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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까마귀 검다하여 백로야 웃지 마라! - 이찬홍 야고보신부님
작성자조경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14 조회수1,031 추천수8 반대(0) 신고
까마귀 검다하여 백로야 웃지 마라!

 

복음에 예수님께서 손을 씻지 않은 채, 식사를 하시자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은 깜짝 놀랍니다.

어쩜,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지 않는 모습이 저와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제가 엄청 어리기에 예수님을 닮았다고 해야겠네요.^^*)

자녀들은 식사 전에 꼭 손 씻죠?


복음을 묵상하면서 고등학교 때, 배운 한 시조가 생각났습니다.

“까마귀 검다하여,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 들 속조차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 너 뿐인가 하노라!”

이는 조선시대 때, 한 정치가가 자칭 백로라고 우쭐대는 탐관오리를 빗대어 읊은 시조라고 배운 것 같습니다.


자신의 허물보다는 남의 허물을 보며 비난하는 모습은, 그리고 자신은 겉이 흰 백로라 하며 겉이 검은 까마귀를 비난하는 모습은 어제 오늘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사람들 마음 안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한 채, 아니 보려하지 않고, 남의 티에 주의를 집중하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내 탓이오.’라는 마음이, 돌이켜 자신을 먼저 살피는 성현들의 아름다운 덕이 그리운 오늘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백로라며 자만하는 사람은, 깨끗하다며 상대방의 허물과 잘못만을 보려하는 사람은 자신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아니, 검은 부분을, 썩어 들어가 심한 악취가 나는 그 병을 치료하지 못합니다.

겉이 깨끗하다며, 나만큼만 하라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남에게 속이 검은 것을.. 마음에 가득한 허물을 보이기 싫고, 알려질까 두려워 더욱 겉치장에 많은 시간, 돈, 정력을 소비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미, 상대방은 다 알고 있는데.. 그리하여 어떤 때는 안타깝기도 하고, 어떤 때는 어이없어 비웃임을 보이는데도, 위선의 가면을 벗지 않습니다.

더욱 “허허, 저 까마귀가 검구나... 남의 허물이 참으로 많구나...”며 위선 속에서 살아갑니다.


장기를 둘 때, 막상 두고 있는 두 사람은 여러 수를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구경하는 사람은 훈수를 둘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를 보게 됩니다.

비록, 그 사람이 경기하는 사람들보다 하수라 하더라도 자신이 경기하는 것이 아니기에 여유가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우리의 허물은, 들보는 보기 힘들지만, 남의 허물은 보기가 쉽습니다.

너무 자주 보여 ‘야, 너 그런 모습 고쳐라.’ ‘왜 그런 잘못을 하냐?’며 비난하게 됩니다.

그런 모습은, ‘나는 의인이다.’는.. 백로라는... 착각과 교만이 가득 차 있는 모습입니다.


더 이상 그런 착각과 교만을 버렸으면 합니다.

더 이상 겉만 흰 백로가 되려 하지 말고, 속히 흰 까마귀가 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겉이 아닌, 속을 닦아라. 겉모습은 아무것이라도, 심지어는 까마귀라도 좋다. 그러나 속만은, 마음만은 까마귀가 아닌 백로가 되거라. 그래야 다 깨끗해질 것이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까마귀 검다하여 백로야 웃지 마라!”

문득, 걸쭉한 막걸리를 마신 것처럼 “캬”하는 탄성이 나오는 것을 보니, 여러 번 음미해도 참 좋은 시조 같습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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