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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2) 말씀지기> 그의 잘못은 그가 부자라는 데 있지 않다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16 조회수787 추천수12 반대(0) 신고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루카 16,19-24)

 

이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는 좋은 옷과 최고의 음식, 게다가 추측컨대 뭐든지 시중들어 주는 종까지 거느리고 사는, 없는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그 사람은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면서(루카 16,19) 부족한 것이 없는 여유로운 인생을 보내고 있음을 과시했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그토록 돈 많고 권세가 있었으니 개인용 토라(모세오경) 정도는 가지고 있었을 법 합니다.

 

앞에는 그러한 풍요가 있고 뒤에는 성경이 놓여 있는데, 자기 집 문간에서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을 모르는 척 무시한다면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 사람을 무시하였습니다.

 

그 부자의 잘못은 그가 부자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의 잘못은 오히려, 그가 자족감에 사로잡혀 성경 말씀도, 가난한 자의 절규도 그의 가슴을 파고들지 못하게 했다는 데 있습니다. 성경도 하느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고 복음의 진리와 하느님의 약속에 우리 자신을 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신약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약에도 해당됩니다.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말합니다.

그의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어 하느님에 관하여, 하느님의 계명에 관하여,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에 관하여 가르쳐 줄 것이며, 그것이면 그들에게는 충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성경 전체가 우리를 감동시키고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은 노래합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시편 1,1-2)

 

우리의 나날은 가족들의 요구 사항, 직장에서 해야 하는 일, 끝이 없어 보이는 집안일 목록으로 가득 차 분주합니다. 이 모두는 유익하기도 하고 필요하기도 한, 우리가 책임질 일들이지요. 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가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라자로 같은 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밀어내고 그 부자처럼 우리 자신에만 열중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원하십니다.

주님께 우리의 가슴을 열고 의탁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 안에서 무한한 부(富)를 발견하고, 우리가 그 부를 받을 수 있도록 항상 열려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님, 저에게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저는 오늘도 몹시 분주하겠지만, 저의 시간과 초점을 주님께 맞추도록 도와 주시어 주님의 말씀에 감동받게 해 주십시오."

"Holy spirit, give me an open, teachable heart.

 I  may be very busy today, but I still ask you to help me yield my time and my focus to you, so that  I  may be touched by your word."

<말씀지기> 사순특집 2006 3/4월호 3월 16일 말씀.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말씀지기 묵상글에 저는 될 수 있는대로 의견을 달지 않고 있습니다.

좋은 묵상글이 어줍잖은 내 느낌으로 인해 훼손될까 염려되어서입니다.

굳이 사족같은 건 필요없다고 느껴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주 어쩌다 한 번은 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부자 영감은 죽어서 불구덩 속에 허덕이면서도 라자로를 보고는 아브라함에게 그를 보내 그의 손끝으로 물을 찍어 자기의 혀를 식혀달라고 하는 대목에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교만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봅니다.

라자로를 아직도 자기 하인쯤으로 보는지 아니면 거지쯤으로 보는지, 죽어서까지 없는 사람을 우습게 보는 거만함이 그가 회개를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래서 그 부자의 고통이 딱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심으로 뉘우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해 줄 수도 있으련만......

혹시 그러한 부자의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은 아닐런지도 돌이켜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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