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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빈 마음에서 성령이 나오시네!(빈마성나)
작성자임성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7 조회수607 추천수1 반대(0) 신고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용서

 

주님의 기도에서 용서를 말씀하신 후, 주님은 다시 한번 용서를 강조하신다.

 

여기서 하느님과 우리와의 용서를 통한 관계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할 경우와 용서하지 않을 경우 2가지를

 

말씀하신다. 이 두가지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는 가에 따라서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도 결정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하느님과의 관계가 결정된다는 말씀이시다.

 

우리가 용서를 선택하면 하느님께서도 용서를 선택하시고, 우리가 용서를 선택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도 용서를 선택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용서인지도 모른다.

 

원수에 대한 용서는 사랑과 자비의 극치이고,

 

최고로 높은 수준에 있는 선한 의지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용서는  바로 이 기도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의 평소 기도는 빈말이 아니셨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당신은 용서를 실천하신 것이다. 그것도 당신을 죽이는 현장에서

 

당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신 것이다.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어쩌면 불가능한 모습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마지막 순간에도 용서를 선택하신다.

 

피땀 흘리면서 기도하신 결과요, 평소에 늘 당신이 기도하신 그 힘으로

 

당신을 죽이는 사람들에 대한 용서가 가능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기도의 힘이다.

 

아주 간단한 기도, 그러나 빈말이 아니면서 간절한 기도, 이런 기도가 우리를

 

살게 한다. 하느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다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오직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에게는 군더더기가 필요치 않다. 그냥 모든 것을

 

다 던져놓고 처분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하느님의 사랑에 잠긴다면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본질적 요소도 맡기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 등에 업혀 잠들 때 처럼 안심하고 푹 맡기는 것이다.

 

맡긴다는 것은 신뢰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을 대할 때 마음에 사회적 거리를 재고 만난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가족 간에는 몇십 센티, 직장 동료에게는 몇십 센티, 이웃에게는 몇십

 

센티하는  식으로 거리를 둔다는 주장인 것이다.

 

일견 일리가 있는 얘기이다.

 

그런데 이 말을 잘 생각해보면 우리 마음에는 사람에 따라 벽을 두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어찌보면 이러한 사회적 거리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는 자신에 대한 보호 본능이 있기에 그런 거리를 두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사회적 거리에 익숙한 생활과 사회 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누군가에게 선뜻 자신을 맡기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모두 맡기는 데도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을

 

받거나 익숙치 못한 느낌을 받고, 또 100% 맡기기 힘들다는 느낌도 받는다.

 

용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쟁과 갈등이 치열한 사회 생활에서는 용서도 100% 하기가 힘이드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사회 생활에서 상처를 준 사람을 한 번 용서 했다고 하더라도  다음에

 

또 다시 상처를  받거나 하면 용서를 하기가 힘든 경우가 생긴다.

 

불신의 벽이 생기기 때문이다.

 

"용서해 주면 언젠가 또 다시 나에게 상처를 주겠지",

 

"저 사람은 사람의 용서를 이용하는 사람이야, 자기가 필요할 때는

 

호의적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데 도가 튼 사람이야"

 

등등...

 

그러다보면 인간 사이에는 사랑과 자비보다는 갈등과 냉기가 흐르게 되고

 

우정과 친교보다는 경쟁과 적의로 가득차게 된다. 미움이  가득한 관계에서

 

끊임없이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불신의 벽을 높여가는 것이다.

 

 

세속의 사회는 대개 이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대개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온전히 자신을 맡기지 못한다.

 

 

그러나, 기도의 힘으로 사는 사람은 다르다.

 

진정으로 기도의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자유롭다.

 

특히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은 참으로 자유롭다.

 

하느님의 영이 작용하여 인도하는 길은 인간 세속이 가는 길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무척 난관적인 인생 길을 간다는 것이다.

 

무척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희망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 희망 속에서

 

그 희망을 보고, 그 희망을 따라서 간다는 것이다.

 

매사를 긍정하고,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요소가 있으면 그 긍정적인 요소를 본다.

 

 

만일 우리가 보는 10가지 모습 중에서 9가지요소가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요소가

 

1가지라고 하자.

 

부정적인 사람은 그 9가지를 부정적인 요소를 보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그 1가지

 

긍정적인 요소를 보는 것이다.

 

결국은 주변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가 무엇을 보는가가 인생의 승패를 좌우한다.

 

내가 1가지라도 긍정적인 요소를 보기 시작하면 인생은 바뀌는 것이다.

 

이는 나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용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용서를 선택하는 순간, 용서를 보는 순간 인생은 바뀌는 것이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내가 나의 인생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예수님 말씀대로

 

490번(70 * 7) 용서를 선택하여 하느님으로부터도 용서 받는 모습을 볼 것인가?

 

아니면, 정 반대의 길을가서 하느님으로부터도 용서받지 못하는 모습을 볼 것인가?

 

 

이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다.

 

그러나, 성령을 체험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무척 쉬운 일이다.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용서도 성령의 힘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힘으로 어렵게 끙끙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매사를 아주 쉽게 하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면 모든 이에게 자비로운 마음이 끝없이 생겨나고

 

측은한 마음으로 모든이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측은지심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 마음을 용서로 가득차게 한다.

 

성령은 모든 사람과 사건 속에서 우리들을 돌보신다.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신다.

 

 

성령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고난을 평화로이

 

참아내게 하시고 끝내 우리에게 면류관을 씌어 주신다.

 

우리는 우리가 용서를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선택과 의지도 하느님의 은총이요 선물인 것이다.

 

성령의 작용이라 하겠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용서는 어쩌면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하겠다.

 

원수 사랑도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겠다.

 

십자가의 사랑도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겠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일이다.

 

결국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용서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도 하느님으로부터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하겠다.

 

결국은 성령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사랑, 기쁨, 평화, 친절, 인내, 선행, 진실, 온유, 절제라는 덕행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일이다.

 

 

성령에 의해서 태어나고, 성령에 의해서 살아가고,

 

성령에 의해서 용서하고, 성령에 의해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할일은 오직 그 인도하심에 따르는 것 뿐이다.

 

오리를 가자면 오리를 가고, 십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고...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자유가 여기에 있네.

 

평화가 여기에 있네.

 

행복이 여기에 있네.

 

성령께서 도와 주심을 믿고, 성령께 모든 것을 맡기는 데에

 

진정한 행복이 있네.

 

 

 

내가 할일은 늘 주는 마음을 유지할 뿐이네.

 

늘 나누는 마음을 유지할 뿐이네!

 

늘 빈 마음을 유지하는 것 뿐이네!

 

내가 비어 있으니, 그저 바람 가는대로 움직일 뿐이네!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올 뿐 일세!

 

나는 오직 가라하면 가고, 서라하면 설 뿐일세!

 

나는 오직 모든 것을 받아 들일 뿐일세!

 

내가 할일은 오직 하느님의 자비를 증거할 뿐일세!

 

늘 빈 마음을 유지하면서...

 

성령이 작용하시도록  늘 마음을 비울 뿐일세.

 

빈 마음에서 자유가 나오네.

 

빈 마음에서 유모어가 나오네.

 

빈 마음에서 원수 사랑이 나오네.

 

빈 마음에서 아름다움이 나오네.

 

빈 마음에서 예수님이 나오네.

 

빈 마음에서 성모님이 나오네.

 

빈 마음에서 웃음이 나오네.

 

빈 마음에서 용서가 나오네.

 

빈 마음에서 찬미가 나오네.

 

빈 마음에서 하느님의 자비가 나오네.

 

빈 마음에서 참 평화가 나오네.

 

빈 마음에서 성령이 나오시네!(빈마성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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