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월8일 야곱의 우물 - 희망의 표징, 절망의 표징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08 조회수625 추천수10 반대(0) 신고
     
    사순 제1주간 수요일- 희망의 표징, 절망의 표징   
    
    
    [루카 11,29-­32]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박기석 신부(군종교구 홍보국장) - 
    
    
     ◆요나 예언자에 대해 묵상할 때마다 난 유아기적 망상에 빠져든다. 
    요나 예언자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는 모습보다는 
    큰 물고기의 뱃속에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기도하며 지내는 모습을 꼭 
    그려보게 된다. 
    
    물론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가 본 가장 큰 물고기는 ‘고래’였으니 고래 뱃속에서 하느님께 기도하는 요나의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스스로 묻는다. ‘가능할까?’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사람과 고래의 모습을 함께 그려볼 수 있도록 영향을 준 것은 비단 요나의 기적만은 아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그리고 멜빌의 「백경」이 있었다.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래, 희망을 버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 고래를 잡기 위해 상어 떼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에게선 희망을 잃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았고, 반면 ‘모비딕’이라는 흰 고래에게 오른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 에게선 복수심 때문에 꿈도 희망도 아닌 절망의 뒤안길로 그 고래와 사라 지는 모습을 보지 않았던가.
    요나의 고래에선 불신에서 돌아선 나약한 인간의 ‘회개’를 본다. “구원은 주님의 것입니다.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요나 2,10-­3,8).
    사람의 아들, 예수께서도 우리에게 또 하나의 표징으로 당신을 드러내신다. 메시아의 기적을 통해 사적인 흥미와 자기 중심적 이익에만 급급한 사람들 에겐 절망의 표징일 것이고, 매일 미사성제 안에서 빵과 포도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 예수님께 자신을 내맡기는 이들에겐 희망의 표징이 될 것이다.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권진이 아가다 성녀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권진이 아가다 성녀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권진이 아가다 성녀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성인의 이름을 호칭하며 기도하게 도와주소서!
    
    
    
    사람의 아들, 예수께서도 
    우리에게 또 하나의 표징으로 당신을 드러내신다. 
    
    메시아의 기적을 통해 사적인 흥미와 자기 중심적 이익에만 급급한 사람들에겐 절망의 표징 일 것이고,
    매일 미사성제 안에서 빵과 포도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 예수님께 자신을 내맡기는 이들에겐 희망의 표징 이 될 것이다.
    
    사실 말입니다...
    밤을 꼬박 서서 일하고 이른 아침에 돌아와서...
    아침미사를 간다는 것은, 제가 생각해도 신퉁방퉁입니다.*^^*
    
    그런데 가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다급하게 기도해야 되는 제목들이 있으니... 그 급함을 알리는 길은 미사뿐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조금이나마, 주님 대전 가까이 나가서 꾸벅꾸벅이라도 졸고오면 그 분이 제 마음을 알아주시기라도 할 것 같고, 암튼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희망이 보이기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에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도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라는 짧은 성모송 안에...
    저의 모든 시름이 다 들어 있습니다.
    저의 모든 걱정과 슬픔, 괴롬과 힘듦,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듯이,
    
    미사에서 만나는 성체와 성혈은... 이천여년 전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도 되었다가, 내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도 되었다가, 멀지 않은 날에 부활하실 모습으로 희망과 기쁨으로 다가오십니다.
    오랫동안 신교에서 머물던 안나 아지매에게 매일 미사 안에서 만나는 성체성사만큼은 그 어느 것보다도 가톨릭 교우가 된, 탁월한 선택이었음에 외치지 않을 수가 없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이라고 조아릴 때는 어김없이 글썽거리는 회개의 눈물들을 체험해 보셨는지요.
    신교에서는 부활절과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탄절에 성찬례를 합니다. 그 때도, 저는 그 시간들이 제게 커다란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매일매일 마음만 먹으면 만나뵐 수 있으니... 내게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왜냐면요...↗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삶도 맡길 수 있고, 다른 벗들의 삶도 맡길 수 있고, 우리 어머님을 누가 그렇게 잘 맡아 주시겠습니까. 우리 옆지기를 누가 그렇게 잘 이끌어 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맡김으로해서... 희망의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안타깝게두... 절망의 표징으로 닿아오는 이보다두 더 문제인 것은 희망의 표징인지, 절망의 표징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일 제목은 아멘(amen)의 삶입니다. 제목부터가 궁금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그럼,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이곳도 이제는 제법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입니다. 추운 겨울을 지냈던 가난한 이들에게는 희망의 표징이겠지요.. 저 또한 추운 날씨를 싫어하기에, 벌써부터 설레임으로 기다려집니다.
    
    
    
    
소스입니다.*^^*

<ul><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67.jpg">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3pt"> 
<b>사순 제1주간 수요일- 희망의 표징, 절망의 표징 </b>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3pt">
<b>[루카 11,29-­32]</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br>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br>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br>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 박기석 신부(군종교구 홍보국장) - </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요나 예언자에 대해 묵상할 때마다 난 유아기적 망상에 빠져든다. 
요나 예언자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는 모습보다는 
큰 물고기의 뱃속에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기도하며 지내는 모습을 꼭 
그려보게 된다. 
<br>
물론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가 본 가장 큰 물고기는 ‘고래’였으니 
고래 뱃속에서 하느님께 기도하는 요나의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스스로 묻는다. ‘가능할까?’
<br>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사람과 고래의 모습을 함께 그려볼 수 
있도록 영향을 준 것은 비단 요나의 기적만은 아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그리고 멜빌의 「백경」이 있었다.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br>
그래, 희망을 버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 고래를 잡기 위해 상어 
떼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에게선 희망을 잃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았고, 
반면 ‘모비딕’이라는 흰 고래에게 오른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
에게선 복수심 때문에 꿈도 희망도 아닌 절망의 뒤안길로 그 고래와 사라
지는 모습을 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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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고래에선 불신에서 돌아선 나약한 인간의 ‘회개’를 본다. 
“구원은 주님의 것입니다.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요나 2,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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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 예수께서도 우리에게 또 하나의 표징으로 당신을 드러내신다. 
메시아의 기적을 통해 사적인 흥미와 자기 중심적 이익에만 급급한 사람들
에겐 절망의 표징일 것이고, 매일 미사성제 안에서 빵과 포도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 예수님께 자신을 내맡기는 이들에겐 희망의 표징이 될 것이다.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성 권진이 아가다 성녀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권진이 아가다 성녀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권진이 아가다 성녀시여,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pre><FONT color=mediumpurpl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오늘 하루만이라도 성인의 이름을 호칭하며 기도하게 도와주소서!
</b>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사람의 아들, 예수께서도 
우리에게 또 하나의 표징으로 당신을 드러내신다. 
<br>
메시아의 기적을 통해 
사적인 흥미와 자기 중심적 이익에만 급급한 사람들에겐 <font color=red> 
<big>절망의 표징</big><font color=brown> 일 것이고, 
<br>
매일 미사성제 안에서 빵과 포도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 
예수님께 자신을 내맡기는 이들에겐 <font color=red> 
<big>희망의 표징</big><font color=brown> 이 될 것이다. </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사실 말입니다...
밤을 꼬박 서서 일하고 이른 아침에 돌아와서...
아침미사를 간다는 것은, 제가 생각해도 신퉁방퉁입니다.*^^*
<br>
그런데 가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다급하게 기도해야 되는 제목들이 있으니...
그 급함을 알리는 길은 미사뿐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br>
조금이나마, 주님 대전 가까이 나가서 꾸벅꾸벅이라도 졸고오면
그 분이 제 마음을 알아주시기라도 할 것 같고,
암튼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희망이 보이기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b><pre><FONT color=purpl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에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도다.
<br>
천주의 성모 마리아 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라는 짧은 성모송 안에...
저의 모든 시름이 다 들어 있습니다.
저의 모든 걱정과 슬픔, 괴롬과 힘듦,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듯이,
<br>
미사에서 만나는 성체와 성혈은...
이천여년 전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도 되었다가,
내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도 되었다가,
멀지 않은 날에 부활하실 모습으로 희망과 기쁨으로 다가오십니다.
<br>
오랫동안 신교에서 머물던 안나 아지매에게
매일 미사 안에서 만나는 성체성사만큼은 그 어느 것보다도
가톨릭 교우가 된, 탁월한 선택이었음에 외치지 않을 수가 없답니다.
<br>
<b>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b>이라고
조아릴 때는 어김없이 글썽거리는 회개의 눈물들을 체험해 보셨는지요.
<br>
신교에서는
부활절과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탄절에 성찬례를 합니다.
그 때도, 저는 그 시간들이 제게 커다란 의미가 있었습니다.
<br>
그런데, 이제는 매일매일 마음만 먹으면 만나뵐 수 있으니...
내게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왜냐면요...↗
<br>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삶도 맡길 수 있고, 다른 벗들의 삶도 맡길 수 있고,
우리 어머님을 누가 그렇게 잘 맡아 주시겠습니까.
우리 옆지기를 누가 그렇게 잘 이끌어 줄 수 있겠습니까.
<br>
모든 것이 맡김으로해서...
희망의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br>
그런데 말입니다.../안타깝게두...
절망의 표징으로 닿아오는 이보다두 더 문제인 것은
희망의 표징인지, 절망의 표징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br>
내일 제목은 <b><big>아멘(amen)의 삶</b></big>입니다.
제목부터가 궁금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br>
그럼,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이곳도 이제는 제법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입니다.
추운 겨울을 지냈던 가난한 이들에게는 희망의 표징이겠지요..
저 또한 추운 날씨를 싫어하기에, 벌써부터 설레임으로 기다려집니다.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9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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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UL>103위 한국순교성인</A></UL></FONT></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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