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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바로 여기에 천국이 있는 것이다!(선피이존낮수)
작성자임성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21 조회수653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때에 30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37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다섯가지 덕목을 발견할 수 있다.

 

1. 행을 비밀로!

 

먼저 모범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과 달리 명성을 원치 않으셨다.

 

우리 인간들은 대개의 경우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길 원하거나, 명성을 얻기 위하여 알게 모르게 노력을 기울인다. 어쩌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된다. 또,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으로 사회화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입신양명을 하여 집안을 세우고 가계를 빛내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최고 가치로 여기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는 것이다.

 

사실, 열심히 노력해서 부를 얻고, 명성을 얻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런 부와 명성을 추구하다보면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들을 잃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겠다.

 

그것이 우정일 수도 있고, 마음의 평화일수도 있으며, 사랑일 수도 있다. 부를 쫓다보면 영원한 생명을 잃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명예를 쫓는 활동에 함몰되어 인간이 안 보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주변에서 보면 선행이나 좋은 활동을 숨어서 하는 경우는 찾아 보기 힘들다. 간혹 있지만 그 자체로 뉴스가 되고, 감동이 된다. 왜냐? 순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순수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선행을 하는 사람의 순수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선행을 하는 사람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무런 다른 생각없이 순수하게 선행하는 예수님의 모범이 참 좋다. 물론 당신은 그 일이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또 다른 이유, 즉 하느님의 계획을 갖고 계셨지만 이렇게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심이 참 좋다. 선행을 하고 숨기는 사람은 그 기쁨이 고스란히 간직되고 현세가 아닌 천상에 그 보상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2. 늘의 비밀을 이미 알고 계심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이

가야할 길이며 하느님의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묻기도 하지 않았다. 인류 역사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도 없거니와 그것을 미리 예언해서 실천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2000년이 지난 지금은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결과론적으로 이미 일이 일어 났으므로 그냥 수긍하지만, 부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있기 전에는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 하겠는가? 어느 누구도 인류 역사에서 돌아 올 수 없는 길을 다시 돌아 오겠다는 하늘의 비밀을 언급했으니,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을 언급하신 것이고, 이는 예수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드러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다.  

       

3. 생 논쟁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성찰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한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논쟁이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이 문제인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전파하기 위하여 서로 나누고, 사랑하고, 당신 스스로 하느님으로 계시다가 인간의 모습을 취하는 겸손을 몸소 실천하셨건만은, 당신 제자들은 여전히 높은 곳으로 올라 가는 명예와 입신양명에만 관심을 두고 잇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의 삶도 평생 논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겠다. 논쟁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이 대부분 내가 잘났다, 내 주장이 옳다, 너희들이 하는 것이 틀렸다, 너의 주장은 이런 문제점이 있다... 등등 혹은 잘못된 정보를 생산하고, 잘못된 정보를 옹호하고, 잘못된 정보를 비판하면서 또 잘못된 정보를 사용하고, 잘못된 정보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에 놀아나고... 

 

대부분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수용하는 모습보다 내가 높은 사람이야, 너는 잘못되었어... 등등으로 평생 서로 높은 곳으로 올라 가려고, 공격하고 상처 주며 논쟁을 하다가 일생을 마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자세히 보면 대화의 90%이상이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나 잘났소,혹은 내가 높은 사람이오, 혹은 너 이것 틀렸어, 이렇게 했어야만 해 ...등등  그 본질이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흠집내거나 공격하거나 고치길 요구하거나, 지적하거나... 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오늘 하루 이웃들의 대화 내용을 잘 관찰해 보라. 

 

4. 손과 어린이는 같은 뜻

 

자신을 낮추는 자가 되는 것이 하늘 나라의 법이다. 그러니 하늘나라에 갈려면 자신을 낮추어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나라에 들어갈려면 그 나라 입국 심사대를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갈 때 여권도 필요하고 비자도 필요한 것이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데에는 사랑이라는 여권이 필요하며 겸손이라는 비자가 필요한 것이다. 이 사랑과 겸손의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난 생명체가 바로 어린이인 것이다. 왜냐? 사실 어린이야 말로 가장 미소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 것이다. 힘도 없고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자기 힘으로 아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때가 묻지 않으니 그 순수함으로 하늘나라는 무사통과가 가능한 것이다.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면 자신의 생각이나 고집이 없어지게 되며 순수한 존재가 된다. 자신의 마음을 비우면 욕심없는 존재가 되고 이는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과 바로 상통하는 것이라 하겠다. 결국 진실로 겸손해지면 자신의 마음이 빈 마음이 되고 무소유가 되고 순순하게 됨으로, 이는 어린이처럼 순진무구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진실로 겸손한 자는 진실로 순수한 어린이 마음이 되는 것이다. 결국 겸손과 어린이는 같은 뜻이 되는 것이다. 

 

 

 

5. 용하는 의지

 

결국 중요한 것은 수용하는 의지인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수용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수용하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수용하는 것이다. 어린이 하나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수용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기적이 일어난다. 사실 내 생각에 반하는 사건들을 수용하기 힘들다고 하겠다. 내가 가진 가치관과 다른 여러 모습들을 수용하는 것은 그렇게 말처럼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비록 나와 다른 선택을 하고 나와 다른 태도를 취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을 수용할 때, 또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선택을 하는 사람을 수용하고 존중해 줄 때 우리에게는 기적이 일어난다. 자유와 여유로움이 생겨난다. 특히 상대가 어린이처럼 미소한 존재일 때,그 존재를 받아 들이고 존중해 주면 그 곳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바로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예수님 말씀처럼 하느님을 받아 들이는 것이 되니, 사랑이 넘쳐 나게 되는 것이다. 온 세상이 아름답게 바뀌는 것이다.

 

상대방의 선택과 의사 결정이 나와 다르다고 스트레스 받을 것이 아니라 그 상대방을 어린이처럼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결정을 수용하는

순간 전혀 다른 기적이 일어난다. 왜냐? 나의 생각과 입장과 가치관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상대방의 입장과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세상으로 모든 관계의 문이 바뀌는 것이다.

 

내생각만 하는 지옥에서,

 

남을 생각하면서 자유로워지고, 해방되며,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하늘나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다.

 

남을 수용하는 의지, 특히 미소한 어린이와 같은 존재들을 수용하는 의지는 이렇게

 

존재를 바꾸어놓고 세상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행을 숨기고, 논쟁을 하며, 웃을 중하고, 자신을 추고, 이웃의 생각과 선택을 이해하고 용함으로써 하늘나라를 받아 들이게 되는 것이다. (선피이존낮수) 

 

바로 여기에 천국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천국의 기쁨을 즐기며 늘 기쁘게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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