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45) 단편 소설- 진료소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20 조회수596 추천수4 반대(0) 신고

 

   단편 소설 - 진료소

                          이순의

 

 

문장의 기술은 부족할지라도 쓰기는 열심히 썼으며 이 시대의 누군가는 살고 있을 이야기를 제 부족한 솜씨로 완성해 보았습니다. 묵상글은 아니구요. 순수창작 소설입니다. 그 안에서 묵상할 것이 있다면 안으시고 묵상할 것이 없다면 그저 지어낸 이야기 한 토막의 재미를 즐기시라고 알려드립니다. 읽기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칸을 두었습니다. 단락과 무관합니다.ㅡ

 


-단편소설-   

      


   진료소

                  이순의


섬마을 사람들이 몸이 아플 때면 그냥 견디며 참는 게 다반사이다.

대충 민간요법으로 감초를 달여 마시거나 생강도 끓여 두었다가 야금야금 한 모금씩 마시며 이마에 수건을 동여매고 눕는다. 그러다가 치도곤이라도 겪게 되는 날이면 면소재지에 나가는 인편에게 부탁하여 양약 몇 봉지를 지어다 먹는다. 그 약이 얼마나 독하든지 단출한 시골 사람들의 빈약한 식사로는 소화해 내기조차 어렵다. 그러면 약에 취해서 누운 자리에 해님 혼자서 문병삼아 빛이 들었다가 어둠이 들었다가 여러 날이 밝고 저문다.

 

섬 집에 오기 전에 감기 기운이 있었다. 서울집 앞의 내과에 들렸다가 올까도 생각했지만 그다지 심한 상태는 아니었다. 공기 좋은 시골에 가면 좋아 질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으슬으슬 춥고 얼굴이 달아오르더니 뼈 마디마디가 쑤셔왔다. 도착하여 이틀이 자나도록 지독한 몸살을 앓으면서도 별다른 방책을 찾지 않았다. 시골 아낙들처럼 물을 끓여 마시고 또 마셨을 뿐이다. 조금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독이 겹친 몸살은 욱신욱신 거리며 골수까지 파고들어 몽둥이찜질을 지속했다. 그래도 면소재지에 있는 약방의 약을 사러가지 못했다. 그 약의 명성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약대를 졸업하여 면허증을 가졌던 약사는 섬에서 버텨내지 못하고 떠났다. 아주 오랫동안 섬을 지켜 오신 약방 영감님의 조제법에 밀려나고 말은 것이다. 섬사람들은 그 영감님께서 조제해 주시는 약의 효험을 더 신뢰하고 있었다. 강한 기운에 쓰러져 다소 부대껴 누워있어야 하는 상황을 겪을 지라도 단시간에 그만한 효험을 구할 수 있는 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랜 경험과 인맥의 덕은 약 짓는 심부름으로 오신 손님이 전하는 증상만 듣고도 누가 어떻게 아픈지 짐작하여 거뜬히 한 봉지의 약을 지어 보내 주시는 영감님이셨다. 그러므로 인심이라는 마음에서부터 약효가 미약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약 짓는 공부를 했다는 새파란 약사가 지어주는 약은 술에 물 탄 듯이 물에 술 탄 듯이 싱거웠다. 더구나 약발도 동하지 않는 약값이 기백원은 더 비싸다는 소문도 한 푼 아까운 섬사람들의 민심을 잃기에 충분한 사유가 되었다.

그런데도 몇 되지 않는 젊은 주민들은 대학에서 정식으로 약 짓는 공부를 했다는 약사를 선호하였다. 섬에도 약사다운 약사가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약이라는 것은 말이여라우.

 우리 몸에 적당히 사용하라는 용량이라는 것이 있다고 안 허요?!

 그런디 우리 섬에서 살아오신 어른들은 독한 약에 숙달이 되야부러서 어지간헌 약은 약발이 안 받는다고 안합디여?!

 그렁께 새로 들어온 약국도 이용을 허셔야 인체도 순해지고 바다 가운데 섬에서도 진짜 약사가 살을라고 허지를 않것소? 잉!>

<그라몬 지금꺼정 먹고 살은 약방 영감님 약은 가짜란 말이여? 그런 말은 씨알도 안맥힌께 꺼내지덜 말소. 잉?>

일부 주민들의 노력들은 허사로 돌아갔다.

 

오지의 섬마을이었던 시절을 살아오면서 평생이나 다름없는 세월동안 의탁해 온 약방어른에 대한 배신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전쟁을 겪었고 근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살아오면서도 약방 어르신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필요한 약을 주었다.

한약을 짓던 약방에 수련생 겸 꼬마 머슴으로 들어와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소년이었다. 약방의 의원어른께서 늙고 병들어 자식들을 따라 뭍으로 나가실 적에 넘겨 준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섬사람들과 함께 살아오신 영감님이 아니던가?!

약방의 종복으로 들어와 그 어른의 기술을 다 배우지는 못했다고 한다. 한약방이 어떻게 양약방으로 전환 되었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약사 면허도 없는 영감님께서 약을 팔아도 된다는 허가증은 약방의 한 중앙에 반듯하게 걸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님들이 약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영감님보다도 먼저 허가증과 눈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두셨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검은 자국으로 마른 글씨들이 세월에 익어버린 낡은 액자 속에 담겨진 채 당당하다.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예전에는 뱃길로 하루를 꼬박 물을 건너야 섬으로 인편이 들어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전기도 들어 올 수 없었던 시절에는 들기름이나 아주까리기름으로 호롱에 불을 붙였고, 그 다음에는 석유 기름에 남포등을 밝혔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섬마을에서 변변한 약재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대학물을 먹은 약사 나리께서 오지의 섬마을로 들어선다는 것은 짐작조차도 허용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런 시대적인 편리와 지역적인 어려움 때문에 관계기관에서 영감님께 약을 팔라는 허가증을 마련해 드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약방 영감님이 섬 주민들에게 기여했을 공덕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짐작은 감히 범해 보는 불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약방 영감님의 신세를 청하지 않았다. 뜨거운 물만 마시며 사흘 밤과 낮을 앓다가 칼바람을 뚫고 진료소에 갔다.

진료소에는 의사선생님이 계신다. 군 복무라는 국방의 의무로 부임한 의과대학 출신의 군의관이다. 약대출신 약사는 섬마을에 발붙이기 어려워도 의대출신 의사는 절대적인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진료소에서는 심부름으로 온 인편에게 결코 약을 지어주지 않는다. 반드시 환자 본인이 왕림하셔야 하고, 차례를 기다려야 하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고, 여러 가지 불편 사항을 지켜야만 한다.

 

나는 진료를 받고 1200원의 비용을 지불했다. 주사 한 대와 6일 분의 약을 탔다. 그런데 약효가 없었는지? 아니면 감기 기운이 극에 달하여 약기운 따위에는 끄떡도 하고 싶지 않았는지?

심한 기침 때문에 토악질을 해대느라고 허파가 찢어지는 것 같았고, 눈으로 콧물이 역류하여 찌걱거리느라고 풀어서 버린 휴지가 흩어져 쌓였으며, 열꽃은 온 몸을 용광로처럼 달구어 시름시름 풀죽을 만들어 놓았다.

다시 다음 날 아침 일찍 홍해바다의 해풍을 가르며 진료소로 향했다. 간밤의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당도한다고 하였지만 이미 대기실에는 서로 아름이 깊은 어른들로 앉을 자리가 없었다.

새벽잠이 적은 시골 어른들의 겨울 농한기는 면 소재지로 출타하는 일이 큰 외출이었다. 그러므로 얼마나 일찍 서둘러 첫 버스를 탔거나 걸어서 갯바람을 뚫고 오셨을 것이다.

 

원두목에 사시는 정님이네 아주머니께서 먼저 나를 알아보시고 손을 내밀며 반겨주셨다. 좁게 앉으신 틈을 비집으며 자리를 권하신다.

<언제 왔는가? 진료 받으러 온께 자네 얼굴이라도 보네. 잉! 아그덜은 잘 크고?>

<아짐 오셨네요. 요새도 아짐이 경운기 끄집으제라? 잉? 그랑께 몸 팬한 겨울에는 독이 나고 말고라우.>

<그라제에! 어찔 것인가?>

내가 그 마을에 살을 적에만 해도 아주머니네 경운기는 영감님이 운전을 하셨다. 그럭저럭 경운기를 움직일 여력은 충분하여 가만가만히 서행하며 몰고 다니시는 것을 보았다. 짐을 싣고 내리느라고 기운을 써야 하는 일은 모두가 아주머니의 몫이었고, 그저 경운기를 끄집어 가시고 끄집어 오시는 일만큼은 영감님이 하셨다. 그런데 언젠가 여름휴가차 마을에 들렸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뒤에서 딸딸딸딸 소리 지르며 따라와 앞질러 가던 경운기의 뒷모습에는 허연 백발의 할머니께서 너풀너풀 새집지은 머리에 대충 비녀를 꽂고 운전을 하며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뒤의 짐칸에는 운전을 하셨던 그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어머니이신 노 할머니께서 타고 계셨다. 깜짝 놀라서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마을 어귀에서 만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여쭈었더니 영감님의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경운기를 이겨내지 못하신다는 것이다. 일손은 딸리고, 힘은 부족하고, 그렇다고 그렇게 많은 농작물들을 노구의 머리에 이거나 등짐으로 질 수도 없는 일이고, 더구나 무거운 곡식들을 손수레에 싣고 너른 대지를 걸어 운반한다는 것은 농사를 포기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어찔 것인가?! 목마른 놈이 시암 판다고, 넘의 손으로 했드니 전부 돈이라사 해 보제, 농사지어서 뭐이 남는다꼬....... 그래도 살살 해 본께 허것써서 기냥 끄집어 부렀네. 그랑께사 곡석을 이기고 살것드란마세!>

그래서 아주머니는 마을에서 경운기를 끄집는 유일한 할머니가 되셨다.

자식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노 할머니의 망령이 깊어지면서 왕래가 줄어들더니 할아버지마저 몸을 놓아버린 뒤로는 그 온정이 더욱 뜸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두 노인을 수발해야 하는 어려움도 어려움이려니와 세 식구가 먹고는 살아야 했으므로 농사일을 그만 둘 수가 없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제 정신의 가닥을 찾아 한 올 한 올 돌아볼 틈도 없이 살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겨울이 오시면 이렇게 진료소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앉았다가 진찰도 받고 약도 타고 주사도 맞고.......

그런데 아주머니는 혼자가 아니었다.

 

시어머니인 노 할머니와 영감님까지 동행하여 진료소에 오신 것이다. 아직은 훈기가 덜 돌은 석유난로 옆 차가운 의자에 두 노인이 남루한 눈빛으로 앉아 있었다. 아마도 밖에 세워진 경운기에 두 어른을 싣고 오셨을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는 섬마을에는 겨울 찬바람이 예리하다. 소금기 강한 바람은 마치 칼끝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핏자국 같다. 그래서 더욱 아프다. 땅에 심어진 생명들은 염분이 많고 영양이 좋은 그 바람을 먹고 매서운 추위를 이겨낸다. 엄동에 동해도 당하지 않고 잘도 자란다는데 뭍에서 살다가 온 사람의 살갗은 너무나 아프다. 그런데 혼자 몸도 아니고 상노인을 둘씩이나 모시고 오신 노인이 있었다.

 

짐작하건데 진료소에서 주는 약을 저런 상늙은이들에게 써 본들 무슨 효험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아주머니는 여름의 고단한 노동의 후유증을 혼자서만 품고 있지 않았다.

아직은 거동에 불편이 덜한 아주머니의 육신이 팍팍하다면 의식조차 희미해져 가는 노인들의 육신은 뼈다귀마다 뻐석뻐석 먼지가 날 형편이라는 것을 미리 헤아려 알고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의 반가운 손을 놓고 대기실 귀퉁이에 비집고 섰다.

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노라니 무상한 인생의 답답한 심정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기실 안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노인들의 체면이라고 그 보다 나아보이는 몰골도 없었다. 단지 눈빛이 조금 더 밝거나 또릿또릿 할 뿐, 깊은 주름과 검게 탄 여름피부 위로 거친 비늘들이 뻔뜩거리고 있었다. 서로서로 아픈 병들을 자랑하느라고 고집스럽게 우기는 모습들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 때 칙칙하고 늙은 진료소에 젊은 광체가 발하여 들어왔다.

하얀 가운을 걸치고 단추를 잠그지 않은 채 옷자락을 펄럭이며 나타난 의사선생님께서 진료실 안으로 사라졌다. 옥신각신 제 가진 질병에 우선순위를 매기던 노인들의 구부정한 몸짓에 생기가 돌았다.

접수도 받고 주사실과 약국까지 겸하고 있는 현관 옆방에서 간호조무사가 나오더니 꼭두새벽에나 오셨을 법한 할머니를 호명하셨다.

<김말년씨?>

거동이 굼떠야 할 노인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진료소에 도착하였을 때는 문도 열리지 않은 어스름한 아침이었을 것이다. 더 일찍 오셔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첫째였으므로 의사 선생님의 그림자만 보아도 할머니의 차례였다. 이름이 불려 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환자 대기실에서 빈이름과 함께 나온 사람은 간호조무사였다. 그녀는 노인을 따라서 진료실로 들어갔고 흰색 여닫이문이 딸깍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리고 이내 돌아 나온 간호조무사는 이름들을 나열하여 호명하기 시작했다.

<장호남씨, 유찬호씨, 김소님씨, 이간난씨, 부르신 분들은 준비해 주세요.>

질퍽했던 노인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차례는 모르지만 이름이 불러진 것이다.

그런데 원두목의 아주머니도 서두르기 시작했다. 부동의 자세로 멀뚱한 두 노인을 한 분씩 챙겨 모셔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몸보다 마음이 바빴다.

<아짐 내가 할배를 모실 것인께 아짐은 할매를 모시씨요. 잉?>

<오매! 거들어 줄랑가? 고맙네. 고마워서 어찐당가?.>

 

그래도 영감님은 난로 불에 발을 쪼이느라고 벗어 놓은 비닐 구두를 가지런히 당겨 드리자 제대로 발에 끼워 신으셨다. 부축하여 팔짱을 끼워주었더니 일어서서 아주머니를 바라보신다. 세월을 동반한 무의식의 울타리였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긴 나무 의자에 다리를 뻗고 주저 않은 노 할머니의 발에 삭은 콧뱅이 고무신을 끼우고 있었다. 노 할머니의 몸은 진열장에 전시된 마네킹처럼 뻣뻣했다. 발에 고무신이 신겨지는가 싶더니 무릎을 당겨 발이 대기실 바닥에 닫도록 내려드렸고, 발바닥이 바닥에 닫는가 싶었더니 안아서 일으켜 세워드려야 하고....... 마치 늙은 할멈이 더 늙어 보이도록 치장한 마네킹과 함께 마임을 하는 것 같았다.

 

노 할머니를 업어서 모시기에는 아주머니도 너무 많이 늙어있었다. 그렇다고 질질 끄집을 수 있는 나무토막도 아니었다. 그저 부둥켜안고 서서 반 발자국씩 반 발자국씩 발이 옮겨지기를 인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노인만이 노인을 기다려 줄 수 있는 보폭이었다.

<아짐! 차례가 몇 번째요? 아짐보다는 내가 할매를 모시는 것이 더 맞것소.>

<다 되았네. 할매는 아무나 못 모시네. 잉? 지금 들어가도 된단마세.>

조심스럽게 노 할머니의 옆구리를 감아 부둥켜안고 살짝 드는 듯이 움직여 보았다. 마른 낙엽처럼 가볍고 삐쩍 마른 촉감은 겨우 끄집어서 옮기던 보폭을 줄 인형처럼 이동시킬 수 있었다. 내심은 습기 말라버린 늙은 뼈마디가 나무토막처럼 또깍 부러질 것 같아서 불안했다.

아주머니는 순번과 상관없이 진료실 문을 열었다.

 

힘없이 굽은 할아버지의 느린 거동이 안으로 들어갔고 그 방향을 쫓아서 늙은 아낙의 얼굴은 각이 달라졌다. 동반의 짝이 의자 앞에 서는 것을 보고서야 눈길을 되돌렸다. 곧 노 할머니의 곁으로 다가선 아주머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나의 도움을 인도하셨다. 아무도 그 순번에 대하여 발설하는 사람도 없었다.

진료실 안에는 창문 앞으로 나란히 철재의자가 놓여있고, 불편한 듯 걸터앉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부자연스러웠다. 우리는 노 할머니를 비어있는 의자까지 모시고 가지 못했다. 입구 바로 옆으로 놓인 진찰용 매트리스 위에 눕혀드리느라고 내 차례의 마임이 토막토막 연출되었다.

단정한 실내는 소란스러웠다.

 

먼저 들어온 김말년 할머니와 손자뻘 되는 의사 선생님이 책상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약이 없은께 왔지라우.>

<지난번에 드린 약이 아직도 남아 있어야 되는데 벌써 다 드시고 약만 달라고 하시면 안 된다니까요. 할머니.>

들어 보니 약을 처방해 주시라는 할머니의 일방적인 요청이었다.

<약이 없쓰먼 이사 선생님이 이 늘근이한테 줘야제라우.>

<그러니까 할머니. 하루에 두 번씩만 드시라고 했는데 그걸 안 지키시잖아요? 의사 말도 듣지 않는데 어떻게 약을 드려요? 할머니께서 약물중독으로 돌아가시면 제가 할머니를 책임져야 된다니까요.>

<워따. 책임지라고 안햐! 우리 자슥들 있는디 뭐땀시 넘의 자슥이 나를 책임지라고 헌당가요? 그랑께 이사 선생님은 약만 주먼 되야. 나도 쌩때겉은 소생들 있는디 이사선생이 벨말을 다 허네.>

<.......>

 

60년이 넘도록, 혹은 70여 년 동안 살다가보면 큰 고생 없이 엮어 온 사람들도 아픈 데가 생기고 병이 깊어지련만 농촌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 연세에도 일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봄여름 가을동안 해 뜨는 날에는 땡볕아래서, 비 오는 날에는 촉촉이 젖으며, 노구 된 육신을 돌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겨울 한 철 농한기에는 장작보다도 뻣뻣한 몸뚱이와 씨름을 하느라고 피할 수 없는 인고의 고통을 겪는다.

<시 번도 묵고, 니 번도 묵고, 아플 적마다 쪼꼼썩 나눠서 묵어야제 절믄 사람덜도 아니고 늘근이덜이 어쭈고 두 번만 묵고 산다요?>

젊고 여리고 예쁘장하니 곱상한 게 부자 집의 꽃미남 외아들 정도로나 보이는 의사 선생님이 총검에 훈련된 군인이라고 짐작하기는 불가능했다. 초록색 부직포 위에 유리가 깔린 책상 위에는 두 사람의 손들도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책상을 통째로 눌러 잡은 늙은 여인의 마디 굵은 손이 정갈한 백지 위에서 작은 볼펜을 굴리는 얇상한 사내의 손 보다 곱절은 컸다. 약을 처방하지 않으면 보드란 그 손을 뭉개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전에 내가 섬마을에 살을 적에 머물렀던 그 의사 선생님은 얼마나 거만하고 떫은 감 같았던지 환자들의 반응이 곱지 않았었다. 그런데 저 의사 선생님은 한 눈에 보아도 고단한 늙은이들의 투정을 잘도 받아주고 있었다. 대기실에 마련된 좌석들이 만원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약! 

약이라는 것도 의사 선생님의 사랑 법에 따라서 그 효험이 달라지는 게 노인들이었다. 여름의 결실을 손에 꼬옥 쥐고 있던 부지런한 개미들처럼 노인들은 겨울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약효가 덜한 의사선생님은 한가로웠다.

무조건 배를 타고 뭍으로 나가 자식들 집이나 친척들 집에 묵거나 여관에 하룻밤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좀 더 큰 병원을 찾거나 전문 의원을 찾아갔다. 그렇다고 해서 의무병으로 진료소에 머무는 생콩 같은 의사선생님 보다 더 자상한 대우를 그곳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그들은 뭍으로 갔고 진료소는 한가했다.

 

김말년 할머니가 나가고 얇은 회백색 잠바차림에 쥐색 하복바지를 입으신 할아버지께서 들어오셨다. 워낙 입성이 빈약하여 굽은 허리가 더욱 굽어보였다. 먼저 들어와 엉거주춤 차례를 기다리는 아주머니네 할아버지 보다 훨씬 늙고 야위어 보였다. 보아하니 홀아비 신세이거나 할멈께서 정신을 놓은 지 오래 된 것 같았다.

농촌의 노인들이라고 해서 모든 옷차림이 남루하거나 초라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뭍에서 생활하는 자녀들이 부모님을 뵈러 올 적에는 한두 벌의 옷은 장만해 오기 때문이다. 간혹은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근사한, 늙고 검은 피부와 세찬바람에 어울리지 않게 거나한 차림으로 거기서 거기인 거리의 진료소까지 때깔고운 외출을 하는 노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늙는다는 것은 남녀를 막론하고 서로의 관심과 살핌으로부터 이별하는 것이었다. 노인이 혼자된다는 것은 제일 먼저 제 끼니를 소홀히 하게 되지만 서로의 짝이 살았다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위해서 깔끄러운 입심으로라도 동행하여 먹게 된다. 마주 앉은 짝이라도, 아니 누운 채로 숨 쉬는 짝이라도, 곁에 머물 수 없어 이별하였을 때는 몸이 여위고 기력이 쇠하여지며 무겁거나 거추장스러운 치장들을 외면하게 된다. 그래서 간혹은 춥고 눈 오시는 날에도 홑바지에 속옷만 걸치고 들 가운데 서서 먼데 산을 처다 보는 개념 잃은 노인들을 대면하기도 한다.

그 정도는 아니었어도 진찰을 받으러 오신 할아버지의 입성은 추위를 막아줄 만한 방패막이가 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노인은 진료가 끝나고 나간 할머니를 따라서 흐트러져버린 의자를 손으로 당기며 느리게 앉았다. 분주한 간호조무사가 들어와 둔한 노인을 도왔다.

 

<어르신은 어디가 아프세요?>

대조적인 젊은 의사는 가볍게 회전의자를 밀며 미끄러져 책상을 직각으로 돌았다. 세탁하여 새로 꺼내 입지는 않았을 가운 위의 청진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때 묻은 목선을 타고 올라가 이어링을 귀에 꽂으며 할아버지께 문진을 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어디가 가장 많이 아파서 오셨을까요?>

기운을 돋우려는 젊은 의사의 아침을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인의 가슴을 열어 보이는 사람은 간호 조무사였고, 그녀는 청진기가 노인의 가슴에 대지기도 전에  진료실을 나갔다.

 

<머리도 아프고 라우...., 눈도 찐죽찐죽허고 라우...., 목구멍이서 말이 맥케불고 안 나오고 라우...., 가심이 끄끕허고 라우...., 배야지는 우째 이렇고 안 팬한지...., 음석을 넝궈도 안 팬하고 안 넝궈도 안 팬하고.....>

쉬엄쉬엄 할 말을 다 하시는 것 같았지만 아픈 고통과 풀어놓은 말의 격차가 좁혀지지 못했는지 말끝에 매듭이 없었다. 의사는 노인들의 반복된 속내를 알고 있었으므로 아직 남아있을 표현들을 기다리며 청진기의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물팍서도 라우..... 뺏다구가 절절허니 애래싸서.... 못 전디것소.>

<또 다른데 더 아픈 데는 없으신가요? 할아버지?>

<어째 없으께라우. 잉? 온 천시가 다 아프제라우. 선생님>

남루한 할아버지는 이유 없이 투정하는 어린 악동과 같았다.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피부과, 비뇨기과....... 섬마을의 진료소는 종합병원이다.

비록 군인 신분이지만 기초의학의 최전방에 선 군의관들은 전문적일 수는 없어도 다방면에서는 종합병원 원장님보다도 그 의술이 뛰어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할 것 같았다. 

간밤에는 오토바이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재 넘어 용치골 이장님께서 면 소재지에 볼일을 보러 나오셨다가 야심한 밤이 되도록 거나하게 약주를 드신 것이 탈이었다. 재를 넘어 먼 집에를 걸어서 갈 수는 없었다. 택시를 타고 가자니 오토바이를 놓고 가야하고, 오토바이를 놓고 가자니 당장 발이 묶여 오도가도 못 할 불편이 걱정이었다. 취중인데도 이장님은 고집을 부려서 갔다.

 

<눈 감고도 갈 수 있어. 걱정들 말어. 내가 저 재를 60년도 더 넘어 다닌 사람이여. 왜이려어? 내 자가용을 두고 갈 수는 없제?>

그런데 오토바이는 논 고랑창에 처박혔고 이장님의 면상은 홀라당 벗겨지고 찢어졌다. 추운 겨울 댓바람에 얼마나 몸부림을 하여서 재를 넘어 집으로 찾아 들었을까?

이장님의 아침옷차림은 말쑥했다. 반백의 아주머니만 사색이 되어 그 얼굴에 붙여 잡은 수건을 단단히 누르며 진료실로 빨려 들어왔다.

할아버지의 진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벌떡 일어났다. 팔을 벌려 넓은 가슴으로 한 떼거지의 사람들을 진료실에서 몰고 나갔다. 순식간에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간호조무사는 뛰어와 명패에 수술실이라고 써진 방문을 열었다. 용치골 이장님을 모시고 온 사람들은 그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그것은 부동의 기다림이었다.

 

대기실에서 이름이 호명되었던 사람들도 자리를 찾아서 차분히 잦아들었다.

섬마을의 면소재지에 있는 진료소에는 황해를 건너온 대륙의 흙가루들이 모든 집기들 위에 수북하고, 의사는 군의관이시니 수련의일 것이 빤하고, 환자들은 거의가 할머니 할아버지들뿐이다.

투박한 심성의 촌로들은 그 의사 선생님이 전문의인지 수련의인지 관심이 없다. 어쩌면 의대 초년생이 봉사활동으로 와서 진료실에 앉아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미심쩍어 하지 않을 것이다. 진료하시는 분의 수련 과정이나 전공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만병통치 명의로 쓰실 분들이기 때문이다.

 

진료소가 흙먼지의 소굴이든지 때 국물에 절은 소굴이든지 상관이 없다. 치료를 해 줄 의사가 진료실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이었다.

서울에서는 한 번 진료 하는데 몇 곱절의 비용을 내야하고, 날이면 날마다 나을 때까지 다녀야 하고, 병원 따로 약 따로 번거로운데다 별 효험도 없이 매번 돈을 지불해야한다.

그런데 섬마을의 진료실에서는 신규 환자만 1200원이고 다음 진료부터는 모두 900원만 내면 엄연한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번거롭게 처방전을 들고 섬에는 있지도 않은 약국을 찾아 배를 타야 하거나 이중의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고,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현관 옆 주사실에서 주사도 맞고 6일 분의 약도 받는다.

예전에 내가 서울로 이사를 가지 않고 살을 적 보다는 제법 비싸진 편이다. 그때는 신규 환자가 700원이었고, 나머지는 500원도 되고, 300원도 되었다.

 

그런데 진료라고 할 것도 없는 하소연을 중단한 할아버지는 아직도 남은 말을 하고 싶었나보다. 더 추가적인 청진기 진료는 없을 법 한데도 의사 선생님의 빈 의자와 마주 앉아 열은 가슴팍을 덮지 않았다. 몹시 추워보였다. 살 없는 갈비뼈에는 마른 가죽이 밀려 초라했다.

구경거리를 놓쳐버린 나와 아주머니는 애꿎은 노 할머니만 더듬었다.

수술실에서는 찢어진 곳도 꿰매야 할 것이고, 여기저기 긁히고 깎인데 마다 빨간약이라도 바를라치면 상당히 많은 시간을 빼앗을 것이다.

섬사람들은 한 명 뿐인 의사선생님을 고루 분배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피 흘리는 환자를 두고 먼저 왔음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핏물 닦은 솜과 가제들이 진료소 바닥에 널브러져 있어도 그것을 치워달라고 트집을 삼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그대로 바라보고, 그냥 그대로 기다릴 줄 아는....... 그저 늙은 몸이 순환을 요구할 때면 몇 발짝 걸어와 심심찮게 진료실 문을 열어 보거나  안으로 들었다가 표정 없이 나가는 사람들!

 

환자들이 밀려있다는 지루함도 농한기의 노인들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집에 가 보아야 혼자이거나 둘일 텐데 진료실에서는 사람구경도 할 수 있고 정담도 나눌 수 있으므로 급할 것이 없었다.

그때였다.

새봄의 어린 초록 같이 예쁜 아이가 마른 장작 같은 노인들 틈에서 병아리처럼 귀여운 인사를 하고 있었다. 사택에서 나온 간호조무사의 딸이었다. 유치원에 등원하려고 엄마에게 눈도장을 찍으러 온 것이다. 마을과 논밭을 지나서 저수지 뒤에 있는 유치원으로 가기위한 준비였다. 그 거리를 어림 잡아본 순간 어린 꼬마의 종종걸음은 위대했다.

 

도시에서는 좁은 봉고차에 올라 사시사철 그렇고 그런 등원을 하느라고 분주하겠지만 어린 꼬마는 계절과 함께 곱디고운 풍경 속으로 등원을 한다. 새롭다 못해 생경한 자연을 벗 삼아 그렇게 예쁘고 긴 길을 가고오고! 어른이 되어 무엇이 그리운 어느 날에는 유년의 그 길을 추억으로 걷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알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쳐버린 풍경들을 스크린에 담아 재생하게 될 것이다.

무겁고 느린 진료실의 늙은 얼굴들을 어린 아이가 풀어놓았다. 대기실 안에서 바라보던 굼뜬 노인들의 눈길도 제 각각의 부드러움으로 스며져 나왔다. 생동하는 생명은 사위는 생명들의 볼우물에 기쁨을 머금게 하는 교태를 부릴 줄 알았다. 그러므로 늙은 누구라도 생산이라는 좋기도 좋은 결실의 젊은 시절을 마음에서 꺼내보지 않았겠는가?!

 

혈색 뽀얀 아이의 고사리 손이 빠끔히 진료실 문을 열었어도 의사선생님께는 인사를 남기지 못했다. 푸석푸석한 미소의 늙은 아주머니께서 또랑또랑 귀여운 아이를 반겨 맞으려고 나섰지만 이내 그 문이 가로막았다.

귀염둥이 아이가 잠시 기웃거리며 섰던 문으로 의사선생님이 들어왔다. 그의 몸가짐은 일사불란해졌다. 진료가 늦어진 환자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수술실에서 오래 지체한 미안함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까지 가슴을 열고 진료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할아버지께 처방전을 써 주었다.

<할아버지. 온 천지가 다 아프시니까 주사 맞고 가셔야지요.>

<링기루 한 대 놔조야 되야라우. 촌에서 일 부처 먹고 사는 사람덜은 한가헐 때 링기루 한 대썩은 맞어둬야제 여름일을 해라우.>

 

할아버지는 그때서야 옷을 내리며 여름의 활동을 되찾고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대답 없이 처방전을 써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간호조무사가 들어와 처방전을 들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갔다. 의사 선생님은 아주머니 곁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아주머니는 목침처럼 딱딱한 노 할머니의 가슴을 벌려놓고 있었다.

노 할머니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보는 젊은 의사의 손끝에는 깊은 정성이 없었다. 그러나 노 할머니를 수발하시는 아주머니를 바라보시는 눈길과 말씀에는 정성이 가득가득 배어나왔다.

<할머니가 건강하셔야지 두 노인을 돌보시지요. 오늘은 제가 안 아프게 잘 놔드릴 테니까 링거 주사 한 대 맞고 가세요. 할머니 같으신 분들이 주사를 맞아야 해요. 비싸지도 않아요.>

 

<노인이 둘썩이나 된디 내한테 천신이나 온다요? 주사를 맞을라먼 어런덜 먼저 맞어야지라 잉! 이사선생님 말심이라도 탄복이요. 참말로 탄복이요. 잉!>

할아버지 곁으로 옮겨 가시는 의사선생님을 따라서 아주머니도 자리를 옮겨갔다. 할아버지는 앉아계신 채로 청진기의 손길을 받았다.

어쩌면 이들 세 사람의 진료는 의사 선생님께서 아주머니께 건네준  따뜻한 한마디가 처방전이었는지도 모른다. 임종에 가까운 두 노인을 모시고 사는 또 다른 노인에 대한 관심어린 말씀이 명약이었다. 아주머니께서 그토록 번거로운 불편을 무릎 쓰고라도 두 노인을 경운기에 태워 진료소까지 오실 수 있는 용기였을 것이다.

아주머니에 대한 진찰도 별로 찬찬하지 않았다. 그래도 온갖 푸념들을 쏟으며 진료시간을 부여받은 앞선 노인들보다 훨씬 만족해 보였다.

 

아주머니를 따라 들어왔다가 나가지도 않고 서성거리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자리를 권했다. 어제 왔던 낯선 환자가 오늘 또 와서 노인들을 거들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여 보기도 했겠지만 백발노장들의 무리에서 검은 머리의 아낙을 쉽게 발견하여 기억했을 것이다. 차례를 앞서 진료를 받고 세 노인을 도와 함께 귀가하라는 암시였다.

그런데 마주 본 의사 선생님의 고운 티는 간데없고 하루 만에 까칠한 혈색이 추해보이기까지 했다.

<어제는 굉장히 고우신 꽃미남이시던데 오늘은 선생님이 더 환자처럼 보이네요.>

<그 정도예요? 오늘은 제가 감기가 들어서 죽을 지경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시는 환자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뿐이라서 하루 종일 똑같은 녹음테이프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그걸 들어드리기 위해서 제가 파견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랬다. 노인들의 병세는 모두가 따로 부르는 합창이었다. 늙어버린 육신과 홀로 남은 외로움, 그리고 인생의 무상함에서 느끼는 고독까지 아프고 아파서 너무 많이 아프다고 하소연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자신이 누구보다 더 많이 아프거나 병세가 위중하다고 주장할 뿐, 같거나 서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노인은 없었다.  

그냥 웃어드리고.

그냥 들어드리고.

삶의 소중한 끄트머리 모습들을 쓰다듬고 어루만져 드릴 때 그것이 그분들에게는 치료약이었던 것이다.

 

이 겨울이 가시고 봄이 오시면 여름이 지나고 다가오는 가을까지는 저렇게도 살가운 의사선생님의 위로를 만나러 노인들은 오지 못한다. 진료소까지 찾아올 여가도 없이 땅에 묻혀서 들에 속해서 열심히 일구고 가꾸느라고 노동에게 혼을 빼앗길 것이다.

<이장님, 소재지 나갈적에 약방 영감님헌테다 말허고 약 좀 지어다 주씨요. 잉?>

<야! 그러제라. 잉!>

진료소에서는 심부름으로 온 인편에게 결코 약을 지어주지 않는다. 반드시 환자 본인이 왕림하셔야 하고, 차례를 기다려야 하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고, 여러 가지 불편 사항을 지켜야만 한다.

나는 재진이라서 300원을 덜하여 900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주사 한 대와 4일 분의 약을 다시 탔다. 약의 내용도 전날과 다르게 처방하여 받았다. 그리고 백발의 아주머니께서 운전하시는 경운기에 동승하여 돌아와 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돕는 마임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나중 주사와 나중 약이 더 효험이 있었는지 아니면 마임공연으로 땀을 뺀 덕인지 기침도 콧물도 열꽃도 왕성하던 기세를 꺾기 시작했다.  

                                                                                           -끝-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