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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여호수아37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5 조회수592 추천수2 반대(0) 신고
 
 


복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오늘의 말씀>
1 요셉 후손들에게 돌아 간 몫은 동쪽으로 예리고 가까이 요르단강에서 시작한다. 예리고에서 베델 산악지대로 사막을 거쳐 올라 간다.
2 루즈라고도 하는 그 베델에서 시작하여 아타롯에 있는 하르키족의 경계를 지나
3 서쪽으로 야블렛족의 경계로 내려 가 아래쪽 벳호론 경계를 지나 게젤에 이르렀다가 바다로 빠진다.
4 요셉의 아들 므나쎄와 에브라임은 아래와 같이 유산을 받았다.
5 에브라임 후손도 갈래를 따라 영토를 유산으로 받았는데 그 경계는 동쪽 아타롯아달에서 시작하여 윗벳호론에 이른다.
6 그 경계는 거기에서 바다로 빠졌다가 북쪽 믹므다에서 동쪽으로 돌아서 다아낫실로에 이르러 야노하 동쪽을 지난다.
7 다시 야노하에서 아타롯과 나아라로 내려 가 예리고를 스쳐 요르단강으로 빠진다.
8 또 그 경계는 다부아에서 서쪽으로 나가 가나 골짜기를 지나 바다로 빠진다. 이상이 에브라임 후손 지파가 그 갈래를 따라 받은 유산이다.
9 그 밖에도 에브라임 후손에게는 므나쎄 후손의 유산 가운데서 따로 떼어 낸 성과 천막들이 있었다.
10 게젤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은 쫓겨 나지 않은 채 이날까지 에브라임에서 섞여 살면서 노동을 하고 있다. <여호수아 16:1-10>
 
<묵상>

이스라엘 12지파는 야곱의 열두 아들을 따라서 이름 붙여진 지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10개 지파는 야곱의 아들에게서 나왔지만 두 개 지파는 요셉의 아들들에게서 나왔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끝까지 순종하며 받들고 이루어낸 요셉이 복을 받아 요셉의 두 아들 므나쎄와 에브라임이 야곱의 두 아들 항렬에 올라 이스라엘이 두 지파를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 가진 것도 없이 거지 행색을 해 가지고 빈털터리로 가나안 땅에서 이집트로 이주해온 노인이 죽으면서 두 손자에게 오직 말뿐인 것만 같은 축복이 500년 후에는 엄청난 결실로 나타났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성서를 읽으면서 이처럼 하느님의 뜻을 후대로 계승하고자 하는 사람이 전하는 하느님의 복이 얼마나 강력하게 역사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은 가나안 땅의 중심부를 자신들의 영토로 얻었습니다. 그 땅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요르단 강을 자신의 땅으로 분배받았기 때문에 가장 살기 좋은 여건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넘치는 복을 제대로 간수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하느님께 크게 불순종하는 누를 범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게젤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고 그들과 함께 아니 그들을 종으로 삼아 부리면서 생활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을 다 쫓아내라고 하셨는데 비옥한 토지와 물줄기를 얻은 에브라임 사람들은 가나안 정착민들 중 일부는 내쭟기보다는 살려 두고 노예로 부리면서 농삿일과 잡일을 시킬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것이 무리해서 목숨을 걸고 싸움을 하지 않는 길일 뿐 아니라 그들의 인생을 편하게 사는 길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암묵적인 합의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인간들만의 편의와 합리, 자기들끼리의 판단에 빠져 들면서 가나안 정착민들을 남김없이 내쫓으라는 애초부터의 하느님 명령은 관심밖의 일이 되었고 듣기에 매우 성가신 소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느님의 본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잘 살았습니다. 오히려 순종했을 때보다도 더 잘 살 수 있었습니다. 노예 노동력이 확보해 주는 안정적인 물질의 공급은 여러모로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먼 훗날 상당히 무섭게 나타납니다. 에브라임이 중심이 된 북 이스라엘은 우상의 숭배가 빈번히 발생하다가 강대한 주변 민족의 침입을 받아서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민족 종교 즉 우상의 숭배 그리고 이민족과의 통혼으로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하여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로부터 심하게 배척을 받았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 후손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축복이란 것.. 한 순간 받았다고 그 자체로 기뻐날 뛸 것이 못 됩니다. 축복을 받은 자가 그 받은 축복을 잘 유지하고 더욱더 하느님이 주신 말씀과 사명을 소중히 여기고 계승해 나가지 못할 때 그 복은 오히려 저주의 형태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 앞에서 복을 구합니다. 그러나 그 복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복을 받은 후에도 변함없이 주님의 제자와 사도로 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복음서에도 12제자의 이름이 나옵니다. 모두다 인류 역사상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적혔다는 것만으로 그들 삶에서 그 복이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한 사람의 이름 유다를 보면서 알 수 있습니다.
 
첫 결심대로 말씀을 따라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유다에게는 오히려 복이 더 큰 저주의 형태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살다보면 세상이 주는 기쁨과 성취감이 크기 때문에 내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나 섬김의 몫이 -그것도 진정 복인데도 -그것이 참 초라해 보이고 볼품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이웃을 섬길 수 있는 자로 부르심 받은 것 자체가 엄청난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그 복이 마치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버리고 싶기도 하고 그냥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복은 받는 것 자체보다 받은 복의 의미를 깊게 깨달으며 그 의미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명이라는 복을 받은 여러분.. 그 복을 잘 간직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복을 받은 후에 망해 나가 자빠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결코 하느님이 주신 복이 아니라 자기 욕심으로 먼저 취한 것인데 그것이 마치 주님이 주신 복인양 오만방자해져서 행동하다가 교만의 늪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복을 잘 관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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