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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리 빛깔 고운 유혹 앞에서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22 조회수1,000 추천수15 반대(0) 신고
2월 23일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마르코 9장41-50절


“네 손이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버려라.”



<저리 빛깔 고운 유혹 앞에서>


우리를 죄와 죽음에로 이끄는 유혹,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단어입니다. 유혹은 얼마나 집요한지, 또 유혹의 힘은 얼마나 강력한지, 그래서 얼마나 우리의 영혼을 괴롭히는지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신앙인으로 살수록, 수도자로 살수록, 사제로 살수록, 하느님과 가까이 지내니 유혹과는 별개의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해왔습니다. 나이를 좀 더 먹으면, 신앙생활을 좀 더 오래 하면, 수도자로서의 덕을 좀 더 닦으면, 세월이 흘러가면 조금은 유혹의 강도가 누그러들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것 역시 아니었습니다.


살면 살수록 더 많은 유혹거리들이 강렬한 몸짓으로 나약한 우리들의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지나온 순간순간 돌아보니 삶의 모든 국면이 다 유혹과 연결된 순간들이네요. 때로 유혹이란 그 맛이 너무나 감미롭습니다. 또 아주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래서 유혹은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올렸던 탑을 일순간에 와르르 무너트립니다. 결국 유혹의 끝자락에는 항상 강한 허탈감, 심한 공허함만이 우리를 비웃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나자렛에서의 오랜 침묵의 세월을 보내신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인 공생활에 앞서 광야로 나가십니다. 사십일 간의 황량한 광야 생활 중에 예수님께서도 사탄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지니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적 한계와 나약함을 지니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둥 사탄의 유혹은 감미롭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겸손하신 예수님이셨기에, 언제나 자기중심적인 삶을 탈피해서 하느님 중심적의 삶을 추구하셨기에, 나자렛에서의 오랜 수행생활로 내공을 든든히 쌓으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사탄의 강렬한 유혹을 의연히, 그리고 단호하게 물리치십니다.

    

엄동설한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날이 다가옵니다. 유혹도 많아지는 계절입니다. 나이나 위치에 상관없이, 신앙인으로서의 연륜에 상관없이 폭풍처럼 강렬하게 우리를 자극하는 유혹입니다. 고백성사를 본 후 환한 얼굴로 새 삶을 기약하지만 그 ‘약발’이 사흘이 넘기지 못합니다. 우리는 또 다시 똑같은 잘못으로 가슴을 칩니다. 철저한 비참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다양한 유혹 가운데 큰 유혹은 우리가 늘 끼고 사는 성격의 유혹, 그래서 아마 평생 지속될지도 모를 성질의 유혹이겠지요. 반복되는 죄와 악습에로 우리를 이끄는 유혹, 참으로 지독합니다.


그러나 때로 그보다 더 강하게 다가오는 유혹이 있습니다. 너무나 큰 고통 앞에,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상실의 아픔 앞에 하느님을 불신하고픈 유혹, 그분을 떠나고픈 유혹이 아닐까요? 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지르는 사람들, 저리 떵떵거리며 살게 놔두시는 하느님, 하필 내게 이렇게 큰 시련을 주시는 하느님, 길을 열어주기는커녕 막다른 골목으로 나를 몰고 가시는 하느님을 이제 그만 떠나고픈 유혹, 그것은 참으로 큰 것일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축일을 경축하는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의 삶은 참으로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기원후 155년경 스미르나 경기장에서 화형으로 순교하신 폴리카르포는 사도들의 제자였습니다.


자신을 화형하기 위해 사형집행인들은 장작더미를 쌓던 순간, 아무리 위대한 신앙을 지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흔들리기 마련이지요. 그 끔찍한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어찌 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폴리카르포 주교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장작더미 위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마지막 기도를 올립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오늘 당신의 순교자들과 함께 살찌고 마음에 드는 제물로써 저를 받아주소서. 성실하고 거짓 없으신 하느님, 당신은 오늘 저를 순교자 반열에 들게 하시어 그리스도의 잔을 나누어 마시게 하셨으니 찬미 받으소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팔십 육년 동안 그리스도를 섬겼으나, 주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신 일이 없으니, 나를 구원하신 내 주 하느님을 어떻게 모욕 하리오?”


불굴의 신앙으로 갖은 유혹 앞에 용맹이 맞선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의 생애를 기억하는 오늘 우리들, 유혹 앞에 보다 담대해지길 바랍니다. 혹시라도 죄에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유혹을 이기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늘 하느님께 죄송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힘을 내기 바랍니다.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처럼 하느님 아버지와의 굳은 결속을 바탕으로, 겸손하고 열렬한 기도를 바탕으로 단호하게 모든 유혹에 맞서는 승리의 나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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