,
온전히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사는 것보다
더 높은 것이 어디 있느냐?
잡념없는 기도야말로
인간의 길에서 최상의 것이다.

 

(기도 34-35)

 

 

 

자신들의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기도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모든 기도가 다 수포로 돌아갔다고 느낀다.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병에 걸렸고, 사랑하는 사람을 회복시켜 달라고 아주 열심히 기도했음에도 그가 죽었다. 그렇게 간절히 청했는데도 하느님은 내 두려움을 없애주시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기도는 청원이다. 그런 사람들은 우선 자신들의 청원이 들어졌는지 아닌지로 기도의 효과를 판단한다.

 

에바그리우스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준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즉시 들어주시지 않은 것은, 우리가 청한 것보다 더 큰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청원이 우리 자신의 소망에 너무 고착되었는지 모른다. 또는 우리의 소망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소망들을 하느님 앞에 펼쳐놓아도 되고 또 펼쳐놓아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청원의 끝에는 반드시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해야 한다. 기도 중에 나는 내 친구가 건강해지도록 간절히 빈다. 그러나 설혹 그가 죽었을지라도 내 기도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무력함을 하느님 앞에 가져간다. 그리고 하느님 뜻의 신비를 탐색하려 애쓰면서 하느님께 순종하여 나를 드린다.

 

에바그리우스는 모든 기도의 목적을 하느님과 친밀하게 만나는 것, 그분의 현존 안에서 사는 것, 완전히 잡념이 배제된 기도 중에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즉, 인간은 기도 중에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있고, 그분과 개인적이고도 친밀한 관계를 체험할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그분의 사랑과 치유의 현존 안에 감싸일 수 있기에 존엄하다는 것이다.

 

들어 허락되지 않은 청원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 올려드린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성장하는데, 그것은 청원기도가 성취된 것보다도 더 가치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진정한 존엄성을 발견한다. 즉 기도를 통하여 신성에 참여하며, 사랑의 황홀함 속에서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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