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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제의 일기]* 침묵에 드리워진 애환을 ........ 이창덕 신부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1 조회수1,009 추천수9 반대(0) 신고

 

 

  주님,

목이 타들어가는 가뭄을 겪고 나서 장마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또 폭우의 고난을 치르며 거친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소리는

알지 못할 분노의 절규를 대신하여 주고 있습니다.

"쏟아져라, 쏟아져라,

 세상을 쓸어 버릴려면 쓸어버려라."

하루의 품을 팔지 못해 누워버린 산1 번지 사람들의 신음소리 입니다.

 

주님,

폭우가 가는 비로 변했습니다.

부슬비에 조용히 잠든 이 동네는

금방이라도 혼탁한 물이 일 것같아 조심스러워집니다.

 

주님,

가뭄도 장마도 모르는 한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그 여인은 뇌종양으로 앓고 있는 지아비를 간호하다가

하늘을 보며 당신의 뜻을 맞아들이기가 벅차서 찾아 온 것입니다.

 

공사판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하루 세끼를 여지없이 채워주던 남편이

일년 전에 쓰러진 것입니다.

 

없는 살림이라서 셋방 한 칸 이지만

다섯식구가 다리를 뻗고 살 수는 있었습니다.

피곤한 남편의 눈치를 살피다가도

어쩌다 한 번 웃어주면

세상 행복을 다 끌어안고 있는 것만 같았던 삶이었습니다.

 

"제게는 하늘같은 남편이었습니다."

숨을 돌리는 그 여인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일 년 전에 수술을 받았지만 수족이 마비되어 누워 있었는데

재발해서 다시 뇌의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이제 또 다시 수술을 해야만 몇 년을 더 버틴다는

의사의 말을 들을 때

그만 귀를 막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수술을 하면 몇 년을 또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내 새끼들은 누가 먹여 살립니까?"

당신께 한 발자국 다가가기 위해서

아픈 날개를 푸드득 거리는 얘기입니다.

 

"죽을 사람은 가더라도 산 목숨은 살려야 해."

냉혹한 동네 어른들의 소리..

이제 밉지만은 않습니다.

 

주님,

삶을 포기하고 퇴원을 시키던 날.

그 여인은 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내와 엄마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당장 오늘부터 한 끼를 위해서 어데론가 찾아나서야 하는데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남편의 서러운 눈빛과 애환이

그 여인의 발을 묶어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여잡으려 했던 소망의 한줄기는 놓아 버린지 오래됐습니다.

굴레를 벗어 던지고 훨훨 날고자 했던 공상도

스스로 허물어 절망을 택했습니다. 

 

한 낮에 호흡하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남편을 보며

젊은 가슴에 보채는 애정마저도 잃어버렸습니다.

 

주님,

무척이나 거칠고 마디 굵어진 손길로

남편의 죽음을 비는 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열 개의 목숨이 있다 해도 부족 할진데

그 한 목숨을 감당하지 못하고 체념하려는 몸짓이

당신을 향해 울부짖고 있습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쳐야 할 당신의 사제는

무엇이라 조언해야 합니까?

 

이런 날은

차라리 막걸리 몇 잔을 들고

젓가락으로 상 모퉁이를 상처내며 노래나 부르고 싶습니다.

 

어서어서 죽어주기를 바라는 아내의 눈과...

이를 눈치 챈..

남편의 살려달라는 눈빛이 마주치면..

둘 다 죄인이 되어..

고개를 돌리고..

질식할 것 같은 침묵을 한숨으로 깨버리고 있습니다.

 

그저 신음소리와 한숨소리로

서로의 가슴을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주님,

사위어가는 목숨 앞에서

삶의 침묵에 드리워진 애환을 뜯어내 주십시오.

어느 간절한 손길이 세월의 짐을 덜어 주겠습니까?

 

당신의 잠긴 음성이라도 좋으니

이 모진 학대를 다스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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