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제의 일기]* 어두운 들녘에 빛을 뿌리며.......이창덕 신부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2 조회수852 추천수10 반대(0) 신고

 

 

 

  주님,

당신을 향한 나의사랑은 슬픔과 분노에서 출발합니다.

 

사랑을 구걸하다가 쉴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한 젊은이가

당신의 품을 발견했습니다.

 

당신 품보다는 형편없이 작고 초라하지만

당신을 닮아야 되겠기에 그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 젊은 이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 되어

당신 품을 그리워합니다.

 

주님,

사제 생활이란 웃음을 파는 여인처럼 늘 웃어야 합니다.

때로는 피 울음을 삼키며 억지 웃음을 지을 때

눈가의 주름은 더욱 깊어지고

여기에 당신 사랑이 고이고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웃음마저 웃을 수 없어 울고 있습니다.

 

높으신 당신 사랑을 흉내내다가 지쳐버릴 때

저는 사랑의 찬가를 당신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사랑은 하나입니다.

뉘 만일 사랑이 여럿이라면 

속고 속이는 길가에서

한 잔 술에 휘청거리는 자의 읊조림일 뿐입니다.

 

주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뉘 만일 사랑이 변한다면

사랑을 삭일 줄 몰라 구역질 하다가

재산과 권력으로 삭여진 사랑을 토해 내는 자의 얘기일 뿐입니다.

 

주님,

사랑은 혼심을 다해 사랑해야 할 권리일 뿐..

의무는 아니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의무로 지우신다면 요즈음 같아서는 너무 무겁습니다.

 

가슴안에 잃어버린 고향을 찾다가

그곳이 당신 나라임을 발견한 그가

지금은 시퍼런 칼날 위 제물이 되고자 맨발로 서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지켜보라 하십니까?

 

홍장미 활짝 피어 꺾이던 골고타의 어귀가..

봉오리째 시드는 감옥문 앞이 되지 않게 하소서.

 

매번 호흡을 멈추어 겨냥했던 사랑과 정의의 표적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허공에 울린 소리만 요란할 때

정말 귀를 틀어막고 싶은 것입니다.

 

님이시여,

스스로 만든 양심의 발길에 채여

피를 토하며 거꾸러진 이들이 썩어가는 냄새,

분노의 핏발을 다독이며 핏자국을 찾는 이들의

땀내음이 어울려 악취를 풍길 때

코를 틀어막고 싶습니다.

 

긴 숨이 나의 눈을 감겨주고 있으니

지금은 두 귀와 코를 틀어막고

맴돌다 맴돌다

당신 품안에 쓰러지고 싶은 것입니다.

 

당신 사랑으로 짙게 채색해 오면서

아프게 견디어야만 했던 이 마음에....

주님, 무슨 색갈을 칠하오리이까.

 

사제는 모든 이들의 눈물을 받을 그릇을 준비하면서도

자신의 눈물을 담을 그릇을 마련하지 못함은

당신을 흉내내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맞이하다 진통이 스며들면

귀를 열고

이 어두운 들녘에 소요하는 소리,

사랑으로 감싸는 님의 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는 위안을 갖습니다.

 

마음을 더럽히기 보다

욕스런 삶을 딛고 서서

비문의 한 생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모든이들에게

한가닥의 소망과 위안을 드리고픈 이 마음을 태워

어두운 땅에 등을 밝혀야 되지 않겠습니까?

 

얼마를 태워야 합니까!

 

주님,

당신 앞에 엎어져 미움없이 당신 마음을 쳐다볼 때

그땐,

칼집에 칼을 꽂는 노인의 때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어서 늙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