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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줄탁동시, 봄을 맞으며 한 소리해봅니다
작성자장기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6 조회수552 추천수4 반대(0) 신고

선가(禪家)에 전해져 오는 유명한 "벽암록" 제16측에 나오는 공안에

졸탁동시(口卒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미 새가 알을 품어서 부화할 때가 되면
새끼새가 알 안에서 톡톡 쪼는데, 이것을 '졸'이라 합니다.
밖에서 기다리던 어미 새가 이 소리를 듣고 탁탁 쪼아 부화를 도웁니다.
이것을 '탁'이라 합니다.
이렇게 '졸'과 '탁'이 동시에 이루어져 새로운 생명이 탄생합니다.

사순절은 ‘졸’의 시기입니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자꾸만 뒤덮는 삶의 껍질들을 벗어 던지기 위하여,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께서 들으실 수 있도록
껍질 속에서 쪼아대는 시기입니다.

이와 같이 ‘졸’ 이 있을 때 어미 새가 그 소리를 듣고 ‘딱 딱’ 도움을 주듯이
하느님께서 죽음의 껍질로 덮여가는
우리의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살려내실 수 있습니다.
‘졸’이 없는 인생은 ‘탁’이 없습니다.
그런 인생은 곪아서 마침내 썩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사순절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채비하는 시기요,
더 이상 자라지 못하거나 날지 못하는 상태에서 새로운 힘을 충전시켜 푸르고
높은 하늘을 자유로이 날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

사순시기를 맞은 지금,

다들 나름대로 의미 깊게 보내시는 사순이라 믿습니다.

너무 오랫만이라구요?

저요! 잘 지내고 말고요. 겨울내내 잘 먹고 잘 노느라 살이 쪄서

안그래도 모양이 모양인지라 고민이 늘었습니다.

 

작년 사순 때는 발가벗고 조배실에서 날이 시퍼렇게 선 단도를

입에 물고 사순을 보낼 작정이 었는데 ...

이 글 작년에 올렸던 걸 기억하시지요?

해마다 사순이 돌아올 때면 졸탁동시(발음을 '줄'이라 하기도 하고 동시 대신에 同機라고 쓰기도 하지요)를 꺼내어 읽어보며 결심을 새롭게 합니다.

 

부활,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날짜를 기가 막히게 잡았어요(엄청 실례하고 있나요?)

생각해보세요.

아직 자연은 막막한 어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시기일 때 사순이 시작하지요.

봄,

부활을 앞두고 깊은 어둠에 묻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라는 뜻이겠지요. 

재의 수요일이 지나면 깊은 정적에 묻혀 지내던 자연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몸을 뒤트는 잉태의 시기를 보내잖아요. 

어저께 산에 올랐을 때 미쳐 보지 못한 생명의 터오름을 오늘에서야 보았답니다.

 

앞뜰,

목련이 회색가지마다 꽃멍울이 도두라져 보이던걸요. 그뿐인가요. 산수유는 잘디잔 가지마다 좁쌀을 뿌린 듯 노란 꽃멍울이 달려 있던군요.

이제 생명이 자리마다 뾰죽이 움터오고 있어요. 

봄이 오면,

저는 유달리 잿빛 잠에 취해 있는 나무가지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해요.

언제, 가지에 물이 오르고 꽃을 피울까 하고.

성당에 오고갈 때면 담장에 붙어 있는 개나리무리가 아직 갈색의 회초리마냥 가냘픈 가지에 물이 오른 듯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저는 바보인가봐요.

베란다에 내다놓은 군자란이 두꺼운 잎새사이에 삐죽 힘찬 꽃대를 내밀고 있는지 오늘 아침에서야 알았다니까요.

얄푸시 연두빛 고운 색갈에 보석처럼 알알이 박혀 있는 꽃멍울이 며칠이면 활짝 꽃을 피우겠지요. 옆자리의 자스민의 새싹이 뾰루퉁 앙증맞은 고사리손을 펴고 있더라구요.

산으로 들로, 

봄을 마중나간 나야말로 바보가 아니고 뭐겠어요.

베란다와 앞뜰까지 몰래 숨어들어온 꽃소식을 아직까지 모르고 지냈으니까...

이렇게 생명이 움트는 봄의 화려한 잔치가 벌어지는 사순시기를 어찌 의미없이 보낼거예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봄의 선물을 그대가 아직 외면하고 있다면 그 죄를 어찌 감당하시려우.

죽음의 껍질로 덮여 있는 우리의 일상에서 온힘을 다해 껍질을 쪼아봐야잖겠어요.

석일웅수사님께서는 우리의 줄(口卒)이 있든 없든 하느님의 탁(啄)은 늘 있어왔다고 하셨지만 그냥 맨입으로 맛 난 반찬만 냉큼 받아 먹겠어요. 도리가 아니지요.

 

그대 파아란 봄 하늘을 보신적이 있나요.

지지배배 종다리가 노래하는 맑게 개인 봄하늘,

더 높이 푸르고 푸른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꿈을 꾸어 본 적이 있다면 사순을 그냥 보내서는 안되겠지요. 

토요일에 내린 비로 세상은 그 안에 안고 있었던 생명을 흔들어 깨우고 있네요. 

'어서 일어나거라'

이제, 겨우내 잠들어 있던 검붉은 흙 속으로 지렁이가 기어나오고 깊이 겨울잠을 자고 있던 개구리의 등을 떠밀며

'임마, 벌써 경칩이야'

소리 치겠지요. 

삼각산 형제봉에서 내려오는 비탈길에는 잔설이 아직 잠을 자고 있는데 봄비란 놈이 추저추적 내리며 집요하게 

'방빼~ 방빼란말이야'

하고 잠시 지체하는 잔설을 가만 두지 않았았습니다.

자연의 변화도 이럴진데 인간사야 오죽 하겠습니까.

그대 지금,

잠들어 있다면 빨리 깨어나세요.    

 

***********

군자란이 활짝 꽃을 피울 때면 제가 꽃잔치를 벌리지요.

꽃잔치라고요!

그래요. 제가 벌리는 꽃잔치.

옛날 전국시대.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천하의 제후들을 불러서 꽃잔치를 벌렸데요. 오오사까의 높다란 대궐,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풀풀 날리는 그 아래에 차를 끓이며 시를 읊는 꽤나 낭만적인 꽃잔치를.

이때 풍로에 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도꾸가와 이예야스는 이런 다짐을 했다더군요. 나는 커다란 솥을 걸어두고 흰죽을 끓이리라. 내백성이 굶지않고 배불리 먹을 죽을....

그럼 잘 난 넌 무슨 잔치를?

전요... 라면잔치를 벌리지요. 라면 냄비뚜껑에 라면가락을 말아서 후후 불면서요.

 

군자란이 우뚝 솟은 꽃을 거두어 갈 때면 자스민이 보라빛과 희디흰 꽃잔치를 벌리는데 이때는 향기가 그윽하기를 말로 다 못해요.

 

........보오옴 나알른 가안다아~

 

제가 오늘 아침, 군자란에 문안을 드렸더니 아니벌써 !!

연두빛 꽃대에 촘촘히 박혀 있던 보석 중 제일 맏이가 주황색으로 메니큐어를 칠해 두었더군요. 살짝 부끄러움을 타면서....

아마 내일이나 모래쯔음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 모양, 홍보석(紅寶石)으로 치장하고 나서겠지요. 무르익어 농밀한 공작부인처럼 요염하게 말이지요.

세월이 이렇답니다. 무상하기도 하고요. ㅎㅎㅎㅎㅎ

 

조그만 제 베란다에도 봄은 이리도 치열하게 생명을 뽐내고 다투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가요.......  

음음^^^ 군자란이 공작부인으로 둔갑을 할 때면 라트라비아타의 축제의 노래가 어울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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