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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성체(聖體)인 사람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6 조회수651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6.3.6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레위19,1-2.11-18 마태25,31-46






"주님의 성체(聖體)인 사람들"



사람은 몸입니다.
배고프면,

몸 아프면 기도도 공부도 일도 안 되고 만사가 다 귀찮아집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 는 말씀도
하느님의 말씀에 앞서 몸의 빵이 전제되고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추상적이고 애매한 설교를 하신 게 아니라,
복음 선포에 이어

곧장 배고픈 이들을 먹여주시고 병든 이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사람이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언하는 능력에, 모든 신비와 지식을 꿰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재산을 나누어주고 내 몸까지 내어준대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거룩한 전례에 기도도 사랑이 없으면 참 공허할 뿐입니다.
잎사귀들 무성하나 변변한 열매들 없는 나무처럼

허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진정한 관상가인지는 열매의 사랑을 보면 압니다.

1독서에서 주님은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당부하시고,

이웃 사랑의 실천 항목을 조목조목 열거하신 후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말씀하시고
‘나는 주님이다’라고 도장을 꽉 찍으십니다.

거룩함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정말 거룩한 사람인지는 자비와 사랑의 삶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최후 심판관이신 그리스도의 종말 심판 기준,
바로 구체적 사랑의 실천임이 확연히 들어납니다.

거룩한 전례나 기도, 열렬한 신심생활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다 몸과 관련된 구체적 자비행입니다.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는 것,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는 것,
나그네들을 따뜻이 맞아들이는 것,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 주는 것’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러나

모두가 소홀히 지나쳐버리기 쉬운 구체적 작은 사랑의 실천들입니다.

결코 추상적이고 애매한 마음 사랑, 영적 사랑이 아니라,
작아도 구체적 희생의 실천이 따르는 사랑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끊임없이 우리에게 자극과 도전이 되는 말씀이요,
이런 자비행을 실천한 이들에게 믿는 이들이건 믿지 않는 이들이건
종파를 초월하여 구원의 축복을 선언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성체에 현존하시는 주님이듯이

곤궁한 이들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곤궁한 이들을 무시하는 것, 주님에 대한 무시요, 성체 모독입니다.

성체를 존중하고 사랑하듯, 곤궁한 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바로 주님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곤궁한 이들, 또 하나의 주님의 살아있는 성체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성체성사의 심오한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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