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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의 눈"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15 조회수690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6.2.15 연중 제6주간 수요일

야고1,1-11 마르8,11-13

                                                            



"마음의 눈"



법랍50세를 맞는 법정 스님은 2.12일 동안거 해제 법문에서
‘마음은 닦는 것(修心)이 아니라 쓰는 것(用心)이라’ 강조했다 합니다.

참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 닦는 수심과 마음 쓰는 용심을 둘로 보지 않고 하나로 봅니다.

마음을 잘 닦아야 마음을 잘 쓸 수 있고,

또 마음을 쓰면서 마음을 닦게 되니,
수심이 바로 용심이요, 용심이 바로 수심이라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마음을 잘 쓸 수 있을까요?
주님을 만나면서 마음의 눈이 열리는 깨달음을 통해 가능합니다.

그래서 한자의 ‘깨달을 각(覺)’자 안에

‘볼 견(見)’자가 들어있는가 봅니다.
오늘 복음의 눈 먼 이의 눈이 열리는 개안(開眼)과정이 인상적입니다.

바로

우리 ‘마음의 눈’이 열리는 깨달음의 과정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마음의 눈’이 먼, 눈 뜬 맹인들 얼마나 많습니까?

욕심으로 인해

무지와 무명, 환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눈 뜬 맹인들입니다.
주님을 만나 마음의 눈이 열려야 있는 그대로, 그리고 넓고 깊게 봅니다.

복음의 눈 먼 사람,
주님께서 두 번째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셨을 때 눈이 완전히 열려,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합니다(마르8,25).

과연 나의 육안의 시력은 얼마나 될까요?
나이 들어가면서 체력과 더불어 시력도 약해지지만,
마음의 눈의 시력은 더욱 좋아질 수 있습니다.

과연 나의 마음의 눈의 시력은 얼마나 될까요?
세례 받아 마음의 눈 열렸다하여 한결같은 시력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관계의 깊이와 비례하는 마음의 눈의 시력입니다.
주님과의 계속된 만남을 통한 깨달음을 통해 마음의 눈은 더욱 밝아집니다.

보이는 것 넘어 보이지 않는 것 까지도 내다보는 마음의 눈입니다.
삶 넘어 죽음을, 죽음 넘어 생명의 부활을 내다보는,
현재의 순간 넘어 영원을 내다보는,
또 절망 넘어 희망을, 짙은 어둔 밤 넘어 새벽빛을 내다보는 마음의 눈입니다.

이런 마음의 눈 지닌 이들 이미 지금 여기서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누립니다.
이런 마음의 눈 밝아 지면서

지혜로워진 이들에게 침묵은 저절로 뒤 따르기 마련입니다.

자연히 듣기는 빨리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하게 됩니다(야고1,19).

무엇보다 진리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본격적으로 마음을 쓰는 일에 힘쓰게 됩니다.
야고보서의 말씀 그대로 올바른 신심을 지니게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사람입니다(야고1,27).”

정말 올바른 신심인가는,
진정 마음의 눈이 밝은가는,
마음을 정말 잘 닦았는가는

마음 씀씀이의 사랑 실천을 통해 그대로 들어납니다.

과연 내 마음의 눈의 시력은 얼마나 될까요?
마음의 눈의 시력 따라 마음 씀씀이의 실행도 깊고 넓어집니다.
이 복된 성체성사 시간,
주님은 우리 마음의 눈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시어 말씀을 실행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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