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느님 체험"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18 조회수60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6.2.18 연중 제6주간 토요일

야고3,1-10 마르9,2-13

                                                            


"하느님 체험"



하느님 체험은 비상하지 않습니다.

평범합니다.
일상의 작고 평범한 체험들, 깊이 들여다보면 하느님 체험입니다.

이 하느님 체험들을 통한 깨달음이 마음을 깨끗하게 합니다.
생기가 솟아나게 합니다.
착각이나 환상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의 현실을 살게 합니다.
나의 정체성을 또렷이 해 줍니다.
내면을 변화 치유시켜 주며 성화시켜 줍니다.

하느님이든,
사람이든,
자연이든,
살아있는 만남의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교육의 맹점,
지식위주의 교육에 치우침으로 인한 체험의 빈약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넷의 무수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만남의 기회들을 무수히 빼앗기는 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얼마 전의 저의 작은 순간적 깨달음의 체험들 잊지 못합니다.

미사 드리는 순간
‘아,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죽겠구나. 참 사는 것 별것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삶이요, 세월은 흘러도 삶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싶었습니다.

1989.7.11일 서품 받고 18년째 되는 지금까지 여기에서 미사 드리고 있는데,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현실은 죽기 전까지도 계속될 거라는 생각에,
‘아, 이게 영원이다.’ 싶었습니다.

또 고요한 새 성전에서 정성을 다해 공동기도 바치는 우리 수사님들을 보는 순간,

‘아, 역시 수도자는 기도의 사람이구나.
하느님 찾아 기도하러 수도원에 온 수도자들이구나.
기도만이 수도자의 유일한 존재이유로구나.
기도하지 않으면 수도자가 아니로구나.’

하는 새삼스런 자각의 체험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독서기도 시 계속됐던
시편136,1-26절 까지 매 절 뒤쪽의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라는 말씀도 신선한 기쁨이었습니다.

이런 하느님 자비의 체험과 고백이
이스라엘 백성을 만들었고, 수도자를 만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십자가의 길 도상에 있는 세 제자들,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시기적절한 신비 체험을 제공하십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 신비 체험에 안주하려는 순간
하늘로부터 들려온
하느님의 말씀, 역시 이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체험이었을 겁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런 크고 작은 하느님 체험들을 통한 깨달음이
내적 힘의 원천이고 마음을 순수하게 합니다.

깨달음의 체험에서 오는 마음의 순수요,
마음의 순수에서 오는 깨달음의 체험입니다.

야고보가 지적했다시피 혀의 말 문제 참 심각합니다.

“누가 말을 하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그는 자기의 온몸을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혀는 불입니다.
사람의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미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같은 입에서 찬미와 저주가 나옵니다.”

우리의 치부를 예리하게 지적하는 야고보입니다.
마음 따라 가는 혀와 말입니다.
하느님 체험을 통한 깨달음들이 마음을 정화시킬 때,
곧 정화되는 말이요 억제되는 혀입니다.

말 않는다고 침묵이 아니라, 마음 고요해야 침묵입니다.
뿌리를 잡지 않고는 아무리 가지 쳐야 끝이 없습니다.

이 거룩한 성체성사 시간 좋으신 주님을 체험하므로
우리 마음이 치유되고 정화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에 넘치고 너희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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