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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51) 누구나 쉬운 일인 줄 알았습니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8 조회수645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6년3월7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성녀 페루페투아와 성녀 페리치타 순교자 기념 허용 ㅡ이사야55,10-11;마태오6,7-15ㅡ

 

      누구나 쉬운 일인 줄 알았습니다.

                                              이순의

 

 

언젠가 두봉 주교님께서 우리 본당에 오셔서 강론을 하신 내용이 근래에 새록새록 선명하게 떠 오르는 시간을 보냈다. 오래된 강론이 어찌나 자주 떠 오르든지 혼자 피식 피식 웃음이 나왔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마지막 선교 사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신 이국의 할아버지 두봉주교님의 신명나는 어리버리 한국어 강론은 다음과 같다. 

 

<주님의 사랑이 많으신 어느 분께서 제게 양복을 한 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알고있는 식복사는 그 교우분이 방문을 하신다는 연락이 오면 반드시 시장을 보아다가 근사한 식사 준비를 하십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흔쾌히 그러라고 승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또 그분들이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또 시장을 보러 간다고 했습니다. 지난 번에도 손님이 남긴 음식을 다 먹지 못한 기억이 났지만 비싸고 좋은 양복을 해 주신 생각에 거절을 하지 못하고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그 음식을 다 드시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아까운 음식을 다 먹으려고 몹시 어려웠는데 문제는 다음에 또 그분들이 오신다고 했을 때 다시 양복 이야기를 꺼내며 진수성찬을 차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제가 양복을 잘 못 얻어 입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커져서 나중에는 식복사에게 화가 났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 자꾸만 떠 오르는 것이었다. 두봉 주교님께서는 대단히 매우 무척 진심으로 한국을 사랑하시며 파리 외방전교회와 한국 가톨릭 교회의 밀접한 관계에 대하여도 늘 자랑스러운 주님의 뜻이라고 피력하신 바가 있다. 그만큼 한국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시고, 한국인의 습성과 생각까지도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그 날의 강론노트를 찾아 보면 어떤 강론을 하셨는지 알 수는 있으나 오늘 묵상글의 내용은 강론의 내용이 아니라 두봉주교님께서 받으신 뇌물(?) 양복 한 벌로 인한 번민인 것이다. 이국의 노(老) 주교님께서 교우로부터 새 양복 한 벌을 얻어 입으시고 벌인 소란을 강론 석상에 공개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두봉 주교님 답다는 생각을 했었다. 순수하고 맑은 그분만의 특징은 그분의 강론에 늘 묻어 나시지만 그날의 강론은 얼마나 티가 없으시던지 주교님께서 어린 동자의 투정을 보여 주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벌써 여러 해 전의 인상 깊은 주교님의 강론을 떠 올리며 혼자 웃어야 할 일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느낌이었다. 경우는 다르지만 얼핏 주교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후후후후! 조카의 결혼을 앞에 두고 한복을 맞추러 동대문을 다녀왔다. 형편이 형편인지라 제 분수에 맞춰 간단하게 한복 한 벌을 맞췄다. 그런데 값이 싼 한복이라서 그러했는지 아니면 하다보니 그러했는지 흠이 있었고, 다시 동대문을 다녀왔다. 환한 조명의 상가에서 본 것과도 달랐고, 어쩐지 마음에 차지 않는 한복 때문에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어찌 그렇게도 고운 한복이 많은지?! 또 어찌 그렇게 값이 비싸고 분에 넘치는지?! 누구나 원하면 그 고운 때때 옷들을 입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백화점으로 갔다. 생각하고 생각해 보아도 양장도 한 벌은 있어야 했다. 그런대로 여름 것은 자모회 다니느라고 갖춘 것이 있는데 동절기에 입는 옷이 없었다. 온 장농을 다 뒤져 보아도 얻어다가 입은 낡은 옷이요. 있다고 해 보아야 굵어진 허리와 뱃살 불은 체격에 위 아래가 맞지 않아서 걸쳐 볼 수가 없었다. 반듯한 옷이라고 해 보아야 오바코트로 덮어버리면 되는데 지금은 봄의 시작이지를 않는가?! 간혹이지만 친척들 혼례식에 간다고 해도 새사위든 새며느리든 나까지 기억할 만큼 변변하지 못해서 구색이 좀 안 맞아도 짜 맞추어 입고 다녀오곤 했는데...... 내 친형제 간의 첫 결혼인데다가, 큰오빠의 첫 아이이고, 새사위가 나를 기억을 하든 안하든 친 막내 고모이고 보니 어른인 내 쪽에서 격식을 갖추어야 할 입장이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자들 정장이 그렇게 비싼지 모르고 살아왔다. 눈에 들고 마음에 맞으면 푸른 뭉치에서 겨우 귀 빠진 정도이고 보면, 마치 내가 원시나라에 살다가 추락한 부시맨 같았다. 어찌 어찌 하여 상설매장을 발견하여 싸다(?)고는 하지만 엄청이루 비싸(?)서 한 벌도 못 사고 윗도리 하나만 샀다. 그리고 생각했다. 옷을 입고 걸어다니는 거리의 모든 여성들을 존경해야 것다고! 그렇게 비싼 옷을 입을 수 있는 능력에 찬사를 보내자고! 집으로 돌아와 아무리 걸쳐 보아도 어울리는 아랫도리가 없다. 그냥 바지를 입을까 생각 해 보았지만 사람이 사는 이치가 그렇치 않지를 않는가?! 더구나 조카의 혼례를 눈 앞에 두고도 새언니는 내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송금해 오시지를 않았는가?! 참으로 면목이 없었는데도 새언니는 전화를 하셔서 하시는 말씀이.......

<혼례가 겹치지 않았다면 더 해서 보내드릴려고 했는데 그렇게 안되었네요.>

 

나는 당혹스럽기 이를데가 없었다. 

<새언니, 이건희 회장 같은 사람도 그렇게 많은 돈이 있는데도 더 많이 제 자식에게 주려다가 나라에 찍히고 그러지 않던가요?! 새언니가 새언니 자식 혼례비용으로 쓰는 것은 당연히 써야 할 일이나 제 자식 등록금 보내주신 일은 아무런 은혜도 없는 쓰잘데기 없는데 보낸 것이제라. 잉! 너무나 죄송하고 감사하고 조카들 보기에 고모가 고모다웁지를 못해서 부끄럽소. 새언니>

나는 늘 내 큰언니에게 빚을 진 죄인이 되어 살아왔다. 그 가슴의 짐을 내려 놓고 죽을지는 주님만이 해결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근자에 들어서는 내가 원하거나 청해서가 아니라 새언니의 순수한 관심으로 본의 아닌 덕을 입고 산다. 어림짐작으로 아들의 등록금 정도는 준비를 해 두고 있었지만 나보다 먼저 자식을 길러 본 친정 형제들은 등록금만이 대학의 전부는 아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막상 대학 입학식이 끝나고 매일 아침마다 원거리 통학을 하는 아들녀석의 뒷모습을 보면 얼마나 내 자신이 못나고 부족한 부모인지를 실감한다. 

 

세상의 너무나 많은 부모네들이 대학생 자녀를 두어서 누구나 쉬운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극복의 조건이 될 것 같다. 

 

그러니 받을 것은 다 받아 먹었는데....... 내 친조카의 혼례를 앞에 두고 반듯한 옷 한 벌을 못 걸치고 간다는 것은 큰오빠와 새언니께도 물론 결례지만 10년을 같이 정들어 살았던 조카들에게는 더욱 면목이 없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새사위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동생도 돌보지 않는 사람들 같다>는 오점을 발생시키는 우려를 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때 아닌 새 한복에, 양장에, 호사를 누리게 되었으니 두봉주교님 생각이 날 수 밖에! 내내 그 때의 주교님 심정이 이런 마음이셨을까? 라고 물음표를 그리며 히죽히죽 웃고 다녔다. 막상 자식이 대학을 가니 자식의 입성은 초라하지 않게 갖추어 주었다. 그것이 어미의 만족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어미기 때문에 그런 만족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솔직한 어미의 심정은 새 한복도 맞추지 말고, 새 양장도 사지 말고, 그 자본 모아 두었다가 아침 등교길의 자식에게 책이라도 한 권 더 사서 보라 하고 싶으고, 커피 한 잔 값이라도 더 주고 싶으고, 여자친구랑 미팅이라도 해 보라고 하고 싶으고....... 그런데 누구나 쉽게 하는 일인 줄 알았던 이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더라!

 

그래도 2006년3월7일 화요일 저녁은 그렇게 사랑스러운 꼬맹이 조카가 자라서 혼인성사를 받는 날이다. 미사지향을 두고 그리움에 잠겼다. 빨강 땡땡이 무늬의 배 가리게를 입고 토실하게 잠들던 녀석! 새언니가 빨래한다고 아기를 보라고 했는데 잠깐 핫눈 팔은 사이에 제 녀석이 굵은 걸 누어놓고 과자처럼 집어 들어서 새언니께 엄청이로 죄송했던 일! 간밤에 경기가 나서 동생은 새언니가 들춰 업고 뛰는데 큰오빠는 졸이는 마음을 동동 구르기만 하시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이녀석은 내가 업고 뛰었던 일이랑! 광주 민중항쟁 때 돼지 장사 오토바이를 타고 피난 갈 때 새언니등에 업혀 있는 녀석 뒤에서 내가 안고 함께 갔던 일! 쉬지 않고 꼬리를 달은 추억에 잠시 눈시울이 젖었다가 웃었다가 하루가 갔다. 그리고 혼배시간에 즈음하여 우리 본당에서도 미사가 있었으므로 깨끗이 씻고,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고, 새로 산 양장을 입고, 눈썹도 그리고 입술연지도 바르고, 추억을 걸으며 성당으로 갔다.

 

그런데 문득!

<조카가 시집 가는 것은 쉬워보여도 곧 내 입장이 되면 또 알게 되겠지!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극복의 결과이며 벅차고 큰 보람인지를!>

미사내내 조카의 앞날 보다 지나 온 날들이 새록새록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 선명한 과거의 출발점에 조카가 서 있었다. 조카도 새언니처럼 나처럼 살아가면서 알아 갈 것이라는! 제  자식을 낳으면 제 형편에 맞는 만큼 제 자식에게 정성을 투자할 것이고, 그 보람으로 맛들어 재미재미 하며 살게 될 것이다. 누구나 쉬운 일인 줄로만 알았던 무구한 사람의 길을 겪고 이루며 사랑으로 완성해 가겠지! 또한 그것을 이 고모는 빌어 주었다. 부디 백년해로 하고 행복하라고! 그런데 조카의 혼인날에 막내 고모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우짠다냐?! 아무리 생각해도 입술을 단단히 깨물어야 할 것 같으니....... 여식을 시집 보내는 새언니를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되는데 우짠당가?잉?

 

축하합니다. 내조카랑 새사위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성가정을 이루셔서 고모는 너무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총과 행복이 주님의 뜻 가운데서 주님과 함께 넘쳐나시기를 진심으로 빌어 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아멘-

 

ㅡ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마태오6,9-13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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