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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금 이 순간에 있지 못하는 무능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1 조회수764 추천수5 반대(0) 신고

 

                                    <스핑크스의 꼬리>

 

가장 위험한 악령은 수도승을 내적으로 갈기갈기 찢는 나태이다. 에바그리우스는 이 악령의 활동을 이렇게 묘사한다. "수도승에 대한 악령의 공격은 대개 네시에 개시되어 여덟시쯤까지 늦추어지지 않는다.

 

처음에 수도승은 마치 해가 천천히만 움직이고 하루가 쉰시간이나 되는 것 같다. 조바심을 내고 자꾸만 창밖을 내다보고, 방 밖으로 나가서 해를 자세히 살펴보며 아직도 아홉시가 되기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확인하고...

 

점점 마음속에서 자신이 지금 머물고 있는 곳에 대해, 현재 살고 있는 삶에대해, 또 바야흐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반감이 끓어오르기 시작하고... 달리 말하자면 악령이 수도승에게 자기 방을 떠나고 투쟁을 포기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 악령을 이겨내면 그리 빨리 또 다른 악령이 오지는 않는다. 깊은 평화와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악령과 겨루어 얻는 승리의 열매다."

 

나태는 지금 이 순간에 있지 못하는 무능이다. 일할 의욕도 기도할 의욕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조차 누릴 수 없다. 언제나 다른데로 생각이 가 있다. 내적 불안으로 순간을 누리지 못하는 무능은 사람을 내적으로 분열시킨다.

 

나태는 현실에서의 도피를 의미한다. 자신의 현실을 직시할 마음이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생각을 어딘가 다른 데 두거나 무엇인가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어떤 일을 일관성있게 하지 못하고, 어떤 일이나 사람을 참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태는 대개 낮시간에 찾아오기 때문에 낮의 악령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이해하면 중년기의 악령이라고 할 수도 있다. 중년기에는 일상적인 것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고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무의미하고 허망하게 느껴진다. 무엇때문에 전심전력 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찾지 못한다. 모든 것을 비판하고 냉소하며 어느 것에서도 참 기쁨을 발견하지 못한다.

                                          

중년기의 악령은 일생의 후반부에 새로운 의미를 주는, 즉 새로이 올바른 방향을 찾고 외부에서 내면으로 향하여 영혼안에서 새로운 가치들을 발견하게 하는 도전일 수 있다.

 

나태는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종사하거나 무엇에 감격할 줄 모른다. 순간을 살지 못하며 삶을 느끼기 위해 언제나 어떤 새로운 것을 체험해야만 한다.

 

그들 가운데 힘있는 사람으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른 이에게 잔인한 폭력을 쓰는 것이다. 여기서 나태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 잘 드러난다.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은 다른 이의 재력으로 살게 되고, 자기 자신을 힘있는 사람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이에게 폭력을 써야만 한다.

 

                           

                        <하늘은 네안에서부터/ 안셀름 그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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