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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야 인생"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5 조회수656 추천수4 반대(0) 신고

◈ 광야 인생 ◈



2006.3.5 사순 제1주일

창세9,8-15 1베드3,18-22 마르1,12-15

                                                              




베네딕도 규칙서 제49장
‘사순절을 지킴에 대하여’ 중 1-3절까지 말씀입니다.

“수도승의 생활은 언제나 사순절을 지키는 것과 같아야 하겠지만,
이러한 덕을 가진 사람이 적기 때문에,
이 사순절 동안에

모든 이들은 자신의 생활을 온전히 순결하게 보존하며,
다른 때에 소홀히 한 것을

이 거룩한 시기에 씻어내기를 권하는 바이다.”

비단 베네딕도 수도승들뿐 아니라
구도자적 삶을 추구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활, 언제나 영적으로 보면 광야 인생이요,
특히 사순 시기는 더욱 그러합니다.

마치 오늘 짤막한 복음이 그대로 우리 광야 인생을,
사순시기를 압축하고 있는 듯합니다.

변하는 것 같아도 변하지 않는 게 광야 인생의 인간 현실입니다.
여전히 하느님과 천사들은 존재하고
하늘과 땅은 그대로이며 삶은 광야이고 사탄의 유혹은 여전합니다.

변한 게 있다면 오염된 하늘과 땅, 그리고 하느님을 잃어버려
오염 변질된 사람들 가득한 오늘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하늘 향한 푸르른 영혼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땅 욕망 가득한 육신들의 사람들만,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사람들,
금수(禽獸)만도 못한 사람들 점점 늘어난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존엄한 인간 품위의 상실, 이게 정작 대죄입니다.
이래서 광야의 사순시기가, 광야의 영성이 정말 필요합니다.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광야의 사순시기 하느님과 함께 지내는 피정기간과 같습니다.

외롭고 쓸쓸한 인생이라 낙심하지 마십시오.
바로 광야 인생임을 상징합니다.
바로 이 광야 같은 삶, 바로 거기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내 맘대로 광야 인생 택한 게 아닙니다.
성령께서 영적 단련을 위해 우리를 삶의 광야로 내 보내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선명히 계시되는 진리입니다.
세례 받으시자마자
예수님을 성령의 인도 하에

사십 일간 광야 피정을 마련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때에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그러니 광야 인생,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 혼자만이 아닌 성령 안에서의 광야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예수님처럼 천사들의 시중을 들으며
피조물과 공존의 평화를 누리는 광야 인생,

역설적으로 낙원임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삭막한 광야 인생 같지만
곳곳에 우리를 도와주는 좋은 사람 천사들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습니다.
낙원 찾아 나갈 것 없습니다.
지금 여기 인생광야가 바로 낙원입니다.

하느님은 어디나 계시기에

눈만 열려 하느님을 뵈면 그 어디나 낙원입니다.

이미 토마스 머튼이 갈파한 진리입니다.
사막을 사막으로 받아들일 때 사막은 낙원으로 바뀐다고 말입니다.
광야를 피하지 마시고 가만히 직면하십시오.
성령의 인도와 천사들의 도움 중에 하느님을 만날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광야 인생, 낙원이라지만 사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광야에는 하느님만, 천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혹하는 사탄도 있습니다.

나태해지지 않고 깨어 살게 하기 위한 교육 수단으로

사탄은 필수입니다.
에덴동산에도 사탄을 상징하는 뱀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성령 안에서의 우리의 광야 인생,
한쪽에는 천사들이 한쪽에는 사탄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탄 없어 낙원이 아니라 사탄의 유혹에 떨어지지 않아 낙원입니다.

예수님 유혹은 받으셨지만 유혹에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유혹을 겪으며 성숙, 성장되고 튼튼해지는 영성이지
유혹 없으면 영적 성장도 없습니다.

또 나태하여 못사는 자에겐 사탄도 유혹하지 않는다 합니다.
잘 살아서 매력 있어야 유혹하는 데
나태하고 게으르니 유혹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것이지요.

잘 살아보려는 자에게 끊임없는 사탄의 유혹입니다.
외부의 실체라기보다는
잠재의식 속에 감춰져 있는 이기적 자기(Ego)라는 사탄입니다.

주님의 베드로를 향한

‘사탄아 물러가라’ 는 말씀이 이를 입중 합니다.

유혹을 이기면서 자기(Ego)라는 사탄의 정체는 폭로되고
내면의 정화가, 무의식의, 잠재의식의 정화가 이루어져
마침내 마음의 순결에 도달합니다.

예수님은 물론 사막의 수도자들이
사탄을 마다하지 않고 즐겨 직면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은총의 사순시기,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사탄들의 정화와 변형을 위해
진실하고 항구한 기도와 절제의 생활은 필수입니다.

광야 인생에서 이루어지는 회개입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 마치 광야 피정 후 득도 체험을,
사순시기를 맞는 우리 모두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회개의 표현이 세례요, 세례를 새롭게 하는 광야의 사순시기입니다.
홍수로부터 구원받은 노아처럼,
이미 물의 세례를 통해 구원 받은 우리들입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영적 세례와도 같은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올바른 양심에 깨끗한 마음입니다.

문득 회두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회개보다는 ‘하늘 님을 향해 머리를 든다.’는 뜻의
회두(回頭)라는 표현이 더 적절합니다.

동물적 본능을 넘어 하느님을 향해 머리를 들 때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늘 향해 하느님 구원의 표징인 무지개를 볼 때 마다
다음 창세기 하느님 말씀을 상기하면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또 새로운 계약의, 구원의 표징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늘 세례를, 회개를 새롭게 하므로

주님과의 일치를 깊이 하는 것입니다.

자주 하늘의 무지개를 향해,
높이 달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 머리를 들어야
세속, 사탄, 육신의 유혹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래야 축복된 광야 인생입니다.

광야 인생, 하느님 계시기에 낙원 인생이요 축복 인생입니다.
사순시기,

낙원과 축복의 광야 인생을 고스란히 압축하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하느님 나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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