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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46) 새로운 시작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22 조회수64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6년2월22알 연중 제7주간 수요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ㅡ베드로1서 5,1-4; 마태오 16,13-19ㅡ

     

     새로운 시작

                    이순의

 

세검정 성당 성체 조배실의

<그리스도의 몸>

 

 

많은 일들을 겪고 치르고 느끼고 아프며 시간은 약이 되어 갔다. 누구나 겪는 경험이지만 나에게는 첫 경험이었고, 누구나 넘겨가는 생활이지만 나에게는 서툴고 부자연스러운 혼란들을 반죽하느라고 힘을 쏟았다. 마치 운동회 날을 준비하는 과정처럼 분주하고 어수선한 날들을 보냈다. 날자는 다가 오는데 미처 부족한 준비는 너무나 많고, 마련한 준비물들도 섞여 정신없는 것 같은! 그래도 시간도 가고, 날자도 가고, 내일은 쉬지 않고 반복하여 오늘이 되었다. 어제의 오늘이 어제가 되었고, 어제의 내일이 오늘이 되었다. 이 밤이 밝으면 오늘의 내일은 다시 오늘이 되어 시간도 가고, 날자도 갈 것이다. 사람은 다 그렇게 산다.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관하지 않고 사람은 다 그렇게 내일이 쉬지 않고 반복하여 오늘이 되어 살아진다. 그래서 나도 오늘을 살고 있다. 어제의 오늘이었던 어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상관하거나 묻거나 따지지 않고 어제의 내일이었던 오늘을 살고있다. 얼마나 막연하든지!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내가 도대체 무엇을 생산하며 살고 있는가? 내가 도대체 무엇을 이루며 살고 있는가? 그런데 나의 근원은 내일이 쉬지 않고 오늘이 되기 때문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내일이 멈추어 서서 오늘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오늘이 멈추어 서서 어제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나 또한 그대로 멈추어 서서 아무것도 아닐!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길은 열려있다. 열린 쪽으로 성큼성큼 나가지 못하고 두려워 떨다가도 가만히 한 발 내밀 구멍이 보이면 그저 열심히 열심히 가게 되는 것 또한 사람이다. 한 동안의 안심을 따라서 가다가 다시 새 길을 찾아야 할 때면 또 나약한 사람들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길을 보여 달라고, 길을 보여 달라고....... 절규를 하게 될 것이다. 돌아보면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여생도 그와 다르지 않게 살아 갈 것이다. 나의 인생을 놓고 볼 적에 반평생이 훌쩍 넘어 가고, 저무는 쪽으로 기운 내 자신에게 하늘께서도 복을 그렇게 주셨지만 나도 또한 그렇게 밖에 살아내지 못했다는 탄식에 젖어 보았다.

 

그러나 이 밤에도 여전히 내일은 쉬지 않고 반복하여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제가 되려하고 있다. 주님의 뜻을 몰라서 인생을 가늠할 수 없는 미궁의 미래! 자식에게 사제 성소가 있다면 우리 욕심없이 그냥 살자고 약속했었던 지난 날들이 오늘은 다시 새로운 결심으로 돌아서는....... 더 늦기 전에 돈을 벌어야지! 어서 셋방살이도 면해야 하고, 일찍일찍 서둘러서 짝도 맺어 줘야 하고, 장가도 못가는 노총각들이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은지! 돈이라도 좀 있어야 자식 앞길에 종자돈이라도 쥐어 줄 것이 아닌가?! 이럴 줄 알았다면 예전에 좀 욕심껏 살아 볼 것을! 아직도 우리는 주님의 촛점을 모르고 있지를 않는가?! 그래서 방향이 다른 촛점을 따라서 이동하고 있다. 얼마나 얼마나 가는 동안에 또 다른 이정표를 만나게 될 때 까지 부모로서 자식을 거둘 목표 하나에 의지하여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살아보니 얼마나 얼마나 어려웠던지....... 두려움이 앞선다.

 

나도 짝궁을 따라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복이 끝이라면, 내 시어머니가 나의 신행길에 김치 깍두기에 밥 한 그릇을 주셨듯이, 내가 내 자식의 신행길에 김치 깍두기에 밥 한 그릇을 주게 될까봐 무서워진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실은 내가 신행을 와서 내 시어머니께 김치 깍두기에 밥 한 그릇을 얻어먹은 것은 괜찮은데, 내가 내 자식의 신행길에 김치 깍두기에 밥 한 그릇을 줘야 하는 복을 대물림 할까봐 치가 떨린다. 그 악몽에 시달리다 보면 때로는 주님의 뜻을 가늠하기도 전에 목숨 줄이라도 끊어 대물림 되는 박복을 차단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주님의 길에 성소가 있다면 이 마음 저 마음 다 버리고 주어진 대로, 주시는 대로 감사하며 살자고 다짐하며 살았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목표를 세워서 살아야 한다. 자식에게 짝이 생기면 부모의 빈곤 때문에 빌미가 되는 상황은 면해 줄 정도는 마련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자식의 신행길에 고기국도 끓여주고, 떡도 빚어서 올리고, 나물도 묻혀서 차리고, 크지는 않아도 모양이라도 낼 수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라도 해 주고 싶으고....... 어쩐지 마음이 다급해지고 있다. 신학교가 아닌 일반 대학을 간 자식의 뒷바라지를 하기에는 우리 부부가 너무 빈곤하다. 물질도 너무 부족하지만 세속적 조건을 마련해 줄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못하다. 부모로서 가슴의 폭을 다른 방향으로 넓혀야 하고, 규제의 한계도 대폭 삭감해야하고, 수용의 보폭은 더욱 깊어져야만 한다.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새로운 시작을 하고있다. 새로운 모든 가능성에 축복이 만연하기를 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아멘! 

 

ㅡ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마태오16,16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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