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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작성자송규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5 조회수603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름 cassiano 神父
제목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서 58,4, 6-7)

    나의 '단식'은 ?

 

 

  추기:

 '예수, 생명의 문/안셀름그륀/분도' .
193페이지 입니다.

[...] 자기 자신과 하나 된 사람은 다른 사람과도 하나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거꾸러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 하느님, 우주 전체와 내적
일치에 이를 경우 우리는 자신의 고유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일치는 단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일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회의 일치는 예수에게 가장 먼저 교회가 순수한 가르침을 선포하고
하나의 의견만을 내세우는 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이 일치는 오히려 교회가 항상 예수의 말씀에 의존하고,
예수에 의해 본질적 실재인 하느님의 영광에 눈을 뜨는 일로 실현된다.
하느님의 영광은 강생하신 예수를 통해 이 세상에 빛나고 있다.

예수의 말씀으로 교회는 자신이 이 세상에 있으며, 이 세상에 널려 있는
모든 갈등 ‧권력투쟁‧경쟁‧시기‧음모 등에도 관련되어 있음을 체험한다.

하지만 교회는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에 의한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자유를 누린다. 교회는, 그리스도인 각자가 증오와 소외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멀리하고 사랑과 평화와 빛의 신적 영역에 잠김으로써
하느님의 자유를 늘 누리기를 바란다.

요한복음 17장 23절에서 예수께서는 우리가 서로 완전히 하나되기를 기도하신다.
여기서 다시 그리스어 "텔로스"가 나타나는데, 이 단어는 발을 씻어 주는 사건과
십자가에 달리시는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수께서 발을 씻어 주는 사건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수께서 발을 씻어 주는 사건과 십자가의 죽음에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던
그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에서 완성된다.

예수의 죽음은 요한에게 과거사가 아니라, 예수의 사랑에 끝까지 참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늘 현재화 시켜야하는 형상이다.

예수의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을 변화시키고 서로 하나 되게 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요한이 어떻게 구원을 이해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구원은 그에게 화해와 제사가 아니라 완성된 사랑이다.

그리스도인은 늘 이 사랑을 묵상하고 몰두하여, 그 사랑을 통하여
일치와 평화와 영광을 체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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