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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해 사순 2주일 마르코 9, 2-10- 손 안에 있는 귤을 바라보며...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11 조회수717 추천수5 반대(0) 신고

 

나해 사순 2주일 마르코 9, 2-10- 손 안에 있는 귤을 바라보며...

 

삶에서 행복을 얻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단연코 희생, 노력, 아픔이라는 대가입니다.


누군가는 ‘참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고통과 슬픔이 있어야만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삶에는 기쁨만이 아니라, 고통, 아픔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이를 잘 알면서도 고통과 아픔보다는 기쁨만을, 눈물보다는 행복만을 원하고 얻으려 합니다. 고통이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물이라는 씨앗이 없이는 진정한 기쁨이라는 결실을 맺지 못함을 알면서도.. 은연중에 고통과 슬픔, 아픔을 거부하고 멀리합니다.


그러다보니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지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쉽게 행복을 얻으려하고, 편하게 살아가려 하다보니, 참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더 크고 직접 눈에 보이고 바로 느낄 수 있는 행복과 기쁨만을 찾아 애쓰는 것 같습니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은 상반되는 것이지만, 늘 함께 다가온다는 사실을... 어느 하나를 거부해 버린다면, 나머지 하나도 사라져 버린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복음에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후 모세와 엘리야를 만납니다.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은 황홀감과 기쁨에 넘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는 소리가 들려오자, 제자들은 두려워 땅에 엎드립니다. 제자들의 이중적인 모습입니다.


산에서 내려올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고 당부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함구령을 내린 것일까요? 이보다 먼저 제자들이 기뻐하는 모습과 두려워하는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제자들 역시 지금 우리와 똑같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니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쩌면 베드로 역시 고통과 아픔보다는 영광과 승리의 찬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스승을 따라다녔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거룩하게 변한 모습을 보고는 기쁜 마음으로 “주님, 우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라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했기에 제자들에게 지금 본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 역시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 가시는 메시아가 아니라, 승리와 영광의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려왔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까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까지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며 지금 우리가 범하는 큰 잘못은, 주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써 이겨내야 할 문제는 고통과 아픔, 시련을 멀리하는 마음입니다. 행복과 기쁨만을 원하고 더욱 찾고자 애쓰면서도 슬픔, 고통, 아픔을 멀리하려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은 간절히 원하면서도 십자가의 죽음은 거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워내고 버리는 아픔, 희생 없이 행복, 영광을 누리려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라한 잘못입니다.


우리는 1독서의 아브라함을 신앙의 아버지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왜, 아브라함이 신앙인의 아버지가 되었고, 또한 하느님께 그토록 많은 축복과 은총을 받았습니까? 수많은 자녀, 땅,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 비결을 아브라함 태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의 선물보다도 고통과 아픔을 먼저 받아드렸습니다. 정든 고향과 가족을 떠나는 이의 두려움과 고통을 먼저 받아 안았기에, 하느님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가려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즘은 웰빙 시대입니다. 더 좋은 것, 더 편한 것, 더욱 큰 행복과 기쁨을 누리려는 시대입니다. 그러다보니, 고통은.. 아픔은 거부해야할 것들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행복과 기쁨과 없애는 것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고통과 아픔이 없으면 편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많은 은총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그릇된 판단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쁨과 행복뿐만 아니라, 간혹 매를 들고 따끔한 훈계를 통해 고통과 아픔을 줍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요즘 우리는 귤이라는 과일을 자주 먹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고장에서 생산되는 귤이 여름철의 태풍과 강렬한 햇볕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가을의 가뭄의 아픔을 이겨내지 못했더라면... 지금 우리가 먹는 귤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만을... 승리하신 영광의 예수님만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 받고 무참히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과 죽음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입니다


때문에 잊지 말고, 오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과 아픔은 무조건 거부해야할 십자가가 아니라, 받아 안아야할 십자가란 사실을 말입니다. 행복과 기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마음에 품고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고통과 아픔이라는 진리를 말입니다.


우리는 고통과 아픔이 거부해야할 십자가가 아니라, 받아 안아야할 십자가라는 진리가 마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럴 때, 왜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라고 말씀하셨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신부님 ♡

                                  

                                            가톨릭성가 72 / 다볼산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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