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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제의 일기]* 혼자임을 절감할 때............. 이창덕 신부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1 조회수882 추천수12 반대(0) 신고

 

 

  주님,

오늘도 잡다한 삶을 휘저으며

보배로운 당신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습니다.

 

사제관에 돌아와

열쇠 꾸러미를 더듬어 문을 여는 것이 몹씨 힙겹습니다.

 

하루의 마감이자 또 시작이여야 하는 이 시간,

이제 나만의 삶에로 회귀하여

영원한 정처를 찾고 싶은 것입니다.

 

진종일 방랑아의 체취를 남기며 헤매었던 

사랑 찾기 놀이에서 지친자의 쓴 웃음만이 방안 가득합니다.

 

주님,

오늘도

취업을 부탁하는 사람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맹인들,

가정이 파탄되었다는 농아,

다른 사람을 구타하고 구속된 사람,

막노동을 하다가 고층에서 떨어져 뼈가 부러진 사람의 한숨소리에

떠밀려 떠밀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들을 돕지 못하는 고통이..

내게는 벅찬 십자가일 뿐입니다.

 

주님,

이런 날이면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 아픔을 외칠때,

표정 없는 당신보다는

안쓰럽게 들어줄 수 있는

한 사람만을......

 

능력이 없어 힘없이 물러앉아.. 혼자임을 절감할 때...

손길 없는 당신보다는

살포시 안아줄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싶은 겁니다.

 

주님,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것이 큰 죄일까요?

 

그저 사랑한다는 단어만을 부지런히 주워 삼키면 무엇 합니까!

다른 사람들이 수없이 되씹다가 뱉아버려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언어를..

 

소중히 간직하다가 사용해야 할

'사랑한다'는 말까지도

발에 툭툭 채일만큼 흔해빠져버려,

그 말을 조심스럽게 사용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모두를 위해 산 제물이 되고자 한 저에게

한 사람에게 쏠리고 싶은 마음..

가득한 사랑은..

못내 나를 괴롭힙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어두운 발길을 밝혀 주기 위해

몇 번을 쓰러지고나면

그 사랑은 묘한 매력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주님,

당신을 위해서라면 그런 사랑과는 이별을 해야겠지요.

그래서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으리라!

바위 위에 맨 손가락으로 해후 없는 '이별'이란 말을 새깁니다.

 

손가락이 닳도록 써가면

그 열기는...

새빨간 선혈이 되어 식혀지겠지요.

 

나 '있음'의 의미가 그 '있음'의 의미였고

그 '있음'의 의미가 나 '있음'의 의미이었으니,

이별이란 말 뿐이며 드러남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여,

당신과 이웃의 시기와 질투가 어찌 그리 심한지...

진실이 허상으로 둔갑될까봐...

이렇게 이별의 준비를 해두는 것입니다.

 

늘 백지의 귀퉁이에다 조그맣게 써보았던

사랑이라는 단어를

내 가슴 깊숙이 이식시켰으니 슬퍼하진 않겠습니다.

 

주여,

평생을 순례자의 길에서

목메임으로

당신을 기다리다가

주저앉아버릴 줄 알면서도..

이렇게나마

이별의 준비를 하고 있는 제 마음을 새겨주십시오.

 

황촉 아래

두 무릎 단정히 꿇고,

상처투성인 두 손을 모아 쌓아 올린

소망과 의지만으로는

어려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뼈아픈 체념의 사고로 이별의 글을 새겨보는 것입니다.

 

주님,

오직 당신을 위한 길은 지고한 희생의 길임을 압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또 한 계단을 더 오르라 하심은 제겐 너무 힘든 숙제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당신의 상처투성이의 자국이 남아있는 그 길을 따르고자 하면서도..

다른 새로운 길로 가고 싶을 뿐이니...

 

아...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인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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