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놀이터가 비어 있어서 그네를 탔다.
닿을 것만 같은 하느님 나라의 한 모퉁이에 매달리고 싶어서
온몸으로 굴렀다.
무수한 표정들이 다가왔다가 멀어지는데..
유독 멀어지지 않는 한 집이
빙글빙글 돌며 다가와서 눈을 감아버렸다.
오늘 젊디 젊은 부인을 땅에 묻고 돌아왔다.
스물여섯 해의 삶을 소지 올리듯
주님께 봉헌하기 위해 준비하던 그 집은
초상집답지않게 썰렁하다.
백일 남짓된 아기는 누구의 품에 안겨 있을까?
사랑하는 아내의 떠남도 모르고
교도소에서 출감 날짜를 기다리는 남편은
몇 날을 꼽고 있을까?
그 여인은 살아나기 위해 하느님을 찾았다.
간암이라했다.
의학으로 불가능 하다면
하느님이 가능하게 하시리라는 기대 속에서
하느님을 믿었다.
하느님의 침묵이 계속되자..
삭정이 같은 손을 합장하며
아기를 위한 엄마의 십자가를 누구에게 지울 수 없다며..
남편이 출감하면 누가 반겨주겠느냐며..
이 이유만으로라도
충분히 살려주실 이유가 된다고 빌었다.
그러나 침묵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침묵의 소리를 듣고
하느님께 삶을 소지 올리기 위해 불을 붙였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하느님 나라에서는 둘이 아닐 수 있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쏟은 후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한 점의 회한도 분노도 없는 순백의 영혼엔
기쁨이 흐르고 있었다.
여위고 긴 목을 젖히고
"모든 분께 감사하다" 고 했다.
어떤 통곡보다도 더 크게 절규하는 소리로
미소를 만들며 눈을 감았다.
삶과 죽음의 선상에선
그 동안의 삶들이
환시와 환청이었음을 깨달아서일까?
한 번 더 그네를 굴렀다.
분노와 슬픔의 호흡들이
가까워졌다가.. 또 멀어진다.
어느 곳엔들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곳이 있을까?
하느님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면 들을 수 있으련만..
귀와 눈의 방향을 고정시키고
자신의 몸짓으로만 외치는 소리들이
다가서고는 멀어져 간다.
그 여인은
모든 한을 용해시키고
평화와 광명의 나라에 서서..
한을 돋구며 사는 우리들을 어떤 모습으로 지켜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