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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는 마음으로 인하여...(평행고행)
작성자임성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3 조회수724 추천수3 반대(0) 신고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 단식과 의리

 

세상의 모든 일에는 수단과 목적이 있다.

 

가치들 사이에도 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단식 자체보다 단식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고 더 큰 가치인 자선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단식을 하더라도 별로 의미가 없는 행위가 된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은 수단에 함몰해서 목적은 잃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어, 교육이나 과학이나 문화나 기술이나 미디어 등 이런 모든 것은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그럼에도 그 자체에 너무 함몰되어서 더 큰 가치, 더 큰 목적인 평화는 생각지 않고

분주하게 활동을 한다.

 

그러다보면 오히려 근본 목적인 평화는 사라지고 활동 속에서 갈등만 더 키우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보통 사순시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음식도 절제 하곤 한다.

 

왜 그렇게 하는가?

 

왜 하는지 그 근본 목적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일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분주하게 살아 가지만 그 활동 속에서 근본 목적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집과 가정의 차이를 말한 적이 있다/

 

집은 그냥 건물 그 자체를 말하지만, 가정은 그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면서,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공동체를 말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늘 집에서 나왔다, 집으로 들어가지만 그 집이 진정한 의미에서 가정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살아가다가 힘이 들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런 가정 공동체가 집의 진정한 의미이고 목적이라고 하겠다.

 

다른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공동체가 진정한 의미에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더우기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어려울 때 보면 그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인지 잘 드러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도 성모님과 사도 요한 외에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렸다. 소위 말해서 의리가 없는 것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의리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주변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그 때야말로 우리가 함께 해야 할 때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하길 좋아하나, 슬프고 어려울 때는 함께 하질

 

않는 것이다.

 

 

그것이 세속 사람들의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우린 그렇게 해선 안된다.

 

기쁠 때는 물론이고 슬픔과 어려움에 빠졌을 때, 더욱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신랑이 함께 있는 시간 뿐만 아니라, 신랑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로워야 한다.

 

어려울 때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은 귀하다.

 

어려우면 대부분이 다 떠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온갖 정성을 바친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십자가의 육체적인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제자들로부터 배반을 당한 예수님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린 것이다.

 

예수님의 애제자가 된 사도 요한은 왜 애제자가 되었겠는가?

 

이런 의리가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신 것이다.

 

모두가 다 떠나도 어머니와 함께 옆에 있어 줄 수 있는 의리가 있었기에

 

이를 미리 보신 예수님께서 어찌 특별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도 살면서 잔치 뿐만 아니라 고난에도 함께 할 수 있는 의리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고난에도 함께 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2. 잔치의 진정한 의미

 

잔치는 참 좋은 것이다.

 

인간이 참으로 행복한 기쁨을 표현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잔치이다.

 

돌 잔치, 생일 잔치, 환갑, 진갑, 결혼 기념일, 창립 기념일... 등등

 

인간의 삶에서 이런 잔치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그런데, 이런 잔치에 그 주인공이 빠진다면 그 얼마나 우스운 꼴이 되겠는가?

 

 

우리 일상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 일상 삶의 주이공이신 예수님이 빠진다면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될까?

 

삭막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부활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아무리 단식을 하고

 

아무리 잔치를 한다고 한들 그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늘 기뻐하고, 늘 감사하고, 늘 기도하라는 말씀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늘 함께 계셔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함께하지 않는 삶은 단식도, 잔치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 마음 속에 실재하신 예수님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 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분이 좋아하시는 언제나 사랑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분은 그 마음을 보시고,  주는 마음을 찾으신다.

 

 

그분은 사랑을 주는 마음을 즐겨 찾으신다.

 

그리고 기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파티에 초대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파티가 가능하다.

 

 

바로 진정한 파티와 축제는 우리 삶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과 함께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 때만이 참 평화가 함께하는 파티와 축제가 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언제 참 평화를 느끼는가?

 

 

참 평화가 없으면 그 때는 대개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은 때일 경우가 많다.

 

우리 마음이 언제 참 평화로 변하는가? 

 

내가 받는 마음보다 주는 마음이 될 때, 참 평화이신 예수님이 즐겨 나타나시고

 

우리 마음이 편안한 마음이 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늘 주는 마음을 간직하고 유지해야한다.

 

주는 마음은 우리 마음을 빈 마음으로 만들고 예수님을 초대하기 때문이다.

 

주는 마음이야말로 참 평화가 있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파티가 시작되는 단초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이 주는 마음일 때, 우리는 늘 무소유의 마음으로 언제나 파티를 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게 된다.

 

늘 기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는 마음이 될 때, 예수님이 늘 함께 하시고, 우리는 늘 기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가지고 소유하려는 마음이 들면 그 기쁨은 금방 사라진다.

 

마음이 빈 마음이 되질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주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가?

 

이는 행동함으로써 그 마음이 생기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동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주는 행동으로 선택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마음 상태가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이 따라 오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가 평화로운 행동을 선택하면 우리 마음에 평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노하우다. 늘 평화를 유지하는 노하우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평화로운 행동이 마음에 반영되어 평화로운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실제로 실천해 보라.

 

기분이 우울할 때에도 의지를 가지고 웃는 표정과 행동을 선택해보라!

 

곧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우리 마음은 우리 행동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평화로운 행동을 하라! 고요한 행동을 하라!(평행고행)

 

그러면 평화로운 마음과 고요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음은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냥 비출 뿐이다.

 

 

마찬가지이다.

 

주는 마음도 우리가 행동으로 주는 것을 실천 할 때 생긴다.

 

그 행동이 마음이라는 거울에 비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을 늘 우리 마음에 초대하는 비법인 것이다.

 

 

길거리에서 500원이든 1000원이든 도움을 필요로하는 사람에게

 

늘 주는 행동을 해보라!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늘 사랑을 주는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곳에,

 

 늘 주는 마음이 생겨나고,

 

늘 주는 마음 속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성심으로 바뀌는 것이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고요한 마음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참 평화가 있는 마음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가 있는 파티와 축제가 우리 마음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진실한 기쁨이 우리 마음 속에서 넘쳐나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삶이 행복해 지는 것이다.

 

진정한 잔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주는 마음으로 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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