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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세상에 온 궁극적인 목적!(하자전)
작성자임성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2 조회수850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1. 사람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본 모습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에도 당신을 사람의 아들로 말씀하신다.

 

왜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셨을까?

 

본질이 하느님이신 분이 스스로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데에는 성모님을 관련 짓지 않고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원죄없이 태어나신 성모님의 아들로서 당신은 하느님이면서도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머니신 성모님을 생각하면서 ...

 

하느님의 뜻을 이룩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지만 언제나 예수님의 마음은 성모님의 성심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위대하신 것이다.

 

하느님이지만 인간을 너무 사랑하여 피조물인 인간에게로 왔고, 그 과정에서 늘

 

한 평생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생각하며, 성모님의 아들로서 당신 스스로를 인간의

 

아들로 말씀하신 것이다.

 

 

얼마나 예수님의 마음과 성모님의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가 그 신비를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씀이시다.

 

 

그러니 성모님을 통해서 간구하면 예수님은 그 어떤 것도 들어 주시는 것이다. 

 

 

 

2. 사흘 만에...

 

 

신비다. 언제나 하느님의 뜻은 신비라는 생각이다. 그냥 바로 부활하셔도 될텐데...

 

하루 만에 혹은 이틀 만에 부활하셔도 될텐데 삼일을 얘기하신다. 전지전능하시니

 

시간은 얼마든지 당기실 수도 있을 텐데... 그런데 삼일이다.

 

 

신비다. 하느님의 섭리에도 때가 있다는 것이 신비이다.

 

그래서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갈 때가 있으며, 올 때가 있는 것이다.

 

만날 때가 있고, 헤어질 때가 있으며,

 

일어 날 때가 있고, 누울 때가 있는 것이다.

 

이 때를 볼 수 있는 것이 지혜다.

 

이 때의 신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사실은 아주 쉽다.

 

그냥 가만히 보는 것(觀)이다.

 

 

오늘 하루 그냥 가만히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라!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온갖 생각들도 그냥 일어나는대로 가만히 보라.

 

일어났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을 그냥 보라.

 

그리고, 이 보는 나는 누군인가를 생각해 보라.

 

육신도 아니요, 정신도 아니요, 생각 그 자체도 아니요,

 

이 나는, 보고있는 나는 누구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라.

 

정신과 마음을 쓰고 있는 이 나를 한번 생각해 보라.

 

과연 나는 누구인가?

 

이를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맑게하는 선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자!

 

우리가 깨달음(覺)에 이르는데는 5단계가 있다고 하버드 대학교 출신인

 

현각 스님의 스승이신 숭산 스님은 말씀하신다.

 

물론 이는 설명을 위한 방편이다.

 

원을 이용한 설명이다.

 

원의 각도를 이용하여 0도, 90도, 180도, 270도, 360도의 각 단계에 대하여 설명한다.

 

0도는 나와 세상 사물이 관계없는 단계이다. 세상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에 대하여

 

나는 화를 내고, 모든 것이 세상 탓에 있다고 하는 단계이다.

 

집착과 분별의 단계인 것이다. 여기서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이다.

 

그 다음은 90도의 단계이다.

 

이 곳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임을 깨치는 곳이다. 동물이고, 식물이고 우리 모두가

 

죽으면 모두 다 재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떤 숫자라도 ㅇ을 곱하면 0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음은 180도의 단계이다. 여기서는 단지 할이라든지 방이라든지 하는 큰 소리로

 

답할 뿐이다. 그 순간에 우리의 잡다한 생각은 없어진다. 짧은 순간이지만 모든 생각

 

을 끊어내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다음은 270도의 단계이다.

 

여기서는 자유의 단계이다. 연필이 화가 났고, 책이 웃는다. 내가 500년 전으로 돌아 갈수도 있고, 500년 후로도 나아갈 수 있는 단계이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고, 지금 이 순간 우주를 손바닥에 쥘 수도 있으며, 물 위를 걸을 수도 있는 단계이다.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묘사해 볼 수 있는 단계이다. 그래서 자유롭다. 온 우주를 마음에 품을 수 있는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360도의 단계이다.

 

여기서는 다시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단계이다. 그러나 오직 있는 그대로 일 뿐, 분별과 집착이 없다. 

 

이 단계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후에 "가서 먹은 밥그릇이나 씻어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실시 한다. (부처님께 재를 털면...)

 

유교에서 얘기하는 상선약수처럼 모든 것을 물처럼 수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오직 "내가 당신을 도울까요?"라는 자비심 밖에는

 

다른 마음이 없다.

 

 

하버드 대학교 앞에서 세탁기를 공중에 둥둥 띄우면서 신비한 스님이란 소문에

 

많은 제자들이 숭산 스님을 찾아와서 제자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가 불교의 스님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선을 통한 맑은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인 것이다.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진정으로 무소유의 삶을 살 수 있고, 남을 위한 삶을 진정으로 실천할 수 있으며, 참으로 자비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를 행동으로, 삶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3. 제 십자가... 

 

 나의 십자가는?

 

사람마다 다 십자가가 있다.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참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각자가 받은 달란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달란트는 무엇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나의 재능은 무엇인가?

 

하느님이 이 세상에 나를 보냈으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기도에서처럼 하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 목적일 수 있다.

 

 

또,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이 땅에 보내신 것이

 

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떤 표현이든지 간에 이런 사랑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

 

을 얻게하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낸 목적이라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 우리 각자의 달란트가 필요한 것이다. 수단으로서...

 

 

그런데,  현재 약 60억 인구에게 주어진 각자의 달란트는 다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달란트를 아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일인 것이다.

 

 

그 시대마다 필요한 소명은 다른 것이다.

 

하느님의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달란트를

 

지혜롭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달란트를 알기 위하여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내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하느님에게 기쁨이 되기 위하여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이웃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베풀기 위하여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했을 때 이웃과 하느님은 가장 기뻐하시는가?

 

 

우리 각자에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 행동에 담긴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결국 나의 십자가는 사랑이고, 늘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운명은 선물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행복의 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시오!(전임 교황 바오로 2세의 유언에서...)

 

 

우리는 천상 행복도 누려야 하지만, 현세에서도 행복해야 합니다.

 

 

나는 행복한가?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내가 행복 할 때 이웃도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행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나에게는 마음이 편안한 것이 행복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나는

 

식적으로 늘 마음이 안한 것을 택하고자 합니다(의편선)

 

남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도 말입니다.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나는 행복한가?

 

나는 행복을 선택하는가?

 

늘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식적으로 행복을 선택해야 함을 말입니다.

 

의식적으로 늘 마음이 편안한 것을 선택하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 느님의 비를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하자전)

 

그것이 제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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