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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예수님 앞을 가로막는 존재인가?
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22 조회수908 추천수10 반대(0) 신고

 

 

 

『중풍 병자를 고치시다.』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 마르코 복음 2, 1-4 >

 

 

저도 분명, 예수님을 뵙고 싶어, 그 분의 복된 말씀을 듣고 싶은 갈망에 모여온 군중 속의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전해 주시는 꿀맛 같은 달콤한 속삭임에 밤낮 없이 취해 보고 싶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두발로 걸어올 수 있을 만큼 신체적으로도 건강하고, 생계나 기타 다른 조건들에 큰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있을만한 군중 속의 혹은 교우들 속의 한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니 그런 대로 예수님을 가까이 접할 수 있을만한 전망 좋은 자리, 물 좋은 자리에 서 있네요.

 

 

저는 어느 장소이든, 맨 앞좌석에 앉는 것을 즐겨합니다. 강의를 들을 때도 앞좌석에 앉으면 강의에 집중할 수 있고, 미사 때도 제대 앞에 앉음으로 인해 분심도 덜 들고, 피정이나 기타 교구 행사 때도(축구경기나 음악회등) 가능하면 맨 앞좌석 혹은 전망 좋은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준비하는 습관이 있지요.

 

 

그런데요, 조금 지나쳐 예를 들어, 피정의 집이나 기타 수도원 등에 피정갔을 때에도 무의식중에 좋은 자리를 골라 앉으려 하고, 실내화도 골라서 신고, 식사할 때도 제 맘에 드는 좋은 식탁에 골라 앉으려 하고...또, 이불도 좋은 이불을 고르기도 했거든요. 특별한 대미사가 있을 때도 가능하면 제대를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자리에 앉으려 자리 선택을 하곤 했지요. 혹 제 앞에 체격이 크신 형제님이나 자매님이 앉으셔서 앞을 막으면 좀 섭섭하게 생각하기도 했었구요.

 

 

복음으로 돌아가, 요즘처럼 운송수단이 발달되지도 않은 시대에, 네 사람이 죽을힘을 다해 환자를 들 것에 실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들에겐, 시시각각 일분 일초의 시간이 생과 사의 기로일 수도 있었겠지요. 네 사람을 요즘 말로 하면, 119구조대나 구급차 요원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위급하고도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중풍 병자를 들 것에 싣고, 죽을힘을 다해 달려 온 네 사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만약 그 중풍 병자가 내 부모.내 형제.내 남편.내 아내.내 자식.내 연인이라면요?

 

 

과연, 소문대로 슈퍼스타 예수님을 둘러 싼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갈 수조차 없습니다.

 

 

여기에서 잠깐,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듣고 있었던 군중들은 왜, 위급한 환자를 들 것에 싣고 온 네 사람에게 조그마한 통로라도 하나 내어 주지 않았을까요? 예수님 주변에는 복음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냥 서성대는 구경꾼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을 터인데, 그들 중의 어느 한 사람도 왜, 이 중풍 병자와 네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까요?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만이라도 이 중풍 병자에게 깊은 연민과 관심이 있었다면, 예수님 앞을 가로 막고 서 있는 군중들에게, "길을 비켜 달라. 여기 위급한 환자가 있다. 조금만 비켜 서달라!"고 외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저는 여기에서, 제 자신을 비롯해 이기적인 군중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환자를 들 것에 싣고, 일분 일초를 다투며 뛰어온 사람들의 절박한 사정은 아랑곳없이, 오로지 슈퍼스타 예수님만 바라보는 데 정신이 팔려 조그마한 통로하나도 내어 주지 않는, 이기적이고도 무관심한 신앙인의 모습이요.

 

 

군중들을 뚫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그들은, 그 순간 군중들의 위세에 눌려 얼마나 절망스럽고도 힘들었을까요?

 

 

혹시 저도 저만 복음 말씀을 잘 듣고, 저만 구원받아, 저 혼자만 천당 가겠다는 이기적이고도 개인주의적인 신앙인의 모습으로 예수님 앞에 터억 버티고 서 있는, 저 군중 속의 한 사람은 아닌지 곰곰 되새겨 봅니다.

 

 

혹은 신앙인 이라고 자처하면서 제가 가는 곳마다, 제 말과 행위로 어느 한 영혼을 예수님께 인도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을 만날 수 없도록 앞을 가로막고, 교회로부터, 신앙 공동체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는 않고 있는지..."군중 때문에(나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이 복음 말씀이 제 마음을 크게 뒤흔듭니다.

 

 

앞으로는, 필요이상의 자리 선택등은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제가 마땅히 있어야 곳은, 꼭 공간적으로나 위치적으로, 제 자신에게나 남에게 좋아 보이는 자리는 아니겠지요. 제가 자꾸 전망좋은 자리를 찿다보면, 진정 주님과의 만남이 절실히 필요한 분들에게 예수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좋은 자리, 전망 좋은 자리를 위해 여기 저기 필사적으로 뛰어 다니지 않더라도, 제 불멸의 연인 예수님과 함께라면, 바로 그 곳이 가장 적합한 제 자리가 아닐까합니다.*^^* 자기가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찿아가는 지혜롭고도 겸손한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물(水)!
저는 당신의 물(水) 속에 잠긴 작은 조약돌이 되고 싶어요. 아멘.

 

 

"데이브는 글을 못 쓰고, 피터는 말을 더듬거린다.
그러나 둘 다 사회 봉사 활동에는 대단히 적극적이다.
번쩍거리는 사교계에서 알아주지 않는 대신
그들은 남들이 거들떠 보지 않는 자리에서
남모르게 자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 세상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는 게 틀림없다."
 

「황대권의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中, 고도원의 아침편지」

 

  멘델스존, 무언가 中 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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