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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적인 안경 !!!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14 조회수640 추천수5 반대(0) 신고

           

                                   영적인 안경

 

                                                 

 

  지난 해 12월에 있었던 천주교 부산교구의 사제 및 부제 서품식에 참례하여 수품자

들의 모습에서 저는 참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새 사제 네 명과 새 부제 열

한명이 탄생되었는데, 그중에서 부제 한 명만 안경을 쓰지 않고 나머지 열 네 명의

사제와 부제들이 전부 안경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서품식을 주례한 주교

님과 복사들까지 모두 안경을 쓴 모습이 평소 안경을 쓰지 않는 저에게는 참 이채롭

게 여겨졌습니다. 23년 전 제가 사제 서품을 받았을 당시에는 네 명이 사제가 되었는

데, 그중에 단 한 명만 안경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뜬금없이 안경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되는 것은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예수님께

서 ‘보고도 못 보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대로 본다는 것이 무

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안경이라는 도구를 떠올렸고, 현대인들이 과거 그 어느 때보

다도 안경을 많이 쓴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전보다 압도적으로 안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눈이 혹사

당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또한 눈이 혹사당한다는 것은 보아야 하는 것

이 많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많은데,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

기 때문에 안경이란 도구의 도움으로 정확히 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감각들 중에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우리의

삶은 큰 타격을 받습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하는 다섯 가지 감

각은 우리가 삶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즐기고 사랑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들

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보고 듣는 것이야말로 더욱 큰 비중이 있는 감각입니다.

몸이 천량이라면, 눈은 구백 량에 해당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본다는 기능은 어떤

설명이 구차할 만큼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각 또한 이에 못지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러 차례 참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참으로 들

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는 세태에 대해 탄식하며 야단을 치십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그처럼 안경을 많이 쓰는 것은 안경을 쓰지 않고서는 대상을

잘 볼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노안이 온 탓인지, 예전에는 잘 보이던 글자들

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가끔씩 돋보기안경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안경

을 쓴 것과 쓰지 않은 것의 현격한 차이를 느끼면서 안경의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렇게 육체적 시력에 관해서는 조금만 보이지 않아도 걱정을 하는데, 마음의 시력

에 대해서는 참 둔감하다는 것이 오늘 예수님이 제기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측

근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지향하는 바를 가장 잘 알 듯 싶은 제자들마저도 이

런 질책을 듣습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

게도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제자

들이 이럴 진데, 예수님을 적대적인 눈으로 주시하고 호시탐탐 노리는 당시의 주도

적인 세력들, 예컨대, 종교 세력을 대표하는 바리사이들과 정치 세력을 대표하는 헤

로데 일당들이 과연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제대로 듣고 보겠습니까? 

 

 육체의 시력이 떨어질 때, 안경의 도움이 필요하듯이, 마음의 시력도 그런 안경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안경이 눈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듯이, 현재 우리가 지니고 있는

마음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이 마음의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노력입니

다. 나는 그냥 이대로 살겠다고 포기하거나 잘 보인다고 강변하며 자신이 본 것만을

실상이라고 독선적인 아집을 부리는 것은 이런 노력과 상반되는 태도입니다.

 

사실 내가 잘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를 자극하여 잘 보고자 하면 우리는 영적인 안경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적 시력에 맞는 안경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처럼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시는 것은 노력하여 구하면 잘 볼 수 있는 영적인 안경을 착용할 수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안이한 자세로 무심하게 자신을 버려두며 거기에 길들여지는 형태가 안타깝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예수님께서 ‘완고한 마음’이라고 표현하는 이런 삶의 방식을 개선하기는커녕 더욱 단단하게 굳히는 방향으로 살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보도록 합시다.

 

 

                                      ▒ 노영찬 세례자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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