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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이 좋아하는 단식"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3 조회수641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6.3.3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이사58,1-9ㄱ. 마태9,14-15





"하느님이 좋아하는 단식"



언젠가 두 분 형제분들의 단식에 대한 대화가 생각납니다.
“한 사십 일간 단식했더니 체중이 약15kg쯤 빠졌습니다.
아주 가뿐하니 좋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한 형제분의 반응입니다.
“우리같이 일하는 사람은 그렇게 단식하면 일하지 못합니다.”

무심결의 평범하면서도 진솔한 답변이 저에겐 신선한 깨우침이었습니다.
새삼 단식이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 가치의 수행임을 깨닫습니다.

배부른 사람이 단식이지, 끼니 걱정에 여념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치에 불과할 뿐 전혀 실감되지 않는 단식입니다.

뭔가 버릴게 있어야 자발적 가난이지
애당초 없는 사람에게는 가난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대접 못 받으며 무시당하며 사는,
더 내려 갈래야 내려갈 데 없는 사람은

겸손을 실감하거나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소외되어 외롭게 사는 노인들에게는 침묵이나 고독은 아무 쓸모없습니다.

모두가 상대적 가치를 지닌 수행 덕목일 뿐입니다.
우리의 수행들, 살아있는 주변 현실을 망각하여 이웃을 배려하지 않으면
자기도취의 착각 중의 수행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가난하고 소외된 죄인들과 어울렸던 예수님
절대 수행 덕목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복음을 선포하시고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시며
사람대접에만 골몰하셨습니다.

가난에 대해서 설교하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에게 하늘나라의 축복을 선언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좋아하는 단식을 누구보다 잘 아신 주님이셨습니다.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사58,6-7)’이
하느님 좋아하는 단식이라 하십니다.

이런 단식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축복을 약속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이사58,8-9).

사랑과 정의의 실천과 유리된 자기도취의 단식,
자기(Ego)의 과시일 뿐 공허하기 그지없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을 하지 않습니까(마태9,14)?”

아무리 단식을 많이 한들
하느님이 원하셔서가 아닌 저 좋아서 한 단식이라면 무슨 덕이 되겠습니까?

단식 많이 해서 구원이 아니라 사랑 실천 많이 해서 구원입니다.
더구나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혼인잔치 축제와 같은 일상인 데, 아무 때나 단식은 정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9,15ㄷㄹ).”

단식할 때를 분별하여 드러나지 않는 단식을 수행함이 진정한 덕입니다.
사순시기,
적절한 단식은 욕망의 절제나 사랑의 실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모든 수행이 그러하지만 단식 역시 주님 사랑의 표현이자,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표현되는 단식일 때 진정한 덕이 됩니다.

“주님, (이 미사 중에) 주님의 길을 제게 알려주시고,
주님의 행로를 제게 가르쳐 주소서(시편25,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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