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월 4일 야곱의 우물 -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4 조회수700 추천수7 반대(0) 신고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루카 5,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밖에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박기석 신부(군종교구 홍보국장) - 
    
     
    군종사제로 살면서 갖게 되는 소박한 기쁨 중의 하나는 해마다 영명축일에 
    받게 되는 교구장 주교님의 선물이다. 군사목을 위해 본래의 교구에서 
    파견된 젊은 사제들을 자상하게 이끄시는 군종교구장 주교님! 
    
    지난번 내 영명축일에는 어느 한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삶을 담고 있는 책 한 권을 선물로 보내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새해 첫날부터 공감을 뛰어넘은 맑은 눈물로 자신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학박사, 외과 전문의로 근무하다가 친구들과 함께한 어린 시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40세 되던 해에 낙향해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
    그분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의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람이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다. …
    내가 이해하고 바라는 자비심이란 타인의 기쁨을 내 기쁨처럼 여기고,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길 줄 아는 마음, 곧 참사랑을 말한다.
    그것은 내가 타인보다 우월하거나 풍족하거나 더 세다고 해서 무언가를 나눠주는 동정과는 다르다.
    동정은 자신보다 못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 무언가를 베풀었다는 자기 만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사랑이 깃든 자비심이야말로‘함께 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큰 울림이 아닐까 싶다.”
    오늘 복음은 사순시기 동안 예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한 인물을 통해서 제시한다. 레위는 당시 사람들 에게 기피 인물이었다. 그의 직업이 세리였기에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고 그분을 자기 집으로 모셨다.
    오늘 복음의 레위처럼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회개’다. 그분은 세속에 물들어 있는 우리 모두가 영적인 삶,거룩한 삶으로 ‘뛰쳐나오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뛰쳐나온 그 ‘탈출’처럼 말이다. 이 ‘뛰쳐나오기’를 돕기 위해 예수님은 의사가 되셨다.
    어느 한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처럼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시며 우리를 이끄신다. 따라서 ‘회개’는 우리에게서 시작된 여정이 아니라 예수께서 시작한 여정임을 알 수 있다.
    곧 주님이 초대하신 ‘회개’의 여정, 주님이 함께하시는 아름다운 동행에 우리 자신을 내드리는 일만이 사순시기에 우리가 할 일이다.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홍병주 베드로 성인이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홍병주 베드로 성인이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홍병주 베드로 성인이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성인의 이름을 호칭하며 기도하게 도와주소서!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회개’다. 
    
    그분은 세속에 물들어 있는 우리 모두가 영적인 삶, 거룩한 삶으로 ‘뛰쳐나오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뛰쳐나온 그 ‘탈출’처럼 말이다. 이‘뛰쳐나오기’를 돕기 위해 예수님은 의사가 되셨다.
    
    참...힘듭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니 말입니다...
    
    나중에 산수갑산을 갈망정, 당장은 지고 가야되는 십자가들이.. 산떼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암튼, 제가 하기 싫은 일은 모두가 십자가가 아닐른지요...
    직장을 다니다보니... 집안 일이 점점 하기 싫어집니다. 울엄니 챙기는 일도 예전만큼 할 수가 없습니다.
    틈만 나면 잠을 자야 되는 부담이며, 설겆이는 왜 그렇게 하기 싫은지 모르겠습니다.저는요..설겆이가 젤 큰 랍니다.헤헤~
    그런데 말여요... 힘든 길임을 뻔히 알면서도 갈려고 애를 쓰고 있는 제 모습을 바라봅니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영적인 삶을 갈구하는지,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를 생각해보니...
    제가 바로, 그 "뛰쳐나오기"를 한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제 삶에 홍해바다를 건너는 체험이 없었다면,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회개"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저는 힘들어서...십자가를 덥썩 울러메고 가겠다고 못할 것입니다.
    내가 메고 간다고 말하지만, 내가 메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제게 힘을 주셔서 메고 갈 수 있는 것이지요.
    눈물,콧물 쏟아내면서...수많은 회개로, 가던 길에서 휘리릭 돌아선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회복이 되었기에... 새 생명을 맛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 길이 바로 '회개'라는 것을 통해서 가능해집니다.
    내일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을 나눠주신 김정훈 신부님의 글 중 한 대목입니다. 미리 나누면서..'회개'가 무엇인지 곱씹는 하루가 되시길 두 손 모으고 이만 줄입니다.
    
    '회개하다’라는 뜻인 그리스어 메타노에오(metanoeo)는 본래 
    ‘마음을 바꾸다’라는 뜻이며, ‘…을 후회하다’라고 풀이되기도 한다. 
    
    그리스인들은 이 동사를 이성적 차원에서 생각이나 마음을 바꾸는 행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현대 히브리어 신약성경에서 메타노에오는 ‘후회하다’ 또는 ‘(행실을 바꾸고) 돌아오다’라는 뜻을 지닌 수브(sub)로 옮겨진다.
    따라서 ‘회개하라’는 말은 ‘행실을 바꾸고 돌아오라’고 의역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예언자들은 하느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께 돌아가서 계약에 충실하라’는 뜻으로 ‘수브’를 사용한다 (에제 3,19;13,22;14,6 등).
    따라서 회개와 관련해서 사용될 때 이 말은 단순히 이성적인 생각을 바꾸거나 후회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 하느님께 돌아가는 행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러한 회개, 곧 철두철미한 전인격적 회개를 촉구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회개의 삶이 복음을 믿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느님과 멀어진 삶을 살면서 그분께서 주시는 구원의 소식을 진정으로 믿는 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출발점이자 토대인 회개의 삶, 곧 매순간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돌리고 성령의 이끄심에 순응하면서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소스입니다.*^^*

<ul><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63.jpg">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3pt"> 
<b>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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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루카 5,27-­32]</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밖에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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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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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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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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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 박기석 신부(군종교구 홍보국장) - </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군종사제로 살면서 갖게 되는 소박한 기쁨 중의 하나는 해마다 영명축일에 
받게 되는 교구장 주교님의 선물이다. 군사목을 위해 본래의 교구에서 
파견된 젊은 사제들을 자상하게 이끄시는 군종교구장 주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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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내 영명축일에는 어느 한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삶을 담고 있는 책 
한 권을 선물로 보내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새해 첫날부터 공감을 
뛰어넘은 맑은 눈물로 자신을 다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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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학박사, 외과 전문의로 근무하다가 친구들과 함께한 
어린 시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40세 되던 해에 낙향해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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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의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람이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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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해하고 바라는 자비심이란 타인의 기쁨을 내 기쁨처럼 여기고,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길 줄 아는 마음, 곧 참사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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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내가 타인보다 우월하거나 풍족하거나 더 세다고 해서 무언가를 
나눠주는 동정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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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은 자신보다 못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 무언가를 베풀었다는 
자기 만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br>
그러나 참사랑이 깃든 자비심이야말로‘함께 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큰 울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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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사순시기 동안 예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한 인물을 통해서 제시한다. 레위는 당시 사람들
에게 기피 인물이었다. 그의 직업이 세리였기에 그러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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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고 그분을 자기 
집으로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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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레위처럼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회개’다. 
그분은 세속에 물들어 있는 우리 모두가 영적인 삶,거룩한 삶으로 
‘뛰쳐나오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뛰쳐나온 그 ‘탈출’처럼 말이다. 이 ‘뛰쳐나오기’를 
돕기 위해 예수님은 의사가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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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처럼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시며 
우리를 이끄신다. 따라서 ‘회개’는 우리에게서 시작된 여정이 
아니라 예수께서 시작한 여정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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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주님이 초대하신 ‘회개’의 여정, 주님이 함께하시는 아름다운 
동행에 우리 자신을 내드리는 일만이 사순시기에 우리가 할 일이다.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성 홍병주 베드로 성인이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홍병주 베드로 성인이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홍병주 베드로 성인이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pre><FONT color=mediumpurpl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오늘 하루만이라도 성인의 이름을 호칭하며 기도하게 도와주소서!
</b>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회개’다. 
<br>
그분은 세속에 물들어 있는 
우리 모두가 영적인 삶, 거룩한 삶으로 
‘뛰쳐나오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계신다. 
<br>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뛰쳐나온 그 ‘탈출’처럼 말이다. 
이‘뛰쳐나오기’를 돕기 위해 예수님은 의사가 되셨다.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참...힘듭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니 말입니다...
<br>
나중에 산수갑산을 갈망정, 당장은 지고 가야되는 십자가들이..
산떼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암튼, 제가 하기 싫은 일은 모두가
십자가가 아닐른지요...
<br>
직장을 다니다보니...
집안 일이 점점 하기 싫어집니다.
울엄니 챙기는 일도 예전만큼 할 수가 없습니다.
<br>
틈만 나면 잠을 자야 되는 부담이며, 설겆이는 왜 그렇게 하기
싫은지 모르겠습니다.저는요..설겆이가 젤 큰 <b><big>†</b></big>랍니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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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여요...
힘든 길임을 뻔히 알면서도 갈려고 애를 쓰고 있는 제 모습을 바라봅니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영적인 삶을 갈구하는지,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를 생각해보니...
<br>
제가 바로, 그 "뛰쳐나오기"를 한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제 삶에 홍해바다를 건너는 체험이 없었다면,
<br>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회개"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저는 힘들어서...십자가를 덥썩 울러메고 가겠다고 못할 것입니다.
<br>
내가 메고 간다고 말하지만, 내가 메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제게 힘을 주셔서 메고 갈 수 있는 것이지요.
<br>
눈물,콧물 쏟아내면서...수많은 회개로,
가던 길에서 휘리릭 돌아선 것입니다...
<br>
주님과의 관계 회복이 되었기에...
새 생명을 맛볼 수 있는 것이지요.
<br>
그 길이 바로 
<b><big>'회개'</b></big>라는 것을 통해서 가능해집니다.
<br>
내일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을 나눠주신 김정훈 신부님의 글 중
한 대목입니다. 미리 나누면서..'회개'가 무엇인지 곱씹는 하루가 되시길
두 손 모으고 이만 줄입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회개하다’라는 뜻인 그리스어 메타노에오(metanoeo)는 본래 
‘마음을 바꾸다’라는 뜻이며, ‘…을 후회하다’라고 풀이되기도 한다. 
<br>
그리스인들은 이 동사를 이성적 차원에서 생각이나 마음을 바꾸는 행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br>
현대 히브리어 신약성경에서 메타노에오는 ‘후회하다’ 또는 
‘(행실을 바꾸고) 돌아오다’라는 뜻을 지닌 수브(sub)로 옮겨진다. 
<br>
따라서 ‘회개하라’는 말은 ‘행실을 바꾸고 돌아오라’고 의역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예언자들은 하느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께 돌아가서 계약에 충실하라’는 뜻으로 ‘수브’를 사용한다
(에제 3,19;13,22;14,6 등). 
<br>
따라서 회개와 관련해서 사용될 때 이 말은 단순히 이성적인 생각을 바꾸거나 
후회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 하느님께 돌아가는 
행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러한 회개, 곧 철두철미한 전인격적 
회개를 촉구하신 것이다.
<br>
예수께서는 이런 회개의 삶이 복음을 믿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느님과 멀어진 삶을 살면서 그분께서 주시는 구원의 소식을 진정으로 믿는
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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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출발점이자 토대인 회개의 삶, 곧 매순간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돌리고 성령의 이끄심에 순응하면서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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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103위 한국순교성인</A></UL></FONT></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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