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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한다면...(아저그할!)
작성자임성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20 조회수527 추천수2 반대(0) 신고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오늘 복음의 키 워드는 믿음과 기도라 하겠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 말씀에서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100% 치유해 주심을 믿는 것을 말한다. 단지 100% 치유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 외에도 믿음의 내용은 많이 있지만 하느님께 모든 문제를 맡기고 의지하면,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이 부족하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도 부족하고,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도 부족하고, 이웃 사랑이 하느님 사랑이라는 확신도 부족한 것이다.

 

사실 하느님이 우리 삶의 전부라는 사실만 확신해도 나머지에 대해서 욕심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 오직 우리 마음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에만 온통 신경을 써지 않겠는가? 하느님의 보다 더큰 영광을 위하여 자기 자신은 버리고 오직 하느님 사랑에만 모든 촛점을 기울이지 않겠는가?

 

 

하루 24시간 내내 의식 속에서나, 무의식 속에서나 오직 하느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하느님이 하시는 말씀들을 들으려 하지 않겠는가?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가 이 사실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하느님께서우리에게 해 주시는 말씀을 잘 알아 들을 수 있지 않겠는가?

 

특히,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처지나 상황, 그리고 그 이유도 잘 이해 할 수 있다면, 우리가 받아 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의 행동이나 태도도  받아 들이게 될 것이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그 이웃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나 배경을 우리가 알기만 한다면, 그래서 "아 ! 저런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구나! "(아저그할!) 라고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그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그 대상에 대하여 따뜻한 동정심을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마음이 상대방의 처지를 얼마나 헤아려 주느냐에 달린 것이다.(우마상처) 

 

우리가 남을 위해서 산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남의 처지를 헤아려 진정으로 그 행동과 태도를 이해하고, 그 이유를 알아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는 참 어렵다고 하겠다.

 

인간 존재 자체가 본시 태어나면서부터 이기적인 본성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기에 더욱  남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가한다.

 

혹자는 인간 DNA 구조 속에 이미 이기적인 유전인자가 들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은 세대를 거치면서 종족이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 진화하는 과정 속에서  생물학적으로 그런 이기적인 속성이 지속적으로 인간에게 내재되고 강화되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어찌 유전 인자로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유전인자와 같은 생물학적인 현상 이전에 정신, 마음, 영혼과 같은 영역이 이미 자라 잡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 인간에게 이런 이기적인 생물학적 특성만 있는 동물이라면 어찌 오늘날과 같은 인류의 모습이겠는가? 아마도 훨씬 더 비참한 모습으로 인류가 서로에게 더 해를 끼치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는 자신을 버리고 이웃을 위해서 몸과 영혼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오늘날 인류의 모습이 이나마도 유지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마음에는 이기적인 측면도 있지만, 남을 배려하고 남의 처지를 이해하며, 나아가 남을 사랑하는 이타적인 측면도 있기에 오늘날 우리 인류의 모습이 이 정도나마 유지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류의 모습으로 보기 전에 우리 주변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이기심과 이타심이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우리 마음 속에서 시작하여 우리 주변의 모든 관계도 이기심과 이타심이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하게 된다.

 

사이가 가까운 이웃들도 본인들의 이익이 걸린 문제라면 언제나 이런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평범한 인간들에게 이런 줄다리기는 평생동안 해야할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줄다리기 인생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고 싶다면 그것은 결국 전혀 새로운 차원의 시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결국 우리의 마음이 상대방의 처지를 얼마나 헤아려 주는가에 달린 것이다.

 

아마 이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차원의 이웃 관계,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열릴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진정으로 이웃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의 문이 열린다면, 이제껏 살아온 삶에서 진정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믿음은 진정한 이해에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정한 이해는 모든 인간 관계의 질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 방향도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리가 정으로 웃의 지를 해하는 람으로 바뀌게 해 달라고...(우진 이처이사)

 

이럴 때 우리 속에서 우리 자신이라고 가장하고 있는 각종 이기심과 각종 마귀들도 다 떠나게 될 것이다.

 

"아! 저런 이유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구나!"라는 마음을 우리가 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 이웃들에게 보다 더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고,

 

우리에게 다가오는이웃들도 따듯한 동정심으로 바라보고 마음으로부터 받아 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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