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15 조회수1,089 추천수11 반대(0) 신고



복음: 마르 8,22-26

오늘 복음은 벳사이다에서 일어난 일이다.

예수께서는 이 마을에 사는 어떤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려 내오신 후, 눈을 뜨게 해주셨다.

한 말씀으로 "눈을 뜨라" 하시지 않고
두 눈에 침을 바르고 손을 얹으신 후,
"무엇이 보이느냐?" 고 물으신다.
눈먼 사람은 무엇인가를 보게된다.

그런데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사람을 나무들처럼 본다.
아직 완전한 치유가 아닌 것이다.

예수께서는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신다. 
그제서야 사물을 똑똑하게 분간한다.

그는 한 번에 완전하게 치유되지 않고,
단계적으로 치유된다.

성경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치유.
예수님의 치유 능력에 이상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무슨 다른 뜻이 있는 것일까?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예수께서 다시 들어가지 말라는 벳사이다는 어떤 곳인가?

요르단 강이 갈릴래아 호수와 만나는 동쪽 포구다.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필립보의 고향이기도 하다(요한 1,44).

예수께서는 이곳에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도무지 회개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코라진, 가파르나움과 함께 불행을 선언받게 된 곳이다(마태 11,20-24).

이제 예수께서 왜 그를 마을에서 따로 떼어 데려다가
마을 밖에서 치유를 했는지 알 것 같다.

우리도 뭇사람들에게서 따로 떼어내어(聖別)
치유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직 완전하게 눈이 밝아진 것은 아니다.

완전하게 눈이 떠져서 사리분별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일평생이 걸치는 단계적 과정을 밟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 치유의 과정이 순탄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돌아가지 말아야 할 마을이 있다.
그 마을은 사람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나에게 있어 소경처럼 살아가던 그 생활 터전은 어디인가?
소경의 신세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그처럼 원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저런 핑계와 이유를 대며 버리지 않고 있는 과거의 악습들.

새로운 나의 모습을 고대하고 있으면서도.
나 자신을 쇄신시키기에는 너무나 귀찮고 두려워
익숙한 어두움에 안주하고 마는 비겁함과 어리석음.

주님이 돌아가지 말라고 하는 그 마을에는
오랫동안 나의 변명을 들어주고, 위로를 주고, 아픔을 나누었던
똑같은 소경 친구들이 살고 있다.

손만 뻗치면 닿을 수 있었던 도피처, 벳사이다.
그곳을 잊고 벗어나기에는 좀체로 용기가 나지 않는다.

불확실하고 낯선 길.
그 안개 깔린 길로 주저말고 가라 하시는 예수.

그분이 정말로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분이라는 것을
어슴푸레 알고나서도.

좀전까지만 해도 견고한 피난처였던 그 마을이
실은 나의 눈을 가리우는 성읍이었음을
어슴푸레 알고 나서도.

계속 그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참담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

아무래도 주님께 다시 손을 대시어
눈을 성하게 해달라고 청해야 할까보다.
아예 발을 꺾어 놓아달라고 빌어야 할까보다.
저 마을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도록.

주님, 도와주십시오. 

작성일 2001-02-14 11:13 pm






Music : 라벨 /물의희롱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