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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49) 립스틱 짙게 바르고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2-27 조회수697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6년2월27일 연중 제 8주간 월요일 ㅡ베드로 1서1,3-9; 마르코 10,17-27ㅡ

 

     립스틱 짙게 바르고

                              이순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내일이면 잊으리.

꼭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영원하지도 않더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속절없는 사랑아

마지막 선물 잊어 주리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

별이 지고 이 밤도 가고 나면

나 정녕 당신을 잊어 주리라.

 

노래 가사가 압권이다. 부르기도 즐겨 부르는 노래이지만 립스틱의 운명이 얼마나 짧은지는 여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물만 마시고도 다시 칠해 줘야 하고, 말만 하고도 다시 그려 주어야 하고, 가만히 있었어도 시간이 가면 또 면경을 꺼내서 살펴 주어야 하는 것이 발라진 립스틱 색깔이다. 살펴 주지 않으면 지저분하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는 김치국물 묻은 것 같기도 하고, 선은 립스틱 흔적이 있는데 입술은 제 살이 드러나서 칠칠 맞아 보인다는 게 보는 사람(?)들의 상식(?)이다.

 

언젠가 오래 전의 경험이다. 제법 나이가 먹어 가기도 했지만, 누군가 나에게 충고를 했었다. 여자로 태어 났으면 자기 얼굴을 자기 손으로 가꿀 줄 아는 것도 신이 주신 소명일 수 있다고. 그 말이 상당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간간히 다른 벗들도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충고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앙에 심취하신 분들의 수기를 보면 하던 화장도 하지 않게 되더라는 글은 읽어 보았지만 화장을 하고 얼굴을 가꾸는 것 또한 주님께서 주신 소명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본 것이다. 내 피부가 잦은 병치레와 수술로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벗들로 부터 주의 사항을 들어야 할 만큼인지는 몰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한 분홍이나 살색에 가까운 립스틱은 지니고 있었지만 진 붉은 홍색 립스틱이 바르고 싶은 날이 있었다. 겨우 화장품이래야 누가 사주거나 선물로 주는 것이 아니면 내 손으로 돈 들여서 사는 경우는 스킨 로션이 전부인데....... 무슨 심보인지 진홍색 립스틱이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도 당장에! 더구나 나의 얼굴은 누른빛이 도는 피부색을 하고 있어서 흰 피부를 가지신 분들과 달리 그렇게 짙은 색의 립스틱이 어울리지 않는다. 너무 가꾸지 않아서인지? 새언니께서도 어느 날에 새언니의 립스틱을 들이 대며 나에게 발라보라고 하신 적이 있었지만 새언니의 흰 피부에 맞는 색은 나에게 맞지 않아서 안된다고 했었다.

 

그래도 새언니의 성화에 못이겨 발라 보았다. 새언니께서도 흰피부를 가지신 새언니의 립스틱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시고 다른색을 바르라고 하셨다. 그런 내가 당장에 진홍색 립스틱이 갖고 싶은 날이 있었다. 슬그머니 집을 나가 화장품 할인점으로 들어 갔다. 그리고 선홍이 짙은 다홍색 립스틱 하나를 거금(?)을 주고 샀다. 그리고 서랍에 넣어 놓고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붉은 색을 이렇게 누리끼리한 바탕에 칠해서는 도저히 인물이 살아날 것 같지가 않아서 그냥 만져만 보다가 발라보다가 지우다가 혼자서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당장 사고 싶어서 사버린 귀중품(?)이기 때문에 더 좋아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홍색 붉은 립스틱을 발라도 되는 날이 왔다.

 

교중미사 독서!

 

반장님께서 교중미사 독서를 해 달라는 전갈이 온 것이다. 세상의 누구 앞에서 그렇게 붉은 립스틱을 발라볼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주님 대전에 갈적에 그렇게 아까운 립스틱을 발라 보아야 하지를 않겠는가?! 독서를 읽고 또 읽는 연습을 하면서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읽었다. 얇은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지 않다가 갑자기 바르면 입술이 무거운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되면 공연히 발음이 새는 것 같기도 하고, 입술이 삐뚤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다홍 립스틱을 바르고 말씀 읽기에 전념하였다. 그 이상의 어떠한 다른 생각이나 마음은 없었다. 사고 싶어서 샀으니까 주님 앞에서 첫 선을 보이고 싶은 마음은 지극히 나 다운 정상적인 발상이었다.

 

주일이 되어 정갈한 옷을 갈아 입고, 대충 분첩으로 얼굴도 좀 토닥거리고, 못 그리는 미술이지만 눈썹도 그리고....... 다홍색 붉은 립스틱을 한 번 칠하고, 또 한 번 더 칠하여 제 색이 옅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성당에 미리 도착하였다. 떨리는 가슴으로 독서대에 오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례를 총괄하시는 자매님이 오셔서 미사에 독서를 읽을 교우들이 잘 대기 중인지 확인을 하시고 갔다. 그러나 아직 제1독서를 읽을 형제님이 오시지 않았고, 성당 안에는 교우들도 한산했다. 나는 매일 미사책의 독서를 다시 한 번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이 다시 오셨다. 나는 형제님이 오시지 않아서 조바심을 치시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 자매님은 무심코 아무런 의식 없이 그냥 앉아있는 나를 복사실로 불러냈다. 나는 조심조심 복사실로 갔다. 그분은 복사실 문을 정확하고 조용하게 닫았다. 그때 까지만 해도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나는 늦게 오시는 형제님 때문인 줄 알았다. 자매님은 조용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 입술 색을 주임신부님께서 싫어하시는데요. 여기서 지우고 가세요.>

그런데 난 상당히 단순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요? 거슬리나요? 그럼 지울께요.>

그 자리에서 그 고운 홍빛을 다 지웠다.

 

그 후로 그 다홍의 붉은 색을 입술에 칠해 보지 못했고, 지금은 그 립스틱이 어느 서랍에서 굴러 다니는 지도 모른다. 문득 그때 일이 떠 오른 이유는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한복을 맞추러 갔는데 홍색치마에 색동 저고리가 어찌나 곱게 걸려 있던지 입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홍색 치마와 색동저고리는 새색시만의 특권이라서 혼인 날에 새색시가 그 한복을 입지 않았어도 고모가 그 옷을 입으면 결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그 화려한 잔치 날에 홍색 붉은 립스틱이라도 찾아서 바르고 싶어진 것이다. 립스틱 짙게 바른 고모더러 지우고 오라는 조카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웃음이 나왔다. 좀 바르고 있게 내버려 두시지? 쩝!  

그때 본당 주임신부님은 칠순이 넘으신 할아버지셨는데....... ㅎㅎㅎ

 

우리 모두의 마음을 주관하시는 그 날의 주님 마음은 어떤 색이었을까?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보다 더 짧은! 정말로 잠깐 피었다가 져 버린! 그런데도 아직 나는 내 얼굴 가꾸기가 서툰 정도가 아니라 방치한 상태다. 물론 그 얼굴 가꾸기 보다 더 어려운 것은 제 마음 가꾸기인데! 얼굴도 못 가꾸는 자가 마음은 어찌 가꾸겠다고......

 

ㅡ"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마르코10,17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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